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지도] 혼자 빛나던 구슬은 혼자 식는다

by 한경수

한 시절에 가장 빛났던 구슬이 있다.

스무 살 무렵의 어느 생각, 서른 살 무렵의 어느 발견, 마흔 살 무렵의 어느 확신. 그때 그 구슬은 세계의 중심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그 구슬을 기준으로 배열되었다. 다른 구슬들은 그 빛 아래서 희미해 보였다. 그 구슬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구슬이 제일 먼저 식어 있다.

반대로 그때 구석에 있던 어느 작은 구슬,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어느 생각, 지나치며 읽은 어느 문장이 지금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 그때는 있었는지도 잘 몰랐던 구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크기와 수명은 무관하다

직관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큰 구슬일수록 오래간다. 처음에 강렬했던 생각일수록 오래 남는다. 한 시절을 사로잡은 확신일수록 세월을 견딘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다.

구슬의 수명은 그 구슬 자체의 크기와 거의 관계가 없다. 그 구슬이 다른 구슬과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었는가와 관련이 있다. 연결이 많은 구슬은 오래간다. 연결이 적은 구슬은 아무리 컸어도 빨리 식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구슬의 빛은 그 구슬 안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옆 구슬이 비춰 줄 때 밝아진다. 비춰 주는 구슬이 많으면 밝기가 유지된다. 비춰 주는 구슬이 없으면 아무리 큰 구슬이라도 어두워진다.

젊을 때 가장 빛났던 구슬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옆 구슬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는 아니다. 그 구슬이 밝게 보였던 것은 그때 그 자리의 전기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전기가 약해지면 그 구슬도 그냥 한 개의 구슬이 된다. 주변에 연결이 없으면 혼자 식는다.

혼자 빛나던 구슬은 혼자 식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구조의 법칙이다. 연결이 없는 밝기는 지속되지 않는다. 지속되지 않는 밝기는 결국 처음으로 돌아간다. 처음이 아무리 화려했어도 그렇다.


세계의 중심이었던 구슬

한 사람의 생애에는 "이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느껴졌던 자리가 몇 번 있다.

청년기의 어떤 이념, 어떤 사랑, 어떤 목표. 혹은 전문가로 자리 잡는 시기의 어떤 방법론, 어떤 이론, 어떤 직함. 그 자리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한동안 정렬시킨다. 모든 것이 그 중심으로 모인다. 읽는 책도 그 중심과 관련이 있어야 읽히고, 만나는 사람도 그 중심과 통해야 가까워진다. 세계가 한 구슬을 중심으로 정돈된다.

그때 그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보다 커 보인다. 사실은 다른 구슬들이 다 그 구슬 쪽으로 쏠려 있어서 커 보이는 것이다. 구슬 자체가 커진 것이 아니라, 주변이 기울어서 그 자리가 가장 깊은 골짜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이 중심 구슬은 너무 강해서 주변 구슬을 배척한다. 자기와 다른 결의 구슬은 옆에 두지 않는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구슬만 옆에 둔다. 그래서 중심 구슬 주변은 비슷한 구슬들로만 채워진다. 서로 다르지 않은 구슬들 사이에서는 비춤이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빛을 주고받는 것은 비춤이 아니라 반복이다. 반복은 새 빛을 만들지 않는다.

그 결과 이렇게 된다. 중심 구슬은 가장 많은 구슬에 둘러싸여 있지만, 실제로 그 구슬에 새 빛을 더해 주는 연결은 거의 없다. 둘러싼 구슬은 다 같은 빛을 반사할 뿐이다. 중심 구슬은 사실상 혼자 빛나고 있다. 주변의 메아리를 자기 빛이라고 착각하면서.

메아리는 전기를 필요로 한다. 전기가 약해지면 메아리도 잦아든다. 메아리가 잦아들면 중심 구슬은 자기가 원래 얼마나 약한 구슬이었는지를 처음으로 본다. 그 발견은 한 시절이 지나고 한참 뒤에 온다. 보통은 그때 이미 그 구슬을 지키기에는 늦었다.


작은 구슬의 비밀

반대로, 한 시절에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구슬이 노년에 가장 밝게 빛나는 경우가 있다.

지나가며 읽은 한 구절.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누군가의 한마디. 크게 여기지 않고 지나친 한 장면. 그때는 이것들이 구슬이었다는 것도 몰랐다. 주머니에 넣고 잊었다. 주머니에 넣고 잊은 채로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구슬이 떠오른다. 떠오른 순간 놀란다. 이 작은 구슬이 이렇게 깊었던 것인가. 왜 그때는 이것이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그 구슬은 혼자 커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주변의 다른 구슬들이 조용히 그 구슬을 비춰 주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은 몰랐다. 의식의 바닥 아래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구슬은 주머니 속에서 가만히 있었는데, 주변의 다른 구슬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한 번씩 그 작은 구슬을 스쳤다. 스칠 때마다 그 구슬은 조금씩 깊어졌다.

작은 구슬이 살아남은 이유는 한 가지다.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구슬이 아니니까 주변을 자기 쪽으로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구슬이 그 근처를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었다. 지나가는 동안 스침이 일어났다. 스침은 작지만 지속된다. 지속되는 작은 스침이 쌓여 결국 깊이를 만든다.

큰 구슬은 자기 쪽으로 주변을 끌어당긴다. 끌어당긴 것들은 그 구슬을 더 크게 만들지 못한다. 이미 같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작은 구슬은 주변을 끌어당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 구슬 근처를 지나가는 다양한 빛이 그 구슬을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비춘다. 여러 방향에서 비춰진 구슬은 깊어진다. 한 방향에서만 비춰진 구슬은 납작해진다.

그래서 노년에 남는 구슬은 큰 구슬이 아니라 깊은 구슬이다. 깊은 구슬은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깊어질 수 있었다.


빛의 무게가 옮겨 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 사람의 인드라망에서 일어나는 일은 구슬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구슬은 대부분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어떤 구슬에서 어떤 구슬로 빛의 무게가 옮겨 간다.

젊을 때 가장 빛났던 구슬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같은 시기에 구석에 있던 작은 구슬이 조금씩 밝아진다. 전체 밝기는 비슷하다. 다만 밝은 자리가 달라진다.

이 이동은 본인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그 이동에 거의 관여하지 못한다. 젊을 때 중심 구슬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그 노력은 대개 실패한다. 같은 시기에 구석의 작은 구슬을 밝히려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그 구슬이 밝아진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노년의 인드라망을 들여다보면 자기가 만든 지도가 아니다. 세월이 만든 지도다. 정확히 말하면 구슬들끼리 서로 골라 준 지도다. 어떤 구슬은 주변을 끌어당기려다 고립되어 식었고, 어떤 구슬은 가만히 있어서 주변이 자유롭게 지나가게 두었고, 그 결과 깊어졌다. 이 선택은 누가 한 것이 아니다. 구슬들 사이의 관계가 만든 것이다.

한 사람의 인드라망에서 어떤 구슬이 끝까지 빛날지는, 그 사람이 고른 것이 아니다. 구슬들끼리 서로 골라 준 것이다.

이 문장이 씁쓸하게 들릴 수 있다. 평생 공들여 지킨 것이 끝내 식고, 스쳐 지나간 것이 끝내 남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노력이 그렇게 무력한가 싶을 수 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노력이 무력한 것이 아니라, 노력의 방향을 다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한 구슬을 크게 만들려는 노력은 대개 실패한다. 구슬은 크기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구슬이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자리를 열어 두는 노력은 오래 남는다. 지나감이 쌓여 깊이가 되기 때문이다.


중심을 버리는 일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실천을 가리킨다.

자기 인생에서 "이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느끼는 자리가 생겼을 때, 그 자리를 너무 굳게 지키지 않는 것이다. 지키면 지킬수록 그 구슬 주변이 같은 빛으로만 채워진다. 같은 빛은 결국 메아리가 된다. 메아리는 전기가 약해지면 사라진다.

그보다는 그 중심 구슬 옆에 결이 다른 구슬을 일부러 몇 개 놓아 두는 편이 좋다.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 평소 읽지 않던 분야, 자기 방향과 맞지 않는 사람의 말. 이것들은 당장은 중심 구슬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는 그 중심 구슬을 오래 살려 줄 자원이다. 결이 다른 구슬이 옆에 있어야 비춤이 일어난다. 같은 결끼리는 비춤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일이 젊을 때는 잘 되지 않는다. 젊을 때는 중심을 세우는 일이 더 급하다. 중심을 세우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한 구슬을 크게 만드는 쪽으로 힘을 쓴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한 시기의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다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방향을 돌려야 한다. 한 구슬을 더 크게 만드는 일에서, 여러 구슬 사이에 길을 내는 일로. 크기를 키우는 일에서 연결을 여는 일로. 이 전환이 잘 일어난 사람이 노년에 살아 있는 인드라망을 가진다. 전환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노년에 혼자 식어 가는 큰 구슬 하나를 품고 앉아 있게 된다.

이 전환은 보통 걸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가 지키던 중심 구슬이 어느 날 자기에게 답을 주지 않는 순간이 있다. 늘 명확했던 구슬이 갑자기 흐릿해진다. 그 순간이 걸림이다. 이 걸림을 불편해하며 다시 중심을 강화하려 하면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걸림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결이 다른 구슬을 하나 가져다 놓으면 전환이 시작된다. 그때 비로소 중심 구슬 옆에 새 연결이 생긴다. 새 연결은 그 구슬을 조금 다르게 비춘다. 그러면 그 구슬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작은 구슬을 보는 눈

한 가지 더 남는 것이 있다.

노년에 살아 있는 인드라망을 가지려면, 지금 이 순간 작은 구슬을 지나치지 않는 눈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큰 구슬은 잘 보인다. 자기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일, 자기가 지금 중요하다고 믿는 주제, 자기가 지금 몰입하고 있는 방향. 이것들은 의식의 중심에 있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인다.

작은 구슬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의식의 가장자리에 있다. 지금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냥 지나가도 될 것 같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간다.

그런데 노년에 살아남을 구슬은 바로 이 가장자리의 구슬 중 어딘가에 있다. 지금은 모른다. 수십 년 뒤에 안다. 그때 가서 "그것이 구슬이었구나"라고 깨닫는다. 그러나 그때는 그 구슬을 다시 줍기 어렵다. 이미 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구슬을 보는 눈은 미래를 위한 저축 같은 것이다. 지금 당장 쓸 돈이 아니다. 지금은 의미를 잘 모르는 한 문장, 마음에 살짝 걸리는 한 장면, 설명하기 어려운 한 감각. 이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멈추어 들여다보는 것. 일기에 한 줄 적어 두는 것. 오래 잊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낼 수 있도록 어딘가 흔적을 남겨 두는 것. 이 작은 습관이 삼십 년 뒤의 인드라망을 좌우한다.

걸림연구소의 언어로 말하면, 작은 걸림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크게 걸리지 않은 구슬일수록 잘 지나치게 된다. 그런데 그 작은 걸림이 사실은 가장 오래 남는 구슬의 씨앗일 수 있다. 걸림의 크기와 구슬의 수명은 무관하다. 오히려 작게 걸린 것이 오래간다. 작은 걸림은 배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척하지 않으면 주변이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운 주변이 그 구슬을 깊게 만든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걸림연구소 안에 있는 것이 맞다. 걸림을 무시하지 않는 자세가, 수십 년 뒤의 정신의 지도를 결정한다. 오늘의 작은 걸림이 내일의 큰 빛이 될지 아닐지는 모른다. 다만 무시하지 않는 습관만이 그 가능성을 연다. 무시한 걸림은 구슬이 되지 않는다. 무시하지 않은 걸림만이 구슬의 자리에 앉는다.


마지막 자리

한 사람의 인생 마지막에 남아 있는 구슬은, 그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애착했던 구슬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애착하지 않았던 구슬, 애착할 만한 무게를 붙이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었던 구슬, 그래서 다른 구슬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던 구슬. 그 구슬이 마지막까지 빛난다.

이것을 알고 나면 젊은 시절의 한 자리에 너무 강한 무게를 싣지 않게 된다. 자기가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너무 크게 만들지 않게 된다. 중심을 세우되, 중심 옆에 결이 다른 구슬을 몇 개 놓아 두게 된다. 지금 당장 밝지 않은 구슬도 한 번 멈추어 살펴보게 된다.

노년의 인드라망은 선택이 아니라 선물이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결정한다. 주는 사람은 구슬들 자신이다. 그 사람이 평생 어떤 방식으로 구슬을 대했는가가, 구슬들이 그에게 줄 선물을 결정한다.

배척하면 식는다. 자유롭게 두면 남는다. 이것이 한 사람의 마지막 지도가 어떤 모양일지를 정한다.

혼자 빛나던 구슬은 혼자 식는다. 서로 비추던 구슬들은 서로를 살린다. 이것이 아날로그 인드라망의 또 하나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젊을 때는 잘 믿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든 뒤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법칙은 젊은 자리에서 한 번 들어 두는 것이 좋다. 들어 둔 것은 구슬이 된다. 그 구슬이 언젠가 다른 구슬을 비춰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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