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연구소] 그럴듯함 구조의 양면

그럴듯함과 걸림은 하나다

by 한경수

이 대화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럴듯하게 말한다는 게 뭘까?"

마지막에 도착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걸린다는 게 뭐지?"

양쪽 끝에서 출발한 것 같았다. 하나는 매끄러움에 대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멈춤에 대한 질문이다. 방향이 반대다. 그런데 돌아보니 같은 자리였다.

그럴듯함의 구조는 이렇다.

기존 범주로 설명이 된다. 들어맞는다. 매끄럽다. 매끄러우면 빈틈이 없다. 빈틈이 없으면 의심이 작동할 곳이 없다. 의심이 없으면 지나간다. "간이 나쁘면 눈이 침침하다." 끄덕이고 지나간다. "아침을 먹어야 건강하다." 끄덕이고 지나간다. "쥐띠는 영리하다." 끄덕이고 지나간다. 그럴듯함이란 지나가게 만드는 힘이다. 멈추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힘이다.

걸림의 구조는 이렇다.

기존 범주로 설명이 안 된다. 들어맞아야 할 자리에 안 들어맞는다. 매끄럽지 않다. 매끄럽지 않으면 빈틈이 생긴다. 빈틈이 생기면 멈춘다. "탄생석은 당연한 거지." 그런데 1912년이다. 당연한 것은 오래된 것이어야 하는데 고작 100년이다. 안 맞는다. 멈춘다. 걸림이란 멈추게 하는 힘이다.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둘을 나란히 놓으면 보인다. 반대가 아니다. 같은 구조의 양면이다.

기존 범주와의 관계. 그것이 매끄러우면 그럴듯함이다. 어긋나면 걸림이다. 같은 문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매끄러우면 문을 열고 지나가고, 어긋나면 문 앞에 서서 본다. 문은 하나다. 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가 선명해진다.

그럴듯함은 보이지 않는다. 매끄러우니까 보이지 않는다. 지나갔으니까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 끄덕이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지만,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매끄러움은 투명하다.

걸려야 비로소 보인다.

탄생석에 걸리니 범주화가 보였다. 범주화에 걸리니 접착제가 보였다. 접착제에 걸리니 굳은 연결이 보였다. 굳은 연결에 걸리니 비용이 보였다. 비용에 걸리니 걸림 자체가 보였다. 매끄럽게 지나갔던 것들이 하나씩 멈춰 서면서, 그것들이 원래 매끄럽게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걸림이 그럴듯함을 비춘다. 걸리지 않으면 그럴듯함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이 대화는 그럴듯함에서 출발해서 걸림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은 자리였다. 다른 방향에서 본 것뿐이었다. 한쪽에서 보면 지나가는 것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멈추는 것이다. 한쪽에서 보면 편안한 것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불편한 것이다. 한쪽에서 보면 끄덕임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질문이다.

같은 문이다. 지나갈 것인가, 설 것인가. 그 차이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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