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출처] 하루 만 보 걸어야 건강하다

by 한경수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매일 목표를 보여준다. 10,000보.


달성하면 축하 애니메이션이 뜨고, 못 채우면 은근한 압박이 온다. 퇴근 후 부족한 걸음을 채우려고 아파트 단지를 도는 사람도 있다. 이 숫자의 출처는 어디인가. 의학 논문인가. 세계보건기구인가. 아니다. 시계 회사의 상품명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일본 전역에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올림픽 선수들의 몸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자기가 얼마나 안 움직이는지를 자각했다. 이 분위기 속에서 1965년, 일본의 시계 제조사 야마사(Yamasa)가 세계 최초의 소비자용 보수계를 출시한다. 허리에 차는 단순한 장치였다. 제품 이름은 "만보기(万歩計, manpo-kei)."

만(万)은 10,000. 보(歩)는 걸음. 계(計)는 측정기. 제품 이름 자체가 "만 보 측정기"였다. 상품의 이름이 곧 건강의 기준이 된 것이다.


왜 하필 만 보였는가. 하버드 의대 역학자 이민 리의 설명이 명쾌하다. "당시 만 보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만이라는 숫자가 좋게 들리고 기억하기 쉬웠을 뿐입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숫자(a made-up number)입니다."

또 다른 설도 있다. 한자 万의 모양이 걷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숫자가 시각적 브랜딩까지 겸한 셈이다. 과학적 근거 없이, 상품 이름에서 숫자가 태어났다.


만보기는 올림픽 직후의 건강 열풍을 타고 폭발적으로 팔렸다.

일본 각지에 걷기 클럽이 생겼고, 만 보가 최소 기준이 됐다. "오늘 만 보 걸었어?"가 인사처럼 쓰였다. 수십 년에 걸쳐 이 기준은 일본을 넘어 세계로 퍼졌다. WHO와 미국심장협회(AHA)도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만 보라는 숫자는 그 흐름 위에 올라탔다.


결정적 전환은 2000년대에 일어난다. 피트빗, 애플워치, 가민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하면서, 10,000보가 기본 목표값(default)으로 설정됐다. 기기를 처음 켜면 만 보가 이미 입력되어 있다. 사용자 대부분은 이 숫자를 바꾸지 않는다. 기본값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1965년의 상품명이 2000년대의 기본값이 됐다. 마케팅 숫자가 기술 표준으로 굳은 것이다.


과학은 뭐라고 하는가.

2023년, 유럽 예방심장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Preventive Cardiology). 17개 연구, 226,000명, 평균 7년 추적. 결론: 하루 4,000보부터 사망 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 만 보가 아니라 4,000보다. 물론 더 걸으면 더 좋다. 그러나 "최소 만 보"라는 기준은 과학이 정한 것이 아니다.


2022년, 시드니 대학. 치매 위험을 50% 줄이는 최적 보수는 약 9,800보였지만, 3,800보만 걸어도 25%의 위험 감소 효과가 있었다. 비슷한 패턴이 심혈관 질환과 암 발생률에서도 나타났다.

하버드 의대 이민 리의 연구. 고령 여성에서 건강 효과는 약 7,500보에서 정체했다. 그 이상 걸어도 추가적인 이득은 미미했다. 이민 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보다 1,000보만 더 걸어도 효과가 있습니다. 만 보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합하면 이렇다. 걷기는 좋다. 더 걸으면 더 좋다. 그러나 "만 보"라는 특정 숫자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 4,000보도 좋고, 7,500보도 충분하다. 만 보를 못 채웠다고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3편에서 우리는 "8잔"이라는 숫자가 보고서에서 잘려 나와 건강 기준이 된 것을 봤다. 13편의 "만 보"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3편의 숫자(8잔)는 문서에서 잘려 나와 입으로 전해졌다. 누군가 원문을 확인하면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13편의 숫자(만 보)는 제품에 내장되어 손목에서 매일 반복된다. 입으로 전해지는 숫자는 의심할 수 있다. 제품에 내장된 숫자는 의심하기 어렵다. 기본값은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1편에서 시리얼 회사가 아침의 중요성을 만들었고, 11편에서 다이아몬드 회사가 사랑의 전통을 만들었고, 13편에서 시계 회사가 건강의 기준을 만들었다. 세 경우 모두, 상품을 팔기 위해 만든 메시지가 문화가 됐다.


당신의 스마트워치가 오늘 만 보를 채우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의학의 조언이 아니다. 1965년 일본 시계 회사의 상품명이 60년간 살아남아 당신의 손목에 도달한 것이다. 걷는 것은 좋다.


다만 몇 보를 걸을지는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당신이 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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