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못 보는가] 두 문장이 서로를 반박할 때

by 한경수

한 보고서 안에 두 문장이 있었다. 같은 학생이 같은 자료를 보고 쓴 두 문장. 그런데 두 문장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보고서 앞 페이지에서 학생은 이렇게 썼다.

"후궁의 수명이 가장 긴 이유는 정치를 담당하던 왕이나 내명부를 다스리며 잦은 출산을 겪어야 했던 왕비보다 상대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나 책임감에서 벗어나 있던 후궁들의 수명이 가장 길고 넓게 분포되어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것 같다."

조선 후궁이 왕·왕비보다 오래 산 이유를 스트레스가 적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같은 학생이 이렇게 썼다.

"최상위 품계인 빈, 귀인은 '귀인(종1품)'이 60%, '빈(정1품)'이 48.8%로 거의 절반 이상의 인물이 태어난 해와 죽은 해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정4품 '소원'부터 그 아래인 '숙원', '상궁'은 기록 비율이 0%이다. 왕의 성은을 입어 후궁의 반열에 오르긴 했으나 자식을 낳지 못했거나 일찍 사망하여 왕실 족보나 실록에 구체적인 생몰년도가 오르지 못한 것이다."

후궁 데이터에 기록의 편향이 있다는 구조를 학생이 스스로 정확하게 묘사한다.

두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모순이 선명하다. 두 번째 문장의 관찰이 맞다면—일찍 사망한 후궁은 기록되지 않았다면—첫 번째 문장의 해석은 성립하지 않는다. 데이터에 나타난 후궁의 긴 수명은 스트레스가 적어서가 아니라 짧게 산 후궁이 기록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학생은 두 번째 문장에서 이것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리고 첫 번째 문장에서는 그 설명과 반대되는 해석을 한다. 같은 사람이 같은 보고서의 서로 다른 페이지에서.

관찰이 해석을 이기지 못했다.

올바른 관찰이 보고서 안에 이미 쓰여 있는데, 앞 페이지의 해석이 그 관찰에 닿지 못했다. 두 문장 사이에 벽이 있다.

이 벽의 정체가 무엇인가. 학생의 지식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문장이 증명한다. 학생은 기록 편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첫 번째 문장을 쓰는 순간, 그 이해가 작동하지 않았다.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첫 번째 문장은 평균이라는 숫자 앞에서 쓰였다. 54.2라는 숫자가 이미 주어져 있고, 학생은 그 숫자를 설명하는 자리에 섰다. 숫자가 먼저 있고 해석이 뒤따른다. 이 순서에서 학생은 숫자의 생성 과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주어진 숫자를 진실로 받고, 그 진실을 설명할 이유를 찾는다.

두 번째 문장은 다른 자리에서 쓰였다. 품계별 기록률 표를 보며 쓴 문장이다. 표가 기록의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학생은 그 표 앞에서는 기록의 편향을 본다. 보고서의 다른 페이지에서.

같은 학생이 한 자리에서는 보고, 다른 자리에서는 보지 못한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학생은 기록 편향을 이해할 줄 안다. 그러나 그 이해를 다른 페이지의 해석에 적용할 줄 모른다. 한 자리의 시야가 다른 자리를 비추지 못한다.

이것은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연결의 부재다. 학생이 머릿속에 가진 여러 지식이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한 지식은 기록 편향을 이해하고, 다른 지식은 평균을 해석하는데, 둘이 만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연결은 커리큘럼에서 가르쳐지지 않는다. 통계 교재는 각 개념을 따로 가르친다. 평균은 평균으로, 선택편향은 선택편향으로. 두 개념이 같은 자료 앞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는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의 머릿속에서도 두 개념이 따로 존재한다.

이 구조가 "안에서는 안 보인다"의 가장 투명한 사례다. 두 문장의 모순은 외부에서 보면 바로 보인다. 학생 본인은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학생은 한 페이지를 쓸 때 다른 페이지를 동시에 보지 않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의 시야는 한 페이지만큼 좁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앞 페이지는 이미 닫힌다. 검토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지 않으면 두 페이지는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자기 글을 다시 읽는 자리다. 쓰는 자리와 읽는 자리를 구별하는 훈련. 쓴 뒤에 돌아와 앞 페이지와 뒤 페이지를 나란히 놓고, 두 문장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지 확인하는 습관.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르쳐도 한 보고서 안에서 두 문장이 서로를 반박한다.

이 자리를 가르치는 수업이 현재 한국 통계 교육에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왜 우리는 못 보는가는 계속된다. 이 보고서는 아직 여러 자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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