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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Apr 06. 2023

혹독한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오듯

하늘하늘 가녀린 벚꽃 잎이 바람결을 따라 공중에서 자유롭게 유영 중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른 체 시간이 잘도 흘러갔나 보다. 벚꽃은 순식간에 팝콘처럼 활짝 피더니 이내 꽃잎을 한 장 한 장 떨구어낸다.     


지난 12월과 3월. 아이의 졸업식과 입학식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에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묵직함이 올라왔었다. 그 감정은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대견함과 동시에 나의 시간이 중년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음을 느끼는 세월의 무게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뭐든 뒷북치는 스타일인 나는 아이가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중학생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중학생 아이를 처음 키워보기에 3월 한 달 긴장의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건너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쓰럽기도 하고 아직 내 눈에 어린 자식인데 저녁밥을 먹이고 매몰차게 사교육 현장으로 내보내는 것 같아 미안함이 더해졌다. 그렇다고 손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그 룰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입학하고 3-4주 정도 지나갈 무렵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몸살 기운이 심하니 조퇴를 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살기운이 있어 감기약을 먹이고 등교를 시켰는데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나 보다.     


부랴부랴 운전을 해서 학교 교문 앞에 차를 세우고 아이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아이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동글동글 통통하고 웃음기 가득한 녀석의 얼굴이 하루아침에 핼쑥해졌다. 아이를 태우고 집 근처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코로나 검사와 독감 검사를 동시에 받았는데  다행히 음성이다. 감기 몸살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조금 있다 계란죽 먹고 싶어요.”     


침대에 누운 아이는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꾹 누르고 부엌으로 들어가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냉장고 문을 열어 통에 담아놓은 찬밥을 꺼내 물속에 부어 넣고 나무주걱으로 휘이휘이 저었다. 물 위에 흩어지는 밥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괜히 보냈나, 지친 아이에게 쉬라는 말보다 숙제하라는 말을 먼저 꺼낸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밥알들이 넘칠 듯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불을 약하게 줄인 후 계란 두 개를 꺼내와 톡 깨트려 넣었다. 다시 나무 주걱으로 휘이휘이 저어 본다. 밥알 사이로 계란 물이 춤을 추듯 퍼져 나간다. 가스레인지 불을 끝까지 끄고 나서 간장 한 스푼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부어 넣었다.     


코까지 골며 달게 자고 일어난 아이가 배고프다고 죽을 찾는다. 점심시간이 넘은 시간이어서인지 허겁지겁 한 그릇 뚝딱하고는 입에 약을 털어 넣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이는 금방 회복되었다.        


새 학기 한 달을 꽉 채우고 나서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다. 막둥이 아가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들이라 자주는 못 보지만 언제 봐도 어제 본 듯 어색함이 없고 편안하다.      


“새 학기 증후군이 있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들이 한 번씩 아프다더라.”     


그녀들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가 무리하게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새 학기라 그런 거란다. 우리 아이가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라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에 적응하느라 그런 거란다.      


창밖 너머 새싹이 파릇파릇 솟아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겨울을 견뎌낸 시간들이 있기에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틔우는 거겠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였는데 생명이 더해져 가는 모습에 경외감 마저 느껴진다. 자연의 이치를 가만 들여다보면 우리네 인생과 닮은 점이 참 많다.        


“엄마, 꽃잎이 왜 이렇게 금방 떨어져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어. 아무리 아름답고 붉은빛이 도는 꽃이라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자만할 필요도 없고. 또 꽃잎이 떨어진 자리는 초록색 잎사귀들이 돋아나니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지.”     


자라나는 꿈나무에게 글자 그대로만 전해주면 허무할 것 같아 나만의 해석을 덧붙여보았다. 떨어지는 꽃잎이 아쉽기는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내 푸릇푸릇해지는 나무들을 보면 다시 희망이 생긴다. 어여쁜 벚꽃이 지나간 자리에 초록색 어린 새싹이 얼굴을 빼꼼하게 내밀고 있다.


인생의 정점에 있어도 자만할 필요 없고 고된 시기에 있어도 침체될 필요 없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 따뜻하고 포근한 봄이 오듯 우리네 인생도 주기가 있다. 그 주기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인생을 마주하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겨울을 잘 견뎌낸 나무들처럼 아이가 앞으로 청소년기를 잘 견디고 인내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고 응원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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