전지적 식집사 시점

by 아일린


지난달부터 눈 뜨자마자 아침에 하는 일이 조금 달라졌다. 차 한잔으로 시작했던 아침이 부엌이 아닌 베란다로 향한다. 그곳에 가서 작은 화분에 있는 강낭콩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체크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밤 사이 그네들이 얼마나 컸는지 줄기는 얼마나 굵어졌는지, 쓰러지지 않고 곧게 잘 서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 등교 수업을 하게 된 초등학생 아들 덕분에 강낭콩을 키우게 되었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교과 학습지는 가끔 학교에 가서 받아오는데 그때 같이 받아온 강낭콩 5알이 물을 먹고 싹을 틔워 화분에 심어놨더니 기특하게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작은 접시에 콩알을 담고 물을 머금은 휴지를 며칠 덮어놓으면 하얗게 싹을 틔우는데 그때 화분에 흙을 넣고 심어주면 뿌리를 깊게 내려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고 나면 며칠 지나 떡잎이 나오고 본잎이 나오고 순서에 딱딱 맞춰 꽃을 피우는데 강낭콩의 꽃은 생각보다 어여쁘다. 하얀색에 보라색이 살짝 물든 작은 꽃들이 줄기 사이사이에서 꽃을 피운다. 어떤 건 꽃을 피우기도 전에 꽃봉오리 아래로 꼬투리가 쑤욱하고 자라 있다. 새끼손톱보다 작고 가느다란 꼬투리 안에는 벌써 콩알들이 함께 크는지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와있다.



“엄마 강낭콩 다 크면 우리 이걸로 머 해 먹을까? 근데 먹으면 강낭콩들이 슬퍼하지 않을까?”


정성껏 키운 강낭콩을 눈치 없이 너무 맛있게 먹으면 강낭콩이 진짜 슬퍼하려나? 강낭콩의 마음까지 헤아려 본 적 없던 나는 물주는 대로 쑥쑥 크는 그들이 그저 답답한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대상일 뿐이었다.


아이는 애벌레에서 장수풍뎅이로 탈바꿈한 곤충을 몇 개월간 키우고 자연으로 돌려보내 줄 때도 아쉬워하며 일기를 썼고, 학교 방과 후 시간에 받아온 가재가 2년 넘게 동고동락하다 유명을 달리할 때도 눈물을 글썽였다. 그럴 때마다 자연의 이치라는 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장수풍뎅이가 밤마다 작은 통 안에서 탈출을 시도했는데 우리랑 같이 사는 것보다 자연으로 방생시켜주는 게 그에게는 더욱 행복한 일이라고. 평균 수명이 1-2년인 가재가 2년 넘게 살게 된 것은 가재의 생애에서 장수한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 아침 강낭콩이 꽤 커져 있어 제법 형태를 이룬 꼬투리들 여러 개가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런데 꼬투리의 크기가 커질수록 처음 나온 잎사귀들이 시들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처음 떡잎이 나온 게 얼마 전 같은데 벌써 강낭콩들과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아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옆에 있는 로즈메리나 고무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잘 견뎌내며 여러 해를 잘 살고 있는데 강낭콩은 한해살이라 헤어짐이 빨리 찾아왔다.


2주 전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강낭콩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었나 보다. 장수풍뎅이나 가재와의 헤어짐보다 강낭콩과의 헤어짐이 조금 더 애석하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에게 말했듯 자연의 이치라고 덤덤하게 마음을 먹고 있다. 친구들은 싹도 못 틔우거나 조금 자라다 이내 시들어버린 강낭콩들도 있다던데 이 정도면 괜찮은 만남이었지, 라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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