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못 보는가] 한 책상 위의 두 시대

by 한경수

파이썬 수업 중이었다. 학생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옆자리 학생의 책상 위에 통계학입문 답안지가 놓여 있었다.

답안지를 봤다. 표본통계량이 모수처럼 다뤄져 있었다. 분산은 편차제곱합으로 직접 계산되어 있었다. 표본에서 얻은 수치인데 전체를 가리키는 수치로 쓰이고 있었고, 분모에 들어가야 할 조정은 들어가지 않은 채였다.

계산은 정확했다. 숫자가 맞아 떨어져 있었다. 감점할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답안지에서 눈을 떼고 옆자리 학생을 봤다. 같은 학생이 노트북으로 파이썬을 돌리고 있었다. 데이터프레임이 스크린에 올라와 있었다.

한 책상 위에 두 시대가 있었다.

왼쪽에 20세기. 오른쪽에 21세기. 한 사람 안에 겹쳐 있었다. 본인은 겹침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교재가 다르고 과목이 다르니 각각의 자리에서 각각 맞으면 되는 것으로 놓여 있었다.

지동설이 오는 속도가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책을 낸 때부터 지동설이 상식이 되기까지 한 세기가 넘게 걸렸다. 그 한 세기 동안, 한 사람 안에 두 시대가 겹쳐 있었다. 머리로는 새 천문학을 배우고 몸으로는 옛 우주관을 쓰는 시기.

통계도 같은 속도로 온다. 교재의 한 세대는 20년이고, 어느 세대가 다음 세대에 완전히 자리를 내주기까지는 그 이상이 걸린다. 21세기의 도구를 손에 쥔 학생이 20세기의 개념으로 답안을 쓰는 장면은 그 이행기의 평범한 풍경이다.

답안지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 다음 학생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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