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이 손에 잡힐 듯 코앞에 있는 듯하다. 날씨 한번 기가 막히다. 늘 갈망하는 남반구 호주의 하늘과 흡사하다. 엄밀히 따지면 그것보다 조금 은은한 컬러감이지만 그래도 미세먼지 없고 이 정도면 훌륭하다. 일상생활 중에 올려다본 하늘만으로 감사함과 잔잔한 행복감이 전해지는 하루다.
아들이 영어 수행평가를 본다고 지난 주말부터 오늘 아침까지 영어 문장을 열심히 외우다 학교에 갔다. 수행 평가 내용은 여행 갔던 장소 중 ‘the most memorable place’,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선택해서 to 부정사를 활용해 글을 작성한 후 외워 쓰는 것이다. 구글 클래스룸에 미리 올려놓은 아들의 글과 다른 친구들의 글을 살짝 엿보다 곁들인 여행지 사진에 눈길이 간다. 강릉, 제주도 등 우리나라 여행지부터 파리, 런던, 시드니, 다낭, 방콕 등 다양한 나라와 도시의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더라.
아들은 시드니 근교에 위치한 ‘오크베일’이라는 자연 친화적인 동물원을 기억에 남는 여행 장소로 꼽았다. 작년 9월 호주 여행 때 방문했던 동물원이 그의 15년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고 소개했다. 호주, 시드니, 대자연, 캥거루, 코알라. 언제 들어도 마음 설레게 하는 키워드다.
대학생 때 처음 해외여행 갔던 곳이 호주여서인지 그곳은 언제나 ‘my favorite’이다. 아들과 함께한 호주 여행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떠나기 전 그는 굳이 호주에 가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일본이나 괌이 더 좋아요.”
“호주가 얼마나 좋은데. 캥거루랑 코알라도 있고 바다랑 하늘도 엄청 멋있어.”
“괌도 날씨 좋아요. 일본은 건담도 많이 있잖아요.”
“괌이랑 일본은 여러 번 가봤으니까 안 가본 호주도 한번 가봐야지.”
일주일 정도 간곡한 설득 후 극적으로 호주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는 분위기였다. 아는 만큼만 보이고 본인이 경험한 것이 모든 것이라 여기는 어린 사춘기 소년은 시드니에 도착하는 순간 말을 바꿨다.
“우와, 건물들이 007 영화에 나오는 건물같이 생겼어요.”
“좋지? 있다 보면 더 좋아질 거야.”
세 번째 시드니 방문이지만 언제라도 가슴 벅차고 새로운 곳이다. 사실 난 호주에 살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네들 특유의 영어발음도 좋고 피시 앤 칩스도 좋지만 그중 유난히도 파란 하늘과 살결에 와닿는 신선한 공기, 그리고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위엄과 품위를 사랑한다. 시드니 서큘러 키에서 페리 타고 20분 정도만 나가도 거센 파도에 층층이 깎여 나간 주상절리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차를 타고 세 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모래썰매를 탈 수 있는 사막화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시드니다. 처음 호주를 방문할 때만 해도 시드니보다 멜버른이 더 좋았다. 하지만 페리를 몇 번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도시와 대자연을 동시에 품은 시드니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페리 타고 갭파크, 맨리 비치에 가보고 트램 타고 시드니 대학교를 방문해 보면서 아들은 호주 시드니의 매력에 스며드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일투어로 신청한 포트스테판-오크베일 동물원 코스는 아들만큼 나도 인상적이었다. 캥거루와 코알라는 시드니 시내에 있는 동물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오크베일 동물원에 상주하는 그들은 푸르른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어 한참을 입 벌리고 쳐다보게 된다.
아들은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고 코알라를 쓰다듬어주던 경험과 대자연에 대해 영어 수행평가를 준비했다. 1년 뒤 수행평가를 위해 호주 여행을 다녀온 건 아니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니 심드렁한 사춘기 녀석을 끌고 호주에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과 자연을 즐기는 것만큼, 동물들을 도와주고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인 문장을 읽으며 속으로 대견하기도 했다. 일상 속에서 대자연을 만끽하는 그네들 환경이 그저 부럽기만 했는데 아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6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호주 하늘이 머릿속 알고리즘에 걸리고 아들의 수행평가 글까지 더해져 그와 함께 한 시드니 여행이 떠올랐다. 더불어 한국계 호주인 친구의 말이 뇌리에 스치듯 지나간다. 한창 시드니병에 걸려있던 시기에 그녀는 더도 덜도 말고 담백하게 한마디 던졌다.
"네가 호주에 몇 년 살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사는 것보다 여행이 더 좋은 거라면 까지껏 여행이라도 물릴 정도로 해보고 싶다. 다음번 시드니 여행에서는 자연을 벗 삼아 틈틈이 도서관 투어를 해볼 생각이다. 나도 좋고 아들도 좋고. 아, 그리고 게 눈 감추듯 먹게 된다는 납작 복숭아도 잊지 않고 사다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