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뇌의 10%만 쓴다.
나머지 90%를 깨우면 천재가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고 한다. 영화 〈루시〉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뇌를 100% 활성화하자 시간을 조종했다. 영화 〈리미트리스〉에서 브래들리 쿠퍼가 약 한 알로 뇌 전체를 열자 천재가 됐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한 번쯤 믿어보고 싶어진다.
출처를 추적해보자. 이번에는 추적 끝에 아무것도 없다.
용의자가 셋 있다. 전부 무혐의다.
첫 번째, 윌리엄 제임스. 1907년, 하버드의 심리학자이자 미국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 그의 저서 《인간의 에너지(The Energies of Men)》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가능한 정신적·신체적 자원의 아주 작은 부분만 사용하고 있다."
이 문장이 10% 신화의 기원으로 흔히 인용된다. 그러나 제임스는 "잠재력"을 말한 것이지, "뇌"를 말한 것이 아니다. 퍼센트를 언급한 적도 없다. "당신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격려였지, "뇌의 90%가 놀고 있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두 번째, 앨버트 아인슈타인. "나는 뇌의 10% 이상을 사용했기 때문에 천재가 됐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아인슈타인 기록보관소에서 철저히 조사한 결과, 이런 발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온갖 명언의 위작이 붙는 인물이다.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붙으면 출처를 묻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과학 실험. 1920~30년대, 신경과학자 칼 래슐리가 쥐의 뇌 일부를 제거한 뒤에도 미로를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뇌의 많은 부분이 불필요하다"는 해석으로 흘렀다. 그러나 래슐리 자신은 그런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용의자는 있지만 범인은 없다.
그렇다면 10%라는 숫자는 어디서 왔는가. 변환의 경로를 추적하면 이렇다.
1907년, 제임스가 "작은 부분(a small part)"이라고 썼다. 숫자는 없었다. 1920년대, 자기계발 운동이 이 아이디어를 흡수했다. 1929년 세계연감(World Almanac)에 이런 문장이 실린다.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뇌 능력의 약 10%만 사용한다고 말한다." 과학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결정적 전환은 1936년에 일어난다. 저널리스트 로웰 토머스가 데일 카네기의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하버드의 윌리엄 제임스 교수는 보통 사람은 잠재적 정신 능력의 10%만 개발한다고 말했다."
제임스의 "작은 부분"이 토머스의 손에서 "10%"가 됐다. 그리고 "잠재력"이 다음 세대를 거치며 "뇌"로 바뀌었다.
세 번의 미끄러짐이다. "잠재력의 일부" → "능력의 10%" → "뇌의 10%." 매 단계마다 약간씩만 달라졌다. 그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전언 게임이다. 처음 사람이 말한 것과 마지막 사람이 들은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 신화가 자기계발 구호로 끝나지 않고 "과학적 사실"로 격상된 데는, 오해를 뒷받침하는 재료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1930년대, 신경외과의 와일더 펜필드가 뇌 표면을 전기로 자극하면서 반응이 없는 영역을 발견했다. "침묵 피질(silent cortex)"이라 불렸다. 이것이 "안 쓰는 뇌"의 증거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연합 피질이라 불리는 영역으로, 사고, 계획, 언어 이해 같은 가장 고차원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전기 자극에 반응하지 않은 것은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단순 자극으로는 작동하지 않을 만큼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교세포(glial cell)가 뉴런보다 10배 많다는 추정도 있었다. "뇌세포의 10%만 뉴런이고 나머지는 보조 세포"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이 비율 자체도 이후 과대 추정으로 밝혀졌지만, 숫자가 공교롭게 10이었기 때문에 신화를 강화했다.
어느 하나도 "10%만 쓴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조각들이 모이면 그럴듯한 배경이 된다. 신화는 증거가 아니라 분위기로 유지된다.
과학은 뭐라고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로 뇌를 관찰하면, 모든 영역이 항상 활동하고 있다. 잠잘 때도 그렇다.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렇다. 기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영역은 과제가 없을 때 오히려 더 활성화된다. 뇌는 쉬지 않는다.
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칼로리의 20%를 소비한다. 진화는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90%가 쓸모없었다면, 자연선택이 진작 그 부분을 줄였을 것이다. 우리의 뇌가 이 크기인 것은, 전부 쓰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아주 작은 부위가 손상되어도 심각한 기능 장애가 온다. 말을 못 하거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성격이 바뀌거나. 90%가 여분이었다면 작은 손상은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2002년, 리우데자네이루 생명박물관의 수자나 에르쿨라노-우젤이 대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59%가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신화를 믿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국제 신경과학자 35명 중 6%도 이 신화를 사실로 답했다. 신경과학자조차 속았다.
이전 편들에서 우리는 출처를 추적해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케팅을 발견했고, 반쪽 인용을 발견했고, 나쁜 실험을 발견했고, 산업의 벽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추적 끝에 아무것도 없다. 누구도 말한 적 없는 문장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무서운 종류의 상식이다. 출처가 있는 상식은 출처를 뒤집으면 흔들린다. 출처가 없는 상식은 뒤집을 대상이 없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자기계발서가 인용하고, 영화가 반복하고, 누군가 아인슈타인이 그랬다고 덧붙인다. 출처가 없으니 아무도 반박할 수 없고, 아무도 반박하지 않으니 사실이 된다.
당연한 것의 출처를 추적했는데 도착지가 없을 때, 그때가 가장 의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