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를 응급실에서 밤새며 보낸 우리 가족은 까비가 올봄을 넘기기만을 꿈꾸었다. 고맙게도 까비는 봄을 보냈고 7월을 맞으면서는 컨디션이 좋아졌다. 산책도 갔다 올 정도였다. 의료진도, 우리 가족도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었다. 비정상적인 고혈압의 원인으로 보였던 쿠싱 증후군을 잡는 호르몬제를 투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현저히 심박이 떨어진 까비를 안고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찾은 응급실에는 까비의 주치의 선생님이 마침 당번을 맡고 계셨다. 천운이다. 신장, 췌장, 혈압, 전해질 수치 어느 것 하나 정상 범위에 있지 않은 까비의 증상을 처음 보는 선생님께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검사를 받았고,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의 수의사 선생님은 즉시 입원을 결정했다. 입원동의서와 심폐소생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볼 때마다 고민스럽고, 받고 싶지 않은 종이 두 장.
어리둥절한 표정의 까비가 들어간 곳에서는 컹컹 울며 짖는 까비의 소리가 들렸다. '나를 왜 이런 곳에다 두고 가는 거야'라고 하는 듯이 울부짖었다. 귀가하는 발걸음 한 발짝 한 발짝에 까비가 짖던 소리가 얹혀 갈수록 발걸음의 무게는 쇠사슬을 끄는 것 같았다.
하루에 1시간 주는 면회 시간을 찾아 병원을 매일 들렀다. 까비의 안정을 위해 만나지는 못하고 수의사 선생님에게 증상만 확인하고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준다고 했기에 우리는 핸드폰 설정을 모두 벨소리 음량 최대로 맞추었다. 전화 연락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휴일이었던 월요일, 오전에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와 피곤해 잠시 뻗어 쉬던 오후.
조용하던 전화에 벨이 울렸다.
'02-850-XXXX.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원치 않았던 불길한 소리. 온몸의 세포가 직감한다.
"여... 보세요?"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까비가 숨소리와 의식이 좋지 않...."
"까.... 까비가 안 좋은가요...? 하... 아.. 선생님..... 아.... 어떻게 해야 돼요? 많이 안 좋아요?"
"네... 와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보시고 인사를...."
엄마는 눈물이 차오른 눈동자로 울먹거리며 전화를 받았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잠들었던 동생은 통화하는 엄마 주변에 벌떡 튀어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짐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기다릴 수 없는 마음은 엑셀을 부지런히 밟았고, 연휴라 막히는 길은 다급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동물병원으로 향하며 우리는 모두 울먹거렸다. 무엇을 잘못했던 것인지 되뇌다가, 너무 아파하면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했다가, 이 말을 듣고 그건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가,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까비의 건강을 확신했던 예전의 수의사에게 분노했다가, 작별 인사를 할 생각에 목이 메어왔다. 엇갈리고 방황하는 마음은 폭우가 끝난 눅진하고 텁텁한 날씨에 슬픔을 빈틈없이 채웠다.
예전에는 차의 창문을 열고 까비가 밖을 내다보며 달리던 시원한 바람이 불던 길.
오늘 동물병원을 향하는 길에 차 안의 노란 공기는 숨이 막혀왔다.
진료실의 까비는 마치 거위가 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로 숨을 쉬며 늘어져 있었다. 혈압은 260을 치솟고, 심박수도 200을 넘었다. 보자마자 우리 셋은 울음을 참으려고 미간을 찌푸리며 애썼다. 소용은 없었다. 엄마가 까비를 가만히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좁은 응급실의 입원실 의자에 꾸겨 앉아 우리는 까비에게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우리 까비 얼른 집에 가자. 까비 좋아하는 산책 하러 공원에 가자. 집에 가서 맛있는 간식 줄게. 그동안 먹기 싫은 거 억지로 먹어서 너무 싫었지? 닭가슴살로 죽 끓여서 줄게. 형아하고 누나하고 놀러 가자. 혼자 두고 가서 미안. 까비 너무 화났지? 우리 인제 집에 같이 가자.
정말인지, 마지막 가는 길이 슬프지 않도록 믿지 못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까비는 판단할 수 없는 말을 우리는 속삭였다. 쓰다듬어 주어도 까비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웬만한 큰 소리에도 까비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심이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말을 까비에게 하며 우리는 울음을 삼켰다.
기도 덕택일까. 우리 가족이 까비를 쓰다듬은 지 40분 정도가 지나자, 까비의 심박수는 조금씩 내려갔다. 정상 수치라는 분당 120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말이 안 되는 혈압은 여전해 주치의 선생님과 통화해 응급실 수의사는 혈압약 수준을 점차 올렸다. 다행히 200 아래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험했다.
우리가 까비를 안고 있던 동안 응급실에는 몇 마리의 환견이 급히 찾아오기도 했다. 재생 불량성 빈혈이 있다는 재패니즈 스피츠와, 원인 모를 구토를 계속한다는 작은 몰티즈가 왔다. 한 조에 수의사 3명이서 24시간을 지키는 응급실은 내가 보기에도 안쓰럽도록 정신이 없었다. 수혈을 위해 여기저기 지역 병원에 전화를 걸던 수의사들은 결국 공혈견으로 보이는 커다란 로트와일러를 데려온 듯했다. 진료실로 무덤덤히 들어가는 공혈견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까비의 호흡이 아주 조금 나아졌고, 다른 환견들로 정신이 없는 응급실에서 우리 가족은 나와야 했다. 그 길로 엄청난 속도로 집에 가 짐을 챙겼다. 칫솔과 치약, 요깃거리, 겉옷, 노트북과 핸드폰 충전기, 여행용 목베개. 다시 밤샐 준비를 했고, 이미 한 번 경험한 터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그리 걸리지도 않았다. 까비의 입원실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내 체취가 남은 잠옷과 장난감 공을 챙겼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서울대 동물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웠다. 수의사 선생님들은 한 시간 단위로 까비의 전해질 수치를 측정해 들려주었다. 졸다 깨다가 조금의 대화를 했다가, 습기 찬 새벽 공기에 잠을 깨기도 했다. 2시 정도에는 오래된 응급실의 소화전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건물 전체에 울렸다. 순간 잠이 들었던 우리는 까비의 심정지를 알리는 기계음인 줄 알고 순간 오열했다. 다행히 오작동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차에 있었다. 인적이 드문 관악산 아래 학교 주차장에 이런저런 차들이 조용히 오가는 새벽을 바라보다 잠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스름이 물러가고, 진료를 보는 아침이 되었다.
까비는 장기 입원이 결정되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어려운 표정은 상황이 어떤 지 넌지시 알려주었지만, 우리는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지켜보자고 하셨는데, 나는 그것이 까비에게 남은 시간임을 직감했다.
원래는 Scene3. #입원 이후에 내원에 대해 쓸 계획이었지만, 나는 이제 까비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다 닳았음을 실감한다. 이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까비가 없이도 살아가야 할 시간을 바로 준비해야 할 때가 되어버렸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는데 까비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우리 가족은 괜히 쓸데없이 서울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무엇인가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마주해야만 지금 느끼는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캠퍼스 안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점심도 사 먹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소화시키지도 못했다. 물론 집에 도착해 이 모든 시도가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집에 도착하니, 집에 없는 까비를 제일 먼저 찾는 감각은 후각이다. 그 며칠 까비가 없다고, 집안 곳곳에서 나던 까비의 체취가 싹 사라졌다. 자다가 고개를 돌리면 아무렇지 않게 내 베개를 차지하고 자던 까비의 몸 냄새는 내게 잠들게 해주는 수면유도제나 마찬가지였는데. 향기가 아니라 동물 안 키우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편안한 내음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