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의 간장 떡찜이 길거리 고추장 떡볶이가 되기까지
분식집 앞을 지나간다.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떡볶이를 떠올릴 때 빨간색 이외의 색을 상상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음식은 원래 빨갛지 않았다.
19세기 말, 조선 후기의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이 음식이 처음 등장한다. 흰떡, 등심살, 참기름, 간장, 파, 석이버섯, 잣, 깨소금. 고추장은 없다. 매운맛도 없다. 그리고 이름도 다르다. 떡찜. 떡잡채. 떡전골. "떡볶이"라는 세 글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설이 있다. 이 음식의 원형이 파평윤씨(坡平尹氏) 종가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집안의 간장이 유독 맛이 좋았고, 그 간장으로 쇠고기를 조린 찜 요리에 떡을 넣어 먹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는 추측이다. 떡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간장이 주인공이었다.
"떡볶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42년, 방신영(方信榮)의 조선요리제법이다. 그 전까지 이 음식은 볶는 음식도 아니었다. 양념장과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이었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 색은 여전히 간장의 검은색이었다.
일제강점기 유행가 「오빠는 풍각쟁이」의 가사를 보면,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라는 대목이 나온다. 불고기와 나란히 놓인 음식. 이것은 서민의 간식이 아니었다. 쇠고기가 들어가는 귀한 음식이었다.
마복림(馬福林). 1921년 전라도 광주 출생. 해방 직후에는 남편과 함께 미군 물품 보따리상을 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그녀는 어느 중국집에서 중국식 양념이 밴 떡 요리를 먹게 된다.
맛은 좋았다. 그런데 느끼했다.
"칼칼한 양념이 더해지면 좋겠다."
이 한 문장이 한국 음식사의 분기점이 된다. 마복림은 고추장에 춘장을 섞었다. 가래떡과 야채를 넣고 연탄불 위 양은냄비에서 볶아냈다. 서울 신당동, 광희문 밖 개천을 복개한 공터. 그곳에서 좌판을 펼쳤다.
여기서 결정적인 치환이 일어난다. 쇠고기가 빠지고 어묵이 들어간다. 재료의 신분이 바뀌면 가격이 바뀌고, 가격이 바뀌면 먹는 사람이 바뀐다. 궁중에서 길거리로. 정식에서 간식으로. 간장에서 고추장으로.
떡볶이는 같은 이름을 가진 전혀 다른 음식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마복림의 떡볶이는 신당동 주민들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퍼진 계기는 의외의 것이었다.
1970년대, 신당동 떡볶이집들이 뮤직박스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안에는 음악을 틀어주는 DJ가 있었다. 즐길 것이 많지 않던 시절, 멋진 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며 매콤한 떡볶이를 먹는 것은 꽤 훌륭한 문화생활이었다. 언론이 주목한 것은 떡볶이가 아니라 DJ였다. DJ가 손님을 불렀고, 손님이 떡볶이를 먹었고, 떡볶이집이 늘었고, 골목이 형성되었다.
떡볶이 하면 궁중떡볶이를 떠올리던 인식이 신당동 떡볶이로 옮겨간 것은 이 무렵이다.
1996년, 고추장 TV 광고에 마복림 할머니가 등장한다. "우리 떡볶이 고추장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 이 한마디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떡볶이는 완전히 빨간색이 되었다. 아무도 간장 떡볶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2011년 12월 13일, 마복림은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양념 비법은 며느리들에게 전수되었고,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떡볶이의 원래 색은 간장의 검은색이었다. 원래 재료는 쇠고기였다. 원래 자리는 궁중이었다. 원래 이름은 떡찜이었다. 그리고 원래는 볶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가 "떡볶이"라고 부르는 음식은 1953년에 태어났다. 나이로 치면 73년. 조선시대 궁중떡볶이의 역사에 비하면 짧다. 하지만 아무도 궁중떡볶이를 "원래 떡볶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궁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구별이 된다. 원조가 수식어를 달게 되고, 후발주자가 본명을 차지한다. 출처의 역전이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 간장이 고추장으로, 쇠고기가 어묵으로, 궁중이 길거리로, 찜이 볶음으로. 그리고 그 전환을 만든 것은 학술 연구도 정책도 아니었다. 중국집에서 느낀 한 순간의 느끼함이었다.
우리가 "원래"라고 믿는 것의 나이는 대부분 70년이 채 되지 않는다.
1편에서 MSG의 공포가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면, 떡볶이의 변신은 중국집에서 느낀 한 순간의 느끼함에서 시작되었다. 당연한 것들의 출처는 늘 의외로 짧고, 의외로 사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