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출처] 나누면 생긴다

범주화는 분류가 아니라 생성이다

by 한경수

1월은 가넷. 3월은 아쿠아마린. 9월은 사파이어.

태어난 달마다 돌이 하나씩 붙어 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걸 누가 정했는가. 1912년, 미국 보석상 협회(Jewelers of America)다. 그 전에도 보석과 달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목록은 그해에 만들어졌다. 보석을 팔기 위해서.

목록이 만들어진 순간, 12개의 범주가 생겼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갔다.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태어난 달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범주 쪽에서 사람을 집어넣은 것이다.

범주화는 있는 것을 나누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없던 것을 만드는 행위다.

"정상"을 정의하면 "비정상"이 생긴다. 비정상은 원래 거기 있었던 게 아니다. 정상이라는 선을 긋는 순간 태어난 것이다. "전통 음식"을 정의하면 "퓨전 음식"이 생긴다. "원어민"을 정의하면 "비원어민"이 생긴다. 이쪽을 규정한 칼이 저쪽을 만들어낸다. 나뉜 양쪽은 동시에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한쪽이 원래 있었고 다른 한쪽이 나중에 생긴 것처럼 느낀다.

12간지(十二干支)도 같은 구조다. 수천 년 전, 이건 시간을 세는 도구였다. 해를 구분하고 날을 기록하기 위한 실용적 체계. 그런데 어느 순간 넘어갔다. "쥐띠는 영리하다." "호랑이띠는 용감하다." 시간을 세는 도구가 사람을 읽는 도구로 바뀐 것이다. 분류 체계가 설명 체계가 되었다.

한번 설명 체계가 되면 돌아가기 어렵다. 먼저 자리 잡은 범주는 "원래 그런 것"이 된다. 나중에 온 쪽이 설명을 요구받는다. 왜 그 범주에 안 맞느냐고.

통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가설 검정을 할 때, 먼저 귀무가설(歸無假說)을 세운다. "차이가 없다" 혹은 "효과가 없다." 그러면 대립가설이 자동으로 생긴다.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귀무가설을 원래 상태라고 느끼고, 대립가설을 도전하는 쪽이라고 느낀다. 도전하는 쪽이 증거를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귀무가설도 누군가 설정한 범주다. 먼저 놓인 쪽이 기본값의 권위를 갖는 것이지, 먼저 놓였다고 더 참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탄생석도 띠도 본인이 고른 게 아니다. 태어난 시점에 의해 자동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끌어안는다. "난 원숭이띠라 그래." "내 탄생석은 사파이어야." 말하는 순간, 부여된 범주가 자발적 정체성이 된다. 범주가 사람을 규정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범주를 자기 안에 들인 것이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건 어느 범주에 속하는가"가 아니라, "이 범주는 누가 먼저 그었는가." 칼을 든 손을 보면, 나뉜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1912년의 보석상이 보이고, 수천 년 전의 기록관이 보이고, 가설을 세우는 연구자의 손이 보인다. 범주가 세계를 정리해주는 것 같지만, 실은 세계를 잘라낸 것이다. 잘린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 거기서부터 다르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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