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TV에 한 화면이 떠 있었다. 투구를 쓴 전사. 도열한 검들. 푸른 빛 속에 붉은 글자 하나.
BATTLECRY.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음악 회사가 만든 앨범이다. 회사 이름은 Two Steps From Hell. 처음에는 영화사에 예고편 음악만 납품했다. 팬들의 요청으로 일반 청취자용 앨범을 내기 시작했고, 〈Battlecry〉는 그 대표작이다.
웅장한 합창. 무겁게 내려치는 타악기. 한 번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한 줄이 걸린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데 이런 낭만적인 음악이라니.
실제 전쟁은 진흙이다. 비명이다. 썩는 냄새다. 다친 몸이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음악 안에는 이 중 어느 것도 없다. 합창과 타악기만 있다.
음악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듣는 사람이 전쟁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 한다. 끔찍함은 견디기 어렵다. 의미로 덮어야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손으로 번역기를 만들어 둔다. 진흙은 깃발로. 비명은 합창으로. 떨림은 용기로. 우연한 죽음은 희생으로.
합창이 들어오는 순간을 보라. 개별의 죽음이 사라진다. "우리"라는 거대한 형상만 남는다. 한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가는 싸움이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은 견디기 어렵지만, "우리의 희생"은 노래할 수 있다.
이 장르가 영화 예고편 음악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트레일러는 2분 안에 관객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쟁조차 아름다워야 한다. 무서우면 안 된다. 망설이게 만들면 안 된다.
가장 좋은 번역기는 자기가 번역기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다. 거실 TV에 떠 있는 한 화면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번역된 전쟁을 듣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장렬함이라는 단어 하나의 출처를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