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출처] 기자가 쇼핑몰 대표를 겸한다

by 한경수

조선일보에서 한 편의 글을 읽었다. 한 대학의 한의대 교수가 개발했다는 한방 크림 이야기였다.

열한 개의 소제목이 달려 있었다. 전문가 인용이 있었다. 사용자 후기가 있었다. Q&A가 있었다. 친절하고 정갈한 글이었다.


맨 위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본 기사는 광고성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맨 아래에도 한 줄이 있었다. "가격에는 판매수수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두 줄 사이의 본문은 보통의 취재 기사와 구분되지 않았다. 바이라인의 기자는 자기 소개에 그 신문사 산하 쇼핑몰의 대표를 겸한다고 적어 두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글에서 추천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오래 들여다보았다.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 글은 어떻게 이 모양으로 태어났는가.


종이 구독은 오래전에 무너졌다. 가판은 사라졌다. 포털이 길목을 쥐었다. 젊은 독자는 신문에서 뉴스를 찾지 않는다. 신문의 본래 폐는 — 독자가 직접 공급하던 산소는 —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그 자리에 호흡기가 꽂혔다. 기사형 광고와 커머스다. 기사의 외형은 살아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산소는 더 이상 독자가 공급하지 않는다. 광고주가 공급한다. 환자는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호흡기를 뽑으면 멈춘다.


여기까지는 의학의 사실이다. 기성 언론 전체에 해당한다. 한 매체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의학에는 한 가지 사실이 더 있다. 산소 호흡기는 생명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환자의 폐 근육을 약화시킨다. 기계가 대신 숨을 쉬어 주는 동안 폐는 자력으로 호흡하는 능력을 잃어 간다. 호흡근 위축이라고 부른다.


이 한 문장이 비유의 진짜 무게다.

매체가 광고 매출에 의존할수록 비판의 칼은 매일의 작은 선택들로 천천히 무뎌진다. 한 번의 결정이 아니다. 어떤 기사는 쓰지 않게 된다. 어떤 단어는 고르지 않게 된다. 어떤 광고주는 건드리지 않게 된다. 폐가 줄어드는 속도는 본인도 잘 모른다. 매일은 어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매체와 광고주와 규제다. 매체는 매출을 얻는다. 광고주는 신뢰의 후광을 빌린다. 규제는 강하게 단속하면 매체 산업이 흔들리니 손을 놓아 둔다. 셋 다 손해를 보지 않는다.

테이블 밖에 한 사람이 있다. 독자다.


독자는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모른다. 기사형 광고 한 편을 읽었다고 해서 그날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만 원짜리 크림을 사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 잃는 것은 돈이 아니다. 잃는 것은 "기사"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신뢰의 사전 확률이다. 다음에 진짜 취재 기사를 만나도 그 기사를 광고와 구분할 능력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본인은 그 줄어듦을 느끼지 못한다.


마모는 항상 본인에게 가장 늦게 보인다.

호흡기를 뽑을 수 있는가. 뽑을 수 없다. 뽑으면 죽는다. 그것이 이 구조의 잔인한 자리다. 매체도 알고 규제도 알고 광고주도 안다. 그래서 아무도 뽑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른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에게도 두 길이 있다. 하나는 호흡기의 농도를 점점 더 올리는 길. 다른 하나는 재활을 통해 폐 근육을 조금씩 회복해 호흡기 의존도를 낮추는 길. 후자는 느리고 고통스럽고 매출이 줄어드는 시기를 통과해야 한다.


가디언과 뉴욕타임스와 르몽드는 후자를 천천히 통과했다. 디지털 구독으로 옮겨 갔다. 독자가 다시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길을 거의 가지 않았다. 호흡기의 농도를 더 올리는 쪽으로 기울었다. 커머스 자회사. 기사형 광고. 제휴 콘텐츠. 폐가 더 약해지는 길이다.


이 글은 한 매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한 회사에 대한 비판도 아니다. 누구의 잘못을 묻는 글이 아니다.

한 편의 기사형 광고는 한 시대의 호흡 방식에 대한 자화상이다. 우리가 "기사"라고 부르는 것의 출처를 따라가면, 그 출처가 더 이상 독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보인다. 독자가 산소를 공급하지 않게 된 시점부터 기사는 다른 폐로 숨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폐로 쉬는 숨은 천천히 다른 말을 한다.


기사가 누구의 호흡으로 살아 있는지를 보면, 그 기사가 누구를 위해 쓰였는지가 보인다.

다음 편에서는 그 호흡 안에 빌려 들어온 또 하나의 자산을 본다. 대학이라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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