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에는 철분이 많다.
누구나 안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힘이 솟았으니까. 어린 시절 시금치를 남기면 어머니가 말했다. "철분 많은 거야, 다 먹어." 출처를 물으면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 아냐?"라고 답한다. 그래서 추적해봤다. 세 번 뒤집힌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이렇다.
1870년대, 독일의 화학자 에밀 볼프가 시금치의 철분 함량을 측정했다. 이때 소수점을 한 자리 잘못 찍었다. 100g당 3.5mg이어야 할 수치를 35mg으로 기록한 것이다. 10배. 이 오류가 수십 년간 독일 영양학 교과서에 그대로 복사됐다. 1937년에야 슈판 교수가 재분석해서 실제 수치가 10분의 1이라는 걸 밝혀냈지만, 이미 늦었다. 시금치는 '철분의 왕'으로 등극한 뒤였다.
이 "소수점 오타" 이야기는 1981년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렸다. 혈액학자 테리 햄블린이 크리스마스 특집 칼럼에서 소개한 것이다. "과학과 의학의 역사에는 사기와 가짜, 널리 퍼진 실수가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있다"는 글이었다. 소수점 하나가 100년의 신화를 만들었다. 깔끔한 교훈. 이 이야기는 전 세계 교과서, 강연, 칼럼에 수천 번 인용됐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의 "상식 뒤집기" 글이 멈추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 자체의 출처를 추적하면 어떻게 될까.
2010년, 영국의 범죄학자 마이크 서튼이 이상한 일을 시작했다. 19세기 독일 생화학 논문 원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에밀 볼프의 원래 데이터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볼프의 원본 데이터에는 소수점 오류가 없었다.
그러면 "소수점 오타"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온 건가. 서튼은 추적을 계속했다. BMJ의 햄블린 칼럼을 거슬러 올라가니, 1972년 런던 대학의 영양학자 아널드 벤더의 취임 강연이 나왔다. 벤더는 네덜란드의 한 동료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시금치의 명성은 소수점 오류에서 비롯된 것 같다(appears to have been based on a misplaced decimal point)."
'~인 것 같다.' 추측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1977년 잡지 기고를 거쳐 1981년 BMJ에 실리면서, '~인 것 같다'는 사라지고 '~이다'가 됐다. 추측이 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이후 연구자들이 밝혀낸 실제 경위는 이렇다. 19세기 과학자들이 시금치의 철분을 과대 측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원인은 소수점을 잘못 찍은 게 아니었다. 실험 도구에서 철분이 오염됐고, 시금치를 태우는 과정에서 숯의 불순물이 섞였으며, 건조 시금치와 생 시금치의 수치가 뒤섞였다. 나쁜 실험 기법이 원인이었지, 오타가 원인이 아니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939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제로 소수점 오류가 발견된 논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시금치가 아니라 버터콩이었다. 아널드 벤더가 40년 전의 기억 속에서 "시금치 철분이 과대 측정됐다"는 사실과 "어떤 논문에서 소수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로 합쳐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기억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세 번째 반전이 남았다.
뽀빠이는 왜 시금치를 먹었는가. 철분 때문이라고 대부분 믿는다. 그러나 1929년 뽀빠이를 만든 만화가 엘지 시거의 원작을 보면, 뽀빠이는 이렇게 말한다. "시금치에는 비타민 A가 가득해. 그게 사람을 강하고 건강하게 만들지." 철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금치 → 힘 → 철분"이라는 연결은 시거가 만든 것이 아니다. 독자와 광고와 반복이 만들어낸 것이다. 만화가 기존의 믿음 위에 올라탔고, 기존의 믿음은 만화를 증거로 삼았다. 서로가 서로의 출처가 되는 순환 구조다.
정리하면 이렇다.
첫 번째 반전. 시금치의 철분은 과장됐다. 실제 철분 함량은 다른 잎채소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시금치에 포함된 수산(옥살산)이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
두 번째 반전. 그 과장의 원인이라는 "소수점 오타" 이야기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었다. 실제 원인은 19세기 실험실의 오염이었다.
세 번째 반전. 뽀빠이조차 철분 때문에 시금치를 먹은 적이 없다.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는 통쾌하다. "소수점 하나가 세상을 속였다"는 말은 강연장에서 웃음과 탄식을 동시에 끌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 뒤집기가 통쾌할수록 검증은 느슨해진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상식만이 아니다.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도 출처를 추적해야 한다. 뒤집기를 뒤집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추적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