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독일.
독일 건강보험은 고민이 있었다. 만성 통증 환자들이 침 치료를 요구한다. 침은 전통 의학이다. 효과가 있다는 사람도 있고 없다는 사람도 있다. 보험으로 적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독일인답게 실험하기로 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침술 임상시험. 이름은 GERAC. 환자 3,500명 이상. 요통, 무릎 관절염,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
설계는 이랬다.
세 그룹으로 나눈다. 첫째, 진짜 침. 전통 경혈에 정확히 놓는다. 둘째, 가짜 침. 경혈이 아닌 엉뚱한 자리에, 피부만 살짝 찌른다. 셋째, 침 없이 일반 치료만.
가짜 침이 핵심이다. 환자는 자기가 진짜 침을 맞는지 가짜 침을 맞는지 모른다. 바늘이 들어가는 느낌은 있지만, 위치와 깊이가 다르다. 경혈 이론이 맞다면, 진짜 침만 효과가 있어야 한다.
2006년, 결과가 나왔다.
요통 환자. 진짜 침 효과: 47.6%. 가짜 침 효과: 44.2%. 일반 치료 효과: 27.4%.
이 숫자를 천천히 보자.
침은 효과가 있었다. 일반 치료보다 확실히 나았다. 47%와 27%. 큰 차이다.
그런데 진짜 침과 가짜 침의 차이는? 47%와 44%. 거의 없다.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경혈에 정확히 놓든, 엉뚱한 데 찌르든, 효과가 같다.
"어?"
이 결과 앞에서 여러 가지 "어?"가 가능하다. 어떤 "어?"를 느끼느냐가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 침이 효과가 없다는 거 아냐?" 아니다. 침은 효과가 있었다. 일반 치료보다 20%포인트나 높았다. 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효과가 있는데 그 이유가 경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 그러면 경혈이라는 게 의미 없다는 거야?"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디에 놓든 비슷한 효과. 2천 년간 정교하게 발전시킨 경혈 지도가, 아무 데나 찌르는 것과 차이가 없다.
"어? 그러면 왜 효과가 있는 거야?" 이게 가장 깊은 질문이다. 경혈이 아니라면 뭐가 작동하는가? 바늘 자극 자체? 시술 과정의 돌봄? 플라시보? 아직 완전한 답은 없다.
이 데이터가 불편한 이유가 있다.
한의학을 믿는 사람에게는 불편하다. 경혈의 근거가 흔들리니까. 하지만 "침은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아니다. 효과는 있으니까.
서양 의학을 믿는 사람에게도 불편하다. "가짜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건 이중맹검의 전제를 흔드니까. 약도 아닌 것이 약만큼 듣는다면, "효과"란 무엇인가?
양쪽 모두에게 불편하다. 그래서 이 데이터는 좋은 데이터다.
좋은 데이터는 편을 들지 않는다. 기존 믿음을 확인해주는 데이터는 편하지만 배울 게 없다. "이상한데?"를 만드는 데이터가 질문을 낳고, 질문이 발견을 낳는다.
이 시리즈에서 네 개의 데이터를 봤다.
제멜바이스의 10%와 4%. 스노우의 지도 위 점들. 투유유의 들쭉날쭉한 실험 결과. 그리고 GERAC의 47%와 44%.
네 데이터의 공통점은 하나다. 전부 "이상한" 데이터였다. 상식과 충돌했다. 기존 설명으로는 안 됐다. 불편했다.
그리고 네 경우 모두, 그 불편함 앞에서 멈춘 사람이 있었다.
제멜바이스는 "왜 이 병동만?"이라고 물었다. 스노우는 "왜 이 우물 주변만?"이라고 물었다. 투유유는 "왜 어떤 때만?"이라고 물었다.
GERAC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 "어?"를 느껴야 할 사람은 과거의 누군가가 아니다.
당신이다.
47%와 44%. 이 숫자가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 질문의 시작이다. "왜 효과가 같지?" "경혈이 아니면 뭐가 작동하는 거지?" "효과란 뭘 말하는 거지?"
이 질문들에 아직 완전한 답은 없다. 하지만 질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질문이 없으면 47%와 44%는 그냥 숫자 두 개로 지나간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조선 왕의 수명을 봤다. 500년간 기울기 0.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네 개의 의학 데이터를 봤다.
모든 경우에, 발견은 같은 자리에서 시작됐다.
데이터가 내 상식과 부딪히는 순간.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을 건너뛰지 않는 것.
도구는 계속 발전한다. AI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분석은 더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데?"는 도구에서 오지 않는다.
그건 당신 안에서 온다.
이상한 데이터,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