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출처] 물은 하루 8잔 마셔야 한다

by 한경수

물은 하루에 8잔 마셔야 한다.


너무 구체적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8잔. 숫자가 붙어 있으니 어딘가에 근거가 있을 것이고, 그 근거 뒤에는 실험이 있을 것이다. 물병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마시는 사람들, 소변 색을 확인하며 탈수를 걱정하는 사람들. 모두 이 숫자를 믿고 있다. 출처를 추적해보자.


1945년, 미국 식품영양위원회(Food and Nutrition Board)가 권고문을 발표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성인의 적절한 수분 섭취량은 하루 약 2.5리터다."

2.5리터. 8온스짜리 컵으로 환산하면 약 8잔. 숫자의 출처는 여기였다. 그런데 이 문장 바로 다음에 또 하나의 문장이 있다.

"이 양의 대부분은 조리된 음식에 포함되어 있다(Most of this quantity is contained in prepared foods)."


두 문장은 한 쌍이다. 첫 문장이 총량을 말했고, 두 번째 문장이 그 총량의 대부분이 이미 음식 속에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읽으면 의미는 간단하다. 일상적으로 밥을 먹고 국을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 별도로 물을 8잔씩 마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첫 문장만 살아남았다. 두 번째 문장은 아무도 인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 포함 총 수분 2.5리터"가 "물을 2.5리터 마셔라"로 바뀌었다. 한 문장을 자르니 의미가 정반대가 됐다.


여기서 한 발 물러나 구조를 보자.

이것은 오타가 아니다. 마케팅도 아니다. 읽되 끝까지 읽지 않는 습관이 만든 상식이다. 숫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맥락은 사라진다. 2.5리터, 8잔 — 이 숫자가 너무 또렷해서 뒷문장을 읽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구체적인 숫자는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더 읽는 것을 멈추게 한다.


2002년, 다트머스 의대의 신장학자 하인츠 발틴이 이 숫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신장과 수분 균형에 관한 교과서를 두 권 쓴 전문가였다. 그는 전자 데이터베이스, 오래된 문헌, 수분 균형 전문 영양학자들을 총동원해서 "8×8" 규칙의 과학적 근거를 찾았다.

결론. 없었다.


수천 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부분은 이미 음식과 음료를 통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있었다. 커피, 차, 우유, 주스도 수분 섭취에 포함된다. 카페인 음료가 탈수를 일으킨다는 통념도 과장이었다. 일상적인 양의 카페인은 수분 균형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발틴은 "8잔"을 둘러싼 부수적 상식도 뒤집었다.


"목마를 때는 이미 탈수다." 거짓이다. 갈증은 혈중 농도가 2% 상승할 때 시작된다. 탈수는 5% 이상에서 정의된다. 갈증은 탈수의 증거가 아니라 예방 신호다.

"소변이 진하면 탈수다." 과장이다. 정상 범위의 소변 색은 탈수와 무관하다.

발틴은 오히려 반대 방향의 위험을 경고했다. 물을 과도하게 마시면 저나트륨혈증, 즉 수분 중독이 올 수 있다. 물도 과하면 해롭다.


그렇다면 이 상식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2011년, 영국의학저널(BMJ)에 한 기사가 실렸다. 유럽에서 수분 섭취를 적극 권장하는 단체 "Hydration for Health"의 배경을 추적한 기사였다. 이 단체를 만들고 후원한 곳은 프랑스 식품 대기업 다논(Danone)이었다. 에비앙, 볼빅, 바두아의 모회사다.

"물을 더 마셔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장 열심히 퍼뜨린 곳이, 생수를 파는 회사였다.

1편에서 시리얼 회사가 아침식사의 중요성을 만들었듯이, 생수 회사가 수분 부족의 공포를 만들고 있었다. 과학이 아니라 시장이 상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원문은 두 문장이었다. "하루 2.5리터. 대부분은 음식에 포함되어 있다." 첫 문장만 읽혔다. "물을 8잔 마셔라"가 됐다. 57년 뒤 신장학자가 근거를 찾아 나섰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 근거 없는 상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유지한 것은 생수 산업이었다.


숫자는 구체적일수록 신뢰를 얻는다. "충분히 마셔라"보다 "8잔 마셔라"가 더 과학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구체적인 숫자일수록 출처를 물어야 한다. 숫자가 정밀할수록, 맥락이 잘려나간 확률이 높다.


당신이 지금 들고 있는 물병. 갈증이 나서 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8이라는 숫자가 시켜서 들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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