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틀리는 숫자] 세 번 지나쳤다

by 한경수

또 다른 발표였다.


학생이 화면에 표를 띄웠다. 왼쪽 열에 이름, 오른쪽 열에 수명. 왕비들의 이름 옆에는 작은 괄호가 붙어 있었고, 그 안에 한자가 들어 있었다. 인조 옆에 한자, 숙종 옆에 한자, 영조 옆에 한자. 학생은 표를 간단히 소개하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막대그림이었다. 세로축은 수명, 가로축은 이름. 가로축의 이름 아래에도 한자가 그대로 찍혀 있었다.


나는 학생에게 물었다. 저 괄호 안의 글자는 무엇이냐고.

학생은 잠시 화면을 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데이터에 그냥 들어 있었습니다.

데이터에 그냥 들어 있었다. 그 말이 이 장면의 전부다.

학생은 세 번 지나쳤다.


처음은 데이터 파일을 열었을 때다. 웹에서 긁어온 원자료를 처음 열면 한자가 보인다. 인조 옆에 있는 두 글자, 숙종 옆에 있는 두 글자. 낯선 기호가 이름 옆에 붙어 있다. 그 순간 학생은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어야 했다. 묻지 않았다. 지나쳤다.


두 번째는 분석할 때다. 데이터를 코드로 읽어 들이면 그 한자는 문자열의 일부로 따라 들어온다. 인조라는 두 글자가 아니라 인조와 괄호와 두 글자를 합친 긴 문자열로 처리된다. 학생은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지나쳤다.


세 번째는 그림을 그릴 때다. 가로축에 이름이 찍히면 그 긴 문자열이 그대로 찍힌다. 화면에 한자가 나타난다. 학생은 그 화면을 봤다. 그리고 저장했다. 발표 자료에 붙여 넣었다. 다시 한번 띄웠다. 그동안 한 번도 지우지 않았다. 지나쳤다.


세 번 지나치는 동안 어디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답은 단순하다. 읽지 못하니까. 읽지 못하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만약 그 자리에 영어가 섞여 있었다면 학생은 지웠을 것이다. 읽을 수 있으니까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상하다고 느꼈으니 손을 댔을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없는 것은 거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취급된다.


이 역설을 한 번 더 뒤집어 본다. 원래는 반대여야 한다. 읽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더 신경 써야 할 대상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내 데이터 안에 있다는 뜻이니까. 모르는 것이 들어 있다는 건 신호다. 네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무엇이 여기 있다는 신호. 이 신호를 받으면 멈추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학생은 멈추지 않았다. 신호 자체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없는 것이 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식하려면 먼저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려야 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리는 그냥 비어 있다. 실제로는 비어 있지 않은데.


더 깊은 층이 하나 더 있다.

그림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만드는 것이다. 발표용 막대그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발표란 이것을 보시오라고 말하는 행위이고, 보여주는 사람은 보는 사람의 눈을 한 번쯤 상상해야 한다. 내 그림이 저기 앉아 있는 동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이 축 이름은 읽을 수 있을까. 이 괄호 안의 한자는 무엇으로 보일까. 그런데 학생은 이 상상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자기가 만든 그림 앞에 관객으로 서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만들고 저장하고 붙여 넣고 띄웠다. 그 사이 어디에도 내가 내 그림을 다시 본다는 순간이 없었다.


자기 결과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결과물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한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자는 그저 그날 거기 있었던 낯선 기호일 뿐이다. 낯선 기호 앞에서 멈추지 않는 습관, 낯선 것을 낯설다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각, 자기 결과물을 관객의 눈으로 다시 보지 못하는 태도. 이 세 가지가 한 장면에서 동시에 드러났을 뿐이다. 다음에는 다른 기호일 것이다. 결측값을 나타내는 낯선 코드일 수도 있고, 단위가 섞인 숫자일 수도 있고, 인코딩이 깨진 문자열일 수도 있다. 그때도 학생은 똑같이 지나칠 것이다.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데이터에 낯선 것이 있다는 건 신호다. 그 신호를 받지 못하는 데이터는 데이터가 아니다. 데이터의 모양을 한 무엇이다.

학생은 그 무엇을 분석했다. 그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무엇을 발표했다. 발표장의 누구도 그것이 데이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적할 수 있으려면 한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자리를 같이 지나쳤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지나침이 이어졌다. 그날 그 발표장 안에서 한자는 거기 있었고, 동시에 없었다.


데이터를 믿었다. 화면에 찍힌 것을 믿었다. 읽을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믿으면 틀린다.


세 장면은 서로 다른 세 학생의 발표였지만, 같은 한 장면이었다. 축을 묻지 않는 학생, 그림을 보지 않는 학생, 자기 결과물을 다시 보지 않는 학생. 셋은 같은 뿌리에서 자랐다. 그 뿌리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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