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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16.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14


(여행 5일 차-후반전)




나는 이곳,

카르카손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


툴루즈에서 카르카손으로 이동하면서 먹은 점심. 초코칩이 꽤 달았다.


도착하니 저녁 5시가 조금 안 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목적지였던 카르카손 요새에 가기에는 늦다 싶다.

처음 여행 올 때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술은 마시지 않는다.

둘째, 해가 지면 숙소로 들어간다.

늦었으니 오늘은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호텔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것이 유명한 카르카손 요새가 있는 Cite de Carcassonne이다. 왼쪽 중심에 카르카손 Carcassonne이라 적힌 도심지가 있다.


카르카손은 중세 도시를 싸고 있는 요새, Cite de Carcassonne와 현지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신도시가 나뉘어져 있다. 오드 (Aude)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곳은 Carcassonne Pont Vieux라는 오래된 다리로 연결된다. 근데 말이 구분이지 전체 도시가 워낙 작아, 천천히 걸어 5분 남짓이면 건너 다닐 수 있다.


프랑스 중세 요새 도시의 시장은 무척 이뻤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동화 속에 와 있는 기분을 느꼈다.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벽을 온통 분홍빛으로 칠한 네일숍도 보았다. 프랑스 중세 도시에 네일숍이 있을 줄은 몰랐다. 카르카손은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유럽에서는 파리, 몽셀미셸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지라 했다.


다리 너머로 작게 보이는 Cite de Carcassonne. 뾰족뾰족한 꼬깔모자 같은 지붕이 보인다.



그렇게 예쁜 카르카손 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유.



생선 가게, 과일 가게, 마카롱 가게가 있던 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파리만큼이나 카르카손에도 관광객은 정말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장바구니를 든 현지인만 몇 명 다닐 뿐이다. 관광객 티를 안 내고 걸으려고 했는데...


시장 골목 양쪽에 늘어서 있던 가게들에서 무엇인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보자니, 시장 상인들과 장을 보는 현지인들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말 대놓고 보고 있었다. 골목을 지나치는 나를 따라 이들의 시선도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기차역에서 시장까지 오는 동안 이 도시 안에서 동양인은 본 적이 없는 것도 같다. 동양인 여자는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관심에 무심한 척하면서 걷는데 너무 추웠다. 프랑스 남부로 오면 좀 따듯할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추울 줄이야.


나는 이때 딜레마가 있었는데, 2박 3일의 짐을 넣어 둔 크로스백이었다. 나름대로 3일 치 짐이 들어있다 보니 크로스백은 꽤 빵빵했는데, 치안 때문에 패딩 점퍼 안으로 매고 있었다. 여행 오기 전 가족의 단단한 잔소리를 기억하고 점퍼 안에 넣어 매고 왔더니, 아뿔싸 정작 크로스백 부피 때문에 점퍼 지퍼를 닫을 수가 없다. Le-Puy 행에서도 추워서 배가 아파 화장실 가는 게 일이었는데, 날이 추워 아랫배가 쌀쌀해지는데 점퍼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국만리 타지에서 가방을 털리는 것보다는 배가 아픈 쪽이 나을 것 같아 참고 다녔다.



차선으로 별 수 없이 롱 패딩에 달려있는 모자라도 올려 썼다. 털이 달린 모자라 쓰면 얼굴이 사자 갈퀴나 해바라기처럼 되는데,

그것을 쓰자마자 나를 두고 수군거리던 시장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히~~~~~”



지금도 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한다. 무슨 뜻의 소리 지름 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동양인 여자가 모자를 썼다!!~~~~”인 건지 아저씨들이 그렇게 희한한 목소리로 소리 내는 건 처음 들었다.



확실한 건 동양인 여자라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Le-Puy에서도 그랬지만 서는 애초에 나를 쳐다봐줄 사람도 몇 없었는데, 카르카손으로 오니까 확연히 느껴졌다. 가 검은 머리에 황색 치부를 가진 보기 드문 동양인 여자라는 점이.


파리에서는 지하철에서 한국말로 대화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많았다. 관광객이라기보다는 유학생의 대화 같긴 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도시니까 누군가의 주목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카르카손에서는 달랐다. 붉으스름한 검은색 머리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키 작은 동양인 여자는 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시장에서 무엇인가를 샀다가는 온 시장의 사람들이 다 내게 모여들 것 같았다. 불편해서 시선을 피해 모노프리, Monoprix로 들어갔다. 프랑스의 이마트인 모노프리는 르푸, Carrefour와 프랑스의 유통업의 양대 산맥인 듯했다.


저녁 식사 거리로 오렌지 두 개와 음료수를 하나 샀다. 렌지 두 알은 1.8유로인가 준 것 같은데, 생각만큼 그리 저렴하지는 않았다.



아늑한 Hotel Central의 방 내부. 왼쪽에 라지에이터가 보이는데 프랑스 숙소에는 저 정도 사이즈의 라지에이터가 자주 보였다.


저녁 거리인 음료수. 애매하게 상큼한 맛이다. =_=

카르카손에서의 밤을 보낼 곳은 Hotel Central이다. 호텔에는 뭔가 기분 좋아 보이는 유쾌한 여자 사장님이 나와 체크인을 해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기분이 좋았다. 영어로 대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업된 마음에 오지랖을 부렸다.



간단하게 한국말로 적자면 이런 대화를 했다.

“사장님 영어 하셔서 너무 좋아요! 다른 도시  갔었는데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되더라고요.”

“아- 프랑스어 못 하세요?”

“아, 네네. 프랑스어는 못 해요. 근데 호텔을 갔는데 아침 조식 달라는 데도 영어로 대화가 안 되더라고요.”

“프랑스어를 안 배우셨구나~”


살짝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아니 문화적 충격이라기보다는 작은 깨달음인 것 같다.



한국에서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는 그만큼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내 나라에 있지만 외국인 여행객이 길을 물으면 당장 어쩔 줄 몰라한다. 바디랭귀지로 가까운 거리 직접 데려다주고 오거나, 이어폰 꽂고 있어 못 들은 척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일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건 겸연쩍은 일이자, 굽신거리게 만드는 일이다. 사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건 의무도 아니고 잘못아닌데.


나는 호텔 주인의 말에 조금 놀랐다. 우리 같았으면 서비스 마인드라는 미명으로 ‘아이고, (우리나라에 오셔서) 영어도 안 되는 숙소 주인을 만나시고 고생이 많으셨네요.’라고 했을 법도 한데. 그녀는 내게 ‘너 프랑스어 못하는구나?’라고 되물었으니까. 나는 이 질문이 신선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프랑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 와서 프랑스어를 못 하는 내가 문제인 것이다.



신선한 충격은 불쾌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줄곧 프랑스에서는 여행하면서 ‘어를 잘 못해요’라기보다 아예 ‘영어에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국 언어에 자부심이 넘치고, 오랜 전쟁 역사로 영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사실 잘 못 느꼈다. 며칠 안 되는 여행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냥 영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드라이어를 갖춘 욕실도 그렇고, 깨끗하고 아늑했다. 이른 시간에 혼자 숙소에 들어온 뻘쭘함을 이겨보고자 못 알아들을 소리가 나오는 tv를 켜 두었다.


저녁거리인 오렌지들은 맛이 없었다. 너무 시었다.

프랑스 남부라고 과일의 당도가 다 환상적인 건 아니더라.

Hotel Central의 욕실 내부. 보이지 않는 왼쪽 공간에 샤워부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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