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년대 에도(江戶). 도쿠가와 막부의 재정을 관장하던 관리들은 같은 문제를 거듭 보고받고 있었다. 나라의 은(銀)이 줄고 있다는 보고였다. 구리도 금도 아닌 은이, 특정 한 방향으로만 빠져나가고 있었다. 쓰시마(對馬) 섬을 거쳐 조선으로. 그리고 그 은이 조선에서 받아오는 것은 대부분 한 가지 물건이었다. 인삼이었다.
막부는 결국 기묘한 결정을 내렸다. 조선 인삼값을 치르기 위한 전용 은화를 따로 주조하기로 한 것이다.
1710년부터 찍어낸 이 은화에는 이름이 붙었다. 인삼대왕고은(人參代往古銀). 풀어 쓰면 "인삼값으로 (조선에) 가는 옛 품위의 은"이라는 뜻이다. 당시 일본 내에서 통용되던 일반 은화보다 순도를 더 높게 맞춘, 오직 대(對)조선 인삼 결제용으로만 쓰이는 화폐였다.
한 나라가 특정 수입품 하나 때문에 전용 화폐를 주조한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드물다. 그리고 이 한 장면만큼 조선 인삼의 값이 어디서 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인삼값은 조선 땅에서 매겨진 것이 아니었다. 에도의 관리들이 은의 유출을 막으려고 애쓰다가, 막지 못해 결국 전용 화폐를 찍어내던 그 방에서 매겨졌다.
조선의 산과 밭에서 자란 풀뿌리였다. 그런데 그 값을 결정한 것은 풀뿌리가 아니었다. 그것을 원하는 바다 건너의 수요, 그 수요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해 흔들리던 막부의 재정, 순도 높은 은화를 따로 찍어내야 할 만큼 절박했던 재정 관리들의 계산 — 이 모든 것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인삼의 값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이백 년이 지난 20세기 초, 같은 바다 건너에서 또 다른 값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개성 일대의 고려시대 고분들이 도굴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청자였다. 상감청자, 순청자, 음각청자. 오늘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들의 상당수가 이 시기 땅속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물건들을 사들이는 쪽은 조선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인 골동상, 총독부 관리, 그리고 소수의 일본인 수집가들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다. 그는 초대 통감 시절 고려청자 수백 점을 수집했고, 상당수를 일본 황실과 지인들에게 헌상했다. 이 경로를 따라 청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늘날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아타카(安宅) 컬렉션,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 상당수의 이력은 이 시기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짚고 가야 한다. 조선 후기까지 청자는 땅속에 묻힌 부장품이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청자는 죽은 자의 그릇이었다. 산 사람이 감상하거나 거래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인 수집가들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그들에게 청자는 미술품이었다. 다도(茶道)의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고려다완(高麗茶碗)을 최고로 쳐온 감식안이, 이번에는 청자에 가닿은 것이다.
조선 사람의 눈에는 부장품이었던 것이 일본 사람의 눈에는 미술품이었다. 물건은 같았다. 시선이 달랐다.
그리고 값이 달라졌다. 부장품에는 값이 없다. 미술품에는 값이 있다. 청자의 값은 청자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미술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바다를 건너 도착한 그 자리에서 생겼다.
여기서 인삼과 청자가 한 줄로 꿰어진다. 두 물건 모두 조선 안에서는 값이 없거나 낮았다. 인삼은 약재였고 청자는 부장품이었다. 두 물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가 수요와 감식안을 만났을 때 비로소 값이 폭등했다. 인삼은 재정을 흔들 만큼, 청자는 세계적 경매 시장의 상한선을 만들 만큼.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값을 만든 것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였다. 조선의 심마니도, 고려의 도공도, 자신이 만든 것의 "값"을 결정하지 못했다. 결정한 것은 바다 건너의 눈이었다. 에도의 재정 관리와 메이지의 수집가. 한 사람은 재정 서류를 앞에 놓고 계산했고, 한 사람은 골동상의 진열장 앞에 서서 감탄했다. 계산과 감탄은 달라 보이지만, 같은 일을 했다. 값이 매겨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 땅에서 나온 물건의 값이 처음 문서에 적힌 곳은 한양이 아니었다. 에도였고, 도쿄였다. 값이라는 것이 있기 전에 값이 매겨질 수 있는 자리가 먼저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가 조선 밖에 있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사실이다. 값은 물건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값은 시선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20세기 초까지 그 시선은 바다 건너에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이상한 틈이 하나 있다. 일본의 시선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다른 바다 건너에서는 이미 이 물건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 바다는 더 오래되었고, 더 가까웠고,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