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이야기
저는 물리를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아직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유익한 가르침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와 맞물려서,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을 비롯한 새로운 강의 환경을 준비하게 되면서, 어떤 자료들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대면 강의였다면 생각하지 않았을 문제를 비대면 강의의 상황으로 인해 생각해보게 된 셈입니다.
물리학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과서입니다. 배우는 과목에 따라 유명한 교과서들이 알려져 있고, 이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물리학의 주요 과목들 - 일반물리, 고전역학, 전자기학, 통계역학, 양자역학 등 - 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또 이것이 강의를 하는 일차적인 목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쉽게는 강의 슬라이드나 강의 노트를 학생들과 공유하게 되는데, 이것은 교과서를 학생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강의자료에 강의가 덧입혀져서 학생들이 주요 주제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물리를 공부해 온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리학은 겉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이해했다면, 그것을 주어진 문제 환경에 적용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이 물리학 강의의 또 다른 중요한 요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그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안 되도록 채찍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채찍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야 좋겠지만, 저의 경험상 문제를 푸는 능력은 그렇게 쉽게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물리학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리 문제를 푼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도 물리 문제를 푸는 것이 솔직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여기에 추가로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유명 교과서에 대한 유명한 강의, 그리고 문제를 푸는 법에 대한 소개 등은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무료 또는 유료 자료들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의를 하면서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한 의미, 역사, 철학, 또는 나 자신의 연구 경험이나 예측을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좋은 자료들을 찾자면 많이 찾을 수 있겠지만) 인터넷 강의나 입시학원과는 구별되는 대학 강의의 특별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것들은 시험문제나 평가에는 내기 어려운 일종의 잡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편, 저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이런 잡담을 강의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남겨주고 싶고, 또 시간이 나면 곱씹어 생각해보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좀 편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 이야기들을 시험에 내서 여러분을 괴롭히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게 저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제가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시 이 글들이 모여서 브런치에서 출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돈에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 제 책을 구입해 준다면, 저는 용돈도 약간 벌고 또 여러분들은 멋진 책을 책장에 꽂아 놓음으로써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에게 교양 있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시간이 남고 심심할 때, 또는 심지어 학교를 떠난 뒤 언젠가 물리에 대한 의문이나 관심이 다시 생겼을 때, 그래서 강의실에서 이런저런 잡담이 이루어졌던 시간을 다시 기억하고 싶을 때, 그때 언제라도 들어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