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종교 같은 토마토 사랑

by 아일린

일 년 전 퇴직을 한 아빠는 퇴직 전, 8-9년 정도 엄마와 주말 부부로 지냈는데 공주에 있는 병원에서 약제 실장으로 직장 생활을 했다. 주로 서울에서 개인 약국을 운영하거나 분당 근처 약국에서 근무하던 아빠는 어느 날 작은 아빠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을 한다며 일요일 저녁 짐을 챙기고 월요일마다 새벽 운전으로 일터에 나갔다.



그때부터 아빠의 토마토 사랑이 시작되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물론 그 전에도 아빠가 만들어준 토마토 계란 스크램블을 맛본 적이 있지만 공주에서 뒤늦게 자취를 하게 된 아빠의 매일 아침은 토마토와 삶은 계란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프랑스 사람들이 물을 종교 같은 존재라 여기는 것처럼 아빠에게 토마토는 그즈음부터 하나의 종교 같은 존재가 되었다. 토마토를 박스 채로 사다 놓은 날 아빠의 미소는 더욱 흐뭇해졌다.

“토마토는 몸에 좋은 라이코펜이 들어있는데 그 성분이 열을 가하면 더 많아지니까 익혀 먹어야 돼.”


아빠는 토마토를 먹을 때마다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벗겨내 부드럽게 즐긴다. 토마토 중에서도 퇴촌 산 토마토를 애용하는데 나 또한 토마토가 맛있는 채소였네,라고 느낀 건 엄마 아빠 따라 퇴촌에 갔을 때 농장 주인이 밭에서 갓 따서 가져 나온 토마토를 먹어보고 나서다. 퇴촌 토마토가 다른 지역 토마토보다 유독 과육이 탱글탱글하고 당도가 높은 이유는 벌로 수정을 해서 키우기 때문이란다.


언니들보다 엄마 아빠와 같이 살았던 물리적 시간이 많아서인지 아빠가 만들어준 토마토 계란 스크램블을 몇 번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셋째 딸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먹기 좋게 자른 토마토를 익힌 후 적당한 타이밍에 계란 하나를 톡 깨트려 휘 휘 저으면 완성되는 요리인데 먹기 전에 소금을 솔솔 뿌리는 게 포인트다.


이 요리는 몇 번 먹어 본 기억만으로 충분히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여기에 응용도 가능하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주인공 에이미 아담스는 버터에 구운 바게트 위에 토마토를 올려 브루스게타를 만들어낸다. 아빠의 레시피인 토마토 스크램블을 만들어놓고 구운 바게트 위에 올려 먹으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바게트가 없다면 식빵으로 대체해도 된다. 당장 버터가 없으면 올리브유를 두르고 식빵을 구워내도 괜찮다. 토마토만 있으면 아무 빵이나 곁들여도 훌륭한 요리로 변신한다.


“엄마 토마토 사다 줘.”


보통 어린이들은 토마토를 잘 안 좋아한다던데 우리 집 어린이는 외할아버지를 닮아 토마토를 즐겨 먹는다. 아이는 꼬마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퇴촌에서 토마토를 처음 맛본 이후 토마토의 건강한 맛에 눈을 떴다. 마트 가는 길에 먹고 싶은 과일 있냐고 물어볼 때 자주 요청하는 과일 중 하나가 토마토다. 내일은 퇴촌까지 못 가더라도 마트에 가서 가장 잘생기고 탐스러워 보이는 토마토를 골라 아이 손잡고 친정에 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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