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걸 먹으면 위가 쓰리다. 쓰린 게 반복되면 위에 구멍이 난다. 위궤양.
논리적이고 직관적이다. 출처를 물을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몸이 직접 증거를 대니까. 그런데 이 "당연한 인과관계"가 진짜 원인을 20년 동안 가렸다.
20세기 내내 의학 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위궤양의 원인은 스트레스, 매운 음식, 과도한 위산이다. 치료는 제산제, 식이요법, 심하면 위 절제 수술. 타가메트(Tagamet)와 잔탁(Zantac) 같은 위산 억제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처방약이 됐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궤양이 생기는 장면이 반복됐다. 상식이 의학을 입고, 의학이 산업이 된 구조였다.
이 구조 안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정말 그런가.
1979년, 호주 퍼스의 왕립병원. 병리학자 로빈 워런이 위 조직 생검을 관찰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나선형 세균이 위벽에 붙어 있었다. 워런은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며 확인했다. 염증이 심한 환자일수록 세균이 많았다.
1981년, 젊은 내과 수련의 배리 마셜이 워런과 합류한다. 둘은 100명의 환자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위염, 십이지장궤양, 위궤양 환자 거의 전원에게서 같은 세균이 나왔다. 나중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이름이 붙는다.
마셜과 워런은 위궤양이 세균 감염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학계는 웃었다. 위는 pH 1~2의 강산성 환경이다. 세균이 살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마셜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제는 증명이었다. 동물 실험이 실패했다. 헬리코박터는 영장류에게만 감염되기 때문이다. 윤리위원회에 사람 대상 실험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무명의 젊은 의사가 기존 학설을 뒤엎겠다고 사람에게 균을 먹이겠다고 하면 허가가 날 리 없었다.
마셜에게 남은 피험자는 한 명뿐이었다. 자기 자신.
1984년 7월 초, 마셜은 내시경 검사로 자신의 위가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3주 뒤, 위염 환자에게서 배양한 헬리코박터 균을 배지 두 접시분 현탁액으로 만들어 마셨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게 쉽다."
5일째, 메스꺼움과 복부 팽만감이 시작됐다. 입 냄새가 심해졌다. 아내가 먼저 알아챘다. 매일 아침 6시쯤 산이 없는 맑은 액체를 토했다. 8일째 내시경을 다시 했다. 심한 급성 위염. 다형핵백혈구 침윤과 상피세포 손상. 조직 생검에서 헬리코박터가 배양됐다.
코흐의 가설 세 번째와 네 번째 조건이 충족된 순간이었다. 건강한 사람에게 균을 투여하면 질병이 발생하고, 그 환자에게서 같은 균이 다시 분리된다. 14일째 항생제를 투여해 스스로를 치료했다.
마셜의 자가 실험은 1984년이다. 의학계가 이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노벨상은 2005년에야 왔다. 발견에서 인정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가. 두 개의 벽이 있었다.
첫째, 직관의 벽이다. 매운 걸 먹으면 쓰리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아프다. 몸이 직접 알려주는 것 같으니,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증상과 원인은 다르다. 매운 음식은 위벽을 자극할 수 있지만, 자극이 곧 질병은 아니다. 쓰림은 신호였을 뿐이고, 사람들은 신호를 범인으로 착각했다.
둘째, 산업의 벽이다. 마셜은 이들을 "위산 마피아(Acid Mafia)"라고 불렀다. 타가메트와 잔탁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었다. 위궤양이 감염병이라면, 값싼 항생제 며칠 치로 완치가 가능하다. 환자가 평생 복용해야 하는 제산제 시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제산제는 궤양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지만, 헬리코박터를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궤양은 반복됐다. 반복은 재구매를 의미했다.
오늘날 위궤양은 만성 질환이 아니라 항생제로 완치되는 감염병이다. 호주에서는 위궤양 환자가 급감했고, 연간 3억 달러의 의료비가 절감됐다. 위암 발생률도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 매운 음식. 캡사이신이 위 점막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위 점막의 방어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운 음식은 위궤양의 원인이 아니었다. 진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선형 세균이었고, 그 세균을 찾은 사람은 자기 위에 균을 마셔야 인정받았다.
1편에서 우리는 마케팅이 과학의 탈을 쓴 것을 봤다. 3편에서는 문장 하나를 잘라 읽어 의미가 반대가 된 것을 봤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벽이다. 상식이 너무 단단해서, 진짜 원인을 찾은 사람이 오히려 무시당했다.
당연한 것은 질문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질문이 멈춘 자리에서 진짜 원인은 숨는다. 우리가 추적해야 할 것은 "틀린 답"이 아니라, "묻지 않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