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의 출처] 짜장면의 '짜장'은 무엇인가

by한경수

음식이 바뀌고, 한자가 잊히고, 결국 이름의 표기까지 바뀌었다.


검은 면 한 그릇이 식탁에 놓인다. 단맛, 짠맛, 기름. 한국에서 이 음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린이 생일, 졸업식, 이삿날, 야근하는 밤. 짜장면은 한국인의 일상에 깊이 박혀 있다.

그런데 짜장면의 "짜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머뭇거린다.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무슨 뜻인지,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매주 한 번씩 먹어도 잘 모른다.


이 음식의 이름은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바뀌었다. 음식이 바뀌었고, 한자가 잊혔고, 표기법까지 바뀌었다.


첫 번째 변형: 1882년, 산둥에서 인천으로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다. 청나라는 군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했고, 광둥(廣東) 수사제독 오장경(吳長慶)이 이끄는 군함 5척이 제물포로 들어왔다. 군대만 들어온 것이 아니다. 군대를 따라온 상인 40여 명, 그리고 보급을 맡은 산둥(山東) 출신 노동자들이 함께 들어왔다.


산둥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이다. 당시 산둥은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일어나 살기 어려운 상태였다. 일자리를 찾아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인천항 일대에 정착했다. 1883년 인천이 개항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租界地)가 설치되면서, 지금의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지고 온 음식 중에 작장면(炸醬麵)이 있었다. 산둥 지방의 가정식이었다. 한자를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작(炸)은 "기름에 튀기다", "지지다"라는 뜻이다. 장(醬)은 발효시킨 콩장. 면(麵)은 밀가루 국수. 합치면 "기름에 볶은 장을 얹은 국수"가 된다. 작장면을 만들 때 콩장을 기름에 볶으면 자작자작 작은 폭발음이 들리고 기포가 터진다. 그래서 작(炸) 자가 쓰였다는 설명도 있다. 글자 그대로 "튀긴 장 국수"다.


이 음식은 우리가 아는 짜장면과 전혀 다르다. 콩과 밀로 짜게 발효시킨 면장(麵醬)을 쓰고, 기름기는 적고, 짠맛이 강하다. 비비기보다는 섞어 먹는 음식이다. 단맛은 거의 없다. 검은색도 아니다.

1890년대,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던 산둥 출신 쿠리(苦力, 부두 노동자)들이 끼니로 먹기 시작한 것이 한반도 짜장면의 출발점이다. 1905년, 화교 우희광(于希光)이 인천에 공화춘(共和春)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정식 청요릿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작장면은 여기서 처음으로 메뉴판에 올랐다.


두 번째 변형: 1948년, 캐러멜이 들어가다

해방 이후, 화교들에게는 격변의 시기가 찾아왔다. 일본이 물러갔고, 미군정이 들어섰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한국과 중국의 국교가 끊어지면서, 한국에 살던 화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잃었다.


박정희 정부는 화교의 재산권에 제약을 두었다. 화교들은 큰 사업을 할 수 없었고, 식당이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되었다. 1948년에 332개였던 한국 내 중국집이 1972년에는 2,454개로 늘어났다. 화교들은 살기 위해 중국집을 차렸다.


여기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1948년, 화교 왕송산(王松山)이 운영하던 영화장유라는 회사가 짜장면용 면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그는 면장에 캐러멜을 넣어 단맛이 나도록 했다. 상품명은 "사자표 춘장(春醬)".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국식 짜장면의 결정적 분기점이다.


원래 산둥의 면장은 짠맛이었다. 캐러멜이 들어가면서 단맛이 추가되었다. 색도 더 진해졌다.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면도 풍부해졌다. 짜장면은 점점 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갔다.

원래 작장면에 양파는 들어가지 않았다. 한국의 짜장면에는 양파가 듬뿍 들어간다. 원래 작장면은 비비기 어려울 만큼 뻑뻑했다. 한국의 짜장면은 녹말을 풀어 비비기 좋게 만들었다. 원래 작장면은 짠 음식이었다. 한국의 짜장면은 단 음식이다.


1980년대 말,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에 가서 본토 짜장면을 먹어보고 실망했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같은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작장면과 짜장면은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었다.


세 번째 변형: 한자가 잊혔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짜장면이 한국화되면서, 정작 그 이름의 한자가 한국인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다.

작(炸)이라는 한자는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다. 한국인 대부분은 짜장면을 매주 먹으면서도 이 글자를 본 적이 없다. "짜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색깔(검은색)이나 맛(단짠)을 떠올리지, 한자를 떠올리지 않는다. 음식이 한국화되는 과정에서, 이름의 출처도 함께 흐려졌다.


게다가 한국 한자 음독으로 炸은 "작"이다. 그래서 학술적으로는 이 음식이 작장면(炸醬麵)으로 표기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비롯한 공식 자료들도 작장면이라는 한자 표기를 쓴다. 그런데 어느 한국인도 이 음식을 "작장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름과 한자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것이다. 음식의 이름은 한국 일상어가 되었고, 그 이름의 출처인 한자는 학술 자료 속으로 들어갔다.


네 번째 변형: 2011년, 표기법이 항복하다

여기서 한국 언어 정책사에서 드문 사건이 일어난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될 때, 국립국어원은 이 음식을 "자장면"으로 표기하도록 정했다.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였다. 중국어 炸(zhá)의 zh는 한국어 ㅈ에 대응하므로, "자장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규범상으로는 일관된 결정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2002년, 국립국어원이 직접 한 표준 발음 실태 조사에서 서울·경기 지방 사람 210명 중 151명이 "짜장면"으로 발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91.8%였다. 이건 통계적으로 압도적인 수치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은 "자장면"만을 표준어로 고수했다. 25년 동안.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은 "자장면"이라 발음했다. 시인 안도현은 자기 시집에 "짜장면"이라 썼는데, 아나운서가 그것을 "자장면"으로 읽어서 마음이 상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시인이 의도한 운율조차 규범 앞에서 교정당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발음과 책에 적힌 표기가 따로 노는, 25년의 분열이 이어졌다.


2011년 8월 31일, 국립국어원이 끝내 손을 들었다.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이날 39개의 다른 단어들도 함께 표준어로 추가되었다 — 먹거리, 눈꼬리, 나래, 내음, 택견, 품새. 하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짜장면이었다. 25년 만에 짜장면이 자장면 옆에 나란히 섰다.


이 사건은 한국 어문 정책사에서 드문 사례다. 규범이 현실에 양보한 것이다. 보통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규범이 현실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짜장면의 경우에는, 91.8%라는 현실의 무게가 25년 동안 버티던 규범을 무너뜨렸다.


언어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어에는 외래어를 받아들일 때 된소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game이 "께임"으로, bus가 "뻐쓰"로, dollar가 "딸러"로 발음된다. 짜장면도 같은 경로다. 외래어가 한국어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어의 음운 구조에 맞게 변형되어야 한다. "자장"은 중국어에 충실한 표기였지만, 한국인의 입에는 맞지 않았다.

규범은 때로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정리

이렇게 짜장면은 네 번 변형되었다.

첫 번째 변형은 1882년, 산둥의 작장면이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건너온 사건이다. 음식의 지리적 출처가 옮겨졌다.

두 번째 변형은 1948년, 캐러멜이 면장에 들어가면서 짠 음식이 단 음식이 된 사건이다. 음식의 맛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 번째 변형은 한자의 망각이다. 작(炸)이라는 글자가 일상에서 사라지면서, 이름의 출처가 흐려졌다. 우리는 이 음식을 매주 먹지만, 그 이름의 뜻을 모른다.

네 번째 변형은 2011년, 표기법이 현실에 항복한 사건이다. 25년 동안 "자장면"이었던 표준어가 "짜장면"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


이름의 출처를 추적하면 1882년의 인천 부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그 출처를 다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과는 다른 음식이 나타난다. 같은 이름인데 다른 음식이고, 같은 한자인데 다른 발음이다. 출처는 분명한데, 그 출처가 도착한 자리는 출처와 너무 다르다.


2편의 떡볶이는 이름은 그대로인데 내용이 바뀌었다. 4편의 설렁탕은 내용은 그대로인데 이름의 유래가 사라졌다. 6편의 김치는 이름과 색이 다른 시간에서 왔다. 8편의 짜장면은 이 모든 변형을 한 번에 겪었다. 음식이 바뀌었고, 한자가 잊혔고, 표기법이 바뀌었다. 출처 추적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먹는 것의 출처] 유기농이 더 영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