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데이터 #3 2천 년 된 책에 답이 있었다

by 한경수

1960년대 말, 베트남 전쟁.

전투보다 말라리아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 북베트남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오쩌둥은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프로젝트 523. 말라리아 치료제를 찾아라.

수백 명의 과학자가 투입됐다. 서양 의학 문헌을 뒤지고, 합성 화합물을 만들고, 동물 실험을 했다. 수천 가지 화합물을 테스트했다. 전부 실패했다.

1969년. 투유유라는 39세 약학자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서양 의학에서 답이 안 나오자, 그녀는 방향을 틀었다.

중국 전통 의학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다.


2천 종이 넘는 한방 처방을 조사했다. 민간요법을 수집하러 지방을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개똥쑥(청호)이 말라리아에 쓰인다는 기록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실험했다. 효과가 있긴 했는데, 들쭉날쭉했다. 어떤 때는 듣고 어떤 때는 안 듣고. 재현이 안 됐다.

보통은 여기서 포기한다. "전통 의학이니까 그런 거지." "재현이 안 되면 과학이 아니지." 합리적인 판단이다.

투유유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바꿨다.

"왜 어떤 때는 되고 어떤 때는 안 되는가?"


그녀는 다시 고전으로 돌아갔다.

4세기 동진 시대 의서, 갈홍의 주후비급방.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청호 한 줌을 물 두 되에 담가, 즙을 짜서 전부 마신다."

투유유는 이 문장 앞에서 멈췄다.

담가서 즙을 짜라. 끓이라는 말이 없다.

그녀가 그동안 한 실험은 전부 가열 추출이었다. 끓여서 성분을 뽑아냈다. 그게 당시 표준 방법이었다. 그런데 1,600년 전의 의서는 끓이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혹시 열에 약한 성분인가?

저온 추출로 바꿨다. 에테르를 용매로 써서 낮은 온도에서 성분을 뽑았다.

말라리아 기생충 억제율 100%.


이게 아르테미시닌이다. 오늘날 전 세계 말라리아 치료의 표준 약물.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린 약. 투유유는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발견의 구조를 뜯어보자.

수천 가지 합성 화합물이 실패한 뒤, 투유유는 2천 년 된 문헌으로 돌아갔다. 현대 과학자가 고전을 뒤진다는 건 상식 밖의 행동이다. 동료들은 미신을 뒤지는 것처럼 봤을 것이다.

하지만 투유유에게는 두 가지가 있었다. 약학 훈련과 전통 의학 지식. 서양 약학의 방법론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방 문헌을 읽을 수 있었다. 두 세계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끓이지 말라"는 한 줄이 실험 조건의 단서로 보였다.

어느 한쪽만 알았다면 불가능했다.

서양 약학만 아는 사람은 고전을 안 뒤진다. 전통 의학만 아는 사람은 "끓이지 말라"를 실험 변수로 바꾸지 못한다. 두 영역의 지식이 한 사람 안에서 충돌했기 때문에 "어?"가 가능했다.


앞선 두 편의 인물과 비교해보자.

제멜바이스는 두 병동을 오가며 걸어 다녔다. 숫자와 현장 사이를 왕복한 사람이다. 스노우는 사망자의 집을 찾아가 지도 위에 점을 찍었다. 데이터와 공간 사이를 연결한 사람이다. 투유유는 현대 실험실과 고대 문헌 사이를 오갔다. 시간을 넘나든 사람이다.

셋의 방법은 전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데이터 안에만 있지 않았다.

데이터 바깥의 무언가 — 병동의 일과, 거리의 지리, 1,600년 전의 문장 — 를 데이터 안으로 가져온 사람들이다. 그 바깥의 것이 안의 숫자와 부딪혀서 질문이 됐다.


이 시리즈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바깥의 것이 있다.

5년간 영업을 했다면, 매출 데이터를 볼 때 숫자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10년간 교사였다면, 성적 데이터 뒤에 얼굴이 보일 것이다. 3년간 식당을 운영했다면, 재료비 추이에서 계절이 느껴질 것이다.

그게 당신의 2천 년 된 책이다.

데이터가 말을 거는 건 데이터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당신 안에 울릴 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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