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데이터 #1 손만 씻었는데 사망률이 급감했다

by 한경수

1840년대 빈 종합병원. 산부인과에 병동이 두 개 있었다.

제1병동은 의대생이 분만을 담당했다. 제2병동은 조산사가 담당했다. 같은 병원, 같은 시기, 같은 환자들. 다른 건 누가 아이를 받느냐뿐이었다.

산모 사망률은 이랬다.

제1병동: 10%. 제2병동: 4%.

두 배 이상 차이. 같은 병원인데.


이건 비밀이 아니었다. 빈 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산모들은 제1병동에 배정되면 울었다. 무릎을 꿇고 제2병동으로 보내달라고 빌었다. 차라리 길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여성도 있었다. 실제로 길에서 낳은 산모의 사망률이 제1병동보다 낮았다.

병원에 가면 죽고, 길에서 낳으면 산다.

당시 의사들은 이걸 어떻게 설명했을까? "대기의 질이 다르다." "병동의 환기가 안 된다." "산모의 체질이 약하다." 갖은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핵심을 묻지 않았다.

왜 하필 의대생이 담당하는 병동에서만 많이 죽는가?


1847년.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젊은 의사가 이 데이터 앞에 섰다.

그는 숫자를 봤다. 10%와 4%. 같은 병원, 같은 질환, 같은 시기. 다른 건 사람뿐이다. 그러면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의대생은 뭘 하고, 조산사는 뭘 안 하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의대생들은 오전에 시체를 해부했다. 그리고 손을 대충 닦고 오후에 분만실로 갔다. 조산사는 해부를 하지 않았다.

제멜바이스는 명령했다.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에 염소석회 용액으로 손을 씻어라."

한 달 후, 제1병동 사망률이 2%로 떨어졌다.

10%가 2%로. 손을 씻은 것뿐인데.


여기까지 읽으면 당연해 보인다. "시체 만진 손으로 아기를 받았으니 당연히 감염되지." 오늘날의 상식이다.

하지만 1847년에는 상식이 아니었다.

세균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파스퇴르가 세균설을 발표하기 10년 전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손에 묻어서 사람을 죽인다"는 주장은 당시 의학계에 황당하게 들렸다.

동료 의사들의 반응은 이랬다. "의사의 손이 더럽다고? 신사의 손이 병을 옮긴다고?"

제멜바이스는 쫓겨났다.

빈을 떠나 부다페스트로 갔다. 거기서도 같은 방법을 적용했고, 거기서도 사망률이 급감했다. 데이터는 일관됐다. 하지만 의학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1865년.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47세. 경비원에게 구타당한 상처가 감염되어 —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평생 싸운 그 감염으로 죽었다.

그가 옳았다는 게 인정된 건 죽고 나서였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제멜바이스가 위대한 과학자여서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지 않았다. 세균을 발견하지 않았다. 현미경을 들여다본 적도 없다.

그가 한 건 딱 하나다.

10%와 4%를 보고 "이상한데?"라고 느낀 것.

같은 숫자를 본 사람은 많았다. 병원 행정 기록에 다 있었다. 누구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이 병동만 높지?"라고 물은 사람은 제멜바이스뿐이었다.

나머지는 숫자를 봤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대기의 질" "환기" "체질" — 기존 설명에 숫자를 끼워 맞췄다. 데이터가 말을 걸어왔는데 듣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어떨까?

이 데이터를 AI에게 주면, AI는 두 병동의 사망률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알려줄 것이다. p-value를 계산하고, 신뢰구간을 제시하고, 그래프를 그려줄 것이다.

하지만 "의대생은 시체를 만지고 조산사는 안 만진다"는 건 데이터에 없다. 이건 병동을 걸어 다니고, 의대생의 하루를 관찰하고,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라고 끈질기게 물은 사람만 알 수 있다.

데이터 바깥의 맥락. 그것이 데이터 안의 숫자에 의미를 준다.

10%와 4%는 숫자일 뿐이다. 그 숫자가 "의대생의 손"을 가리키려면, 데이터 밖에서 걸어 다닌 사람이 필요하다.

제멜바이스는 걸어 다닌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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