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연구소] 걸림을 찾아다니는 사람

by 한경수

같은 책의 같은 페이지를 두 사람이 읽는다. 한 사람은 페이지를 넘긴다. 한 사람은 한 문장에서 멈춘다. 멈춘 사람은 그 문장을 다시 읽는다. 한 번 더 읽는다. 책을 덮고 창밖을 본다. 며칠 뒤 전혀 다른 자리에서 그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같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 사람에게는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타고난 감수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쌓인 것이다. 읽은 것, 부딪힌 것, 틀려본 것, 의심해본 것. 그것들이 안에서 격자(格子)를 만든다. 격자가 촘촘한 사람에게만 무언가가 걸린다. 격자가 성기면 대부분이 통과해버린다. 격자가 없으면 모든 것이 통과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적어둔다. 걸림은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걸릴 자리가 길러지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훈습(熏習)이라 불렀다. 향을 피운 방에 옷을 두면, 옷은 향을 배운 적이 없는데도 향내가 밴다. 의식한 적 없는 사이에 사람은 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무엇을 외운 것도 아니고 무엇을 결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래 머문 자리의 결이 몸에 옮겨 앉을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걸림을 찾아다닌다.

한 번 씨앗을 받아본 사람은 그 맛을 안다. 어느 문장 앞에서 멈춰 섰다가, 며칠 뒤 설거지를 하다가, 산책길에서, 잠들기 직전에 그것이 다시 올라오는 경험. 그 회로가 한 번 돌면 사람은 그것을 다시 돌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일부러 낯선 책을 펴고, 동의되지 않는 글을 읽고, 자기 생각과 어긋나는 자리에 일부러 가 앉는다. 매끄러운 것은 편하지만 편한 것은 곧 무뎌지기 때문이다. 무뎌지면 본 것 같은데 본 게 없고, 읽은 것 같은데 남은 게 없다. 그 상태가 무서워서 사람은 부딪히러 간다. 부딪혀야 자기 윤곽이 다시 보인다.

걸림을 찾는 사람은 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살아 있음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이런 사람에게 철학은 책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먼저 부딪히고, 멈추고, 한참 뒤에야 *왜 그게 걸렸는지*를 묻는다. 그 물음이 오래 남으면 거기서 비로소 자기 언어가 자라난다. 철학의 실천이 아니라 실천의 철학이다. 머리에서 손발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손발에서 머리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 길을 오래 걸으면 어느 순간 둘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사는 것이 곧 묻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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