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스톤 발표장이었다.
학생이 화면에 산점도를 띄웠다. 조선 왕들의 수명을 본다고 했다. 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x축을 봤다.
왕의 순번이 놓여 있었다.
태조 1, 정종 2, 태종 3, 세종 4. 그렇게 27까지. 점 하나가 한 왕이고, 높이는 그 왕이 산 햇수였다. 학생은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한 가지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조와 정종 사이의 거리가 1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정종과 태종 사이도 1이다. 세종과 문종 사이도 1이다. 연산군과 중종 사이도 1이고, 정조와 순조 사이도 1이다. 산점도의 x축은 거리를 가진 축이다. 1과 2의 사이는 2와 3의 사이와 같아야 한다. 그래야 점들의 위치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왕의 순번에는 거리가 없다. 1대와 2대 사이에 흐른 시간과 25대와 26대 사이에 흐른 시간이 같을 리가 없다. 같을 수가 없다.
순번은 이름표다. 측정값이 아니다.
이름표를 축에 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림이 그려지긴 한다. 컴퓨터는 받아주면 안 되는 입력을 받아주지 않는 법을 모른다. 엑셀도 파이썬도 마찬가지다. 숫자처럼 생긴 것이 들어오면 숫자로 처리한다. 그래서 점들이 화면에 찍힌다. 학생은 그것이 그려졌으니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발표장의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림은 그림이니까.
x축이 출생연도였다면 어땠을까.
그 산점도 위에는 임진왜란이 보였을 것이다. 병자호란도 보였을 것이다. 영조와 정조의 긴 치세가 한쪽에 늘어져 있었을 것이고, 19세기로 진입하면서 어린 왕들이 잇따라 즉위하던 시기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점들이 단순히 흩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 위에 흩어진 모양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림이 무언가를 말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한 번의 선택으로 사라졌다.
학생에게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엑셀 파일의 옆 칸에 마침 순번이 있었을 것이다. x축에 무엇을 넣을지 묻지 않은 채로, 손이 가는 칸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도구가 받아줬고, 그림이 그려졌고, 발표 자료가 완성됐다. 어디에서도 멈출 이유가 없었다. 멈추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산점도는 두 변수의 관계를 보겠다는 선언이다. 두 변수가 모두 거리를 가진 축 위에 놓여야 그 선언이 성립한다. 한쪽이 이름표라면, 그것은 산점도가 아니다. 산점도의 모양을 한 무엇이다. 그림은 그려졌지만 선언은 무너졌다. 선언이 무너진 그림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 발표가 끝날 때까지 학생을 멈추지 않았다. 멈춰서 무엇을 묻겠는가. 그 질문은 4학년에게 던질 질문이 아니라 1학년에게 던졌어야 할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4년 동안 누구도 던지지 않은 질문이었다. 학생의 잘못이 아니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다. 도구는 빨라졌고 그림은 쉬워졌지만, 그림 앞에서 잠깐 멈추는 일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지지 않는다는 것. 멈춤은 기능이 아니라 습관이고, 습관은 누군가가 옆에서 한 번씩 "잠깐, 그 축이 뭐야?"라고 물어줘야 생긴다는 것. 그 질문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 질문을 자신에게도 던지지 못한다.
산점도를 믿었다. 그림을 믿었다. 컴퓨터가 그려준 것을 믿었다.
믿으면 틀린다.
이 장면은 그날 하나가 아니었다. 같은 발표장에서 본 다른 장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