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까비 Aug 05.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6


(출국 D-Day + 여행 1일 차)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왔다.

전날 밤 선물 살 것을 고민해서 집에 있던 가장 큰 28인치 캐리어에 여행 짐을 넣었다. 5년 전 동생이 어학연수를 가려고  상당히 큰 사이즈였다. 겨울에 가다 보니 옷 몇 벌만 넣었는데도 공간이 절반은 찼다.


아시아나항공 수속 데스크로 가니 줄 선 사람이 두 어명은 될까? 텅텅 비었다. 셀프 체크인할 필요도 없다.

“혼자 가세요?” 지상직 승무원의 질문에 일부러 무심한 척 대답했다. “네에”

테러 난 곳에 여자 혼자 여행 가는 티를 내지 말아야지.



짐을 실어 보내고 로밍센터로 갔다. 당시 나는 옵티머스 G Pro라는 당시에도 거의 년째 쓰 구닥다리 핸드폰을 가지고 갔다. 아무래도 혼자 간 유럽에서 와이파이만으로 다니기는 불안해서 패키지 로밍 상품을 잡고 갔다. 나중에 이 놈의 핸드폰은 여행 내내 도움이 안 됐다. 로밍이 와이파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한 시간 즈음 면세품을 구경하다 탑승구 게이트에 줄을 섰다. '내가 지금 다른 비행기 게이트에 서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수시로 대기 중인 항공편명을 확인했지만 내가 탈 OZ501편이 맞았다. 문이 열리고 탑승을 시작했다. 내 티켓을 찍었지만 QR코드가 잘 잡히는 걸 보니 내 비행기가 맞다.


좌석을 찾았는데 그럴 필요 없이 아무 데나 앉아도 되었다. 탑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은 듯했다. 현지 테러에도 불구하고 파리로 날아가는 간 큰 인물은 생각보다 몇 없구나. 탑승객 수를 세어보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11명. 보잉 777 3-4-3 좌석 라인의 꽤 큰 비행기에 승객들이 횡으로 두 어 줄에 한 명씩 앉았다. 승객들이 이륙하자마자 드러눕기 시작했다. 나도 팔걸이를 다 제껴 올리고 창가 쪽 내 자리 세 칸에 옆으로 다리를 올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거의 한 줄에 한 명씩이다. 그나마 내가 있는 프론트 쪽에 사람들이 더 많았다.


텅 빈 내 우측. 통로석을 선호하지만 미리 좌석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기내식으로 쌈밥이 나왔다. 혼자 가는 여행은 이래서 좋은 가보다. 가족과 여행을 가면 옆 사람은 잘 는지 무의식적으로 체크하는 K-장녀의 부질없는 책임감 내려놓았다. 쌈야채도 신선했고 불고기도 잘 나와 야무지게 잘 싸 먹었다. 승무원들은 계속 와서 기내식 더 드시라고 했다. 뒤에 아저씨 몇 분은 두세 개씩 드시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럭저럭 배도 찼고, 화장실 가면 일을 잘 못 볼 것 같아 더 먹 않았다.  

맛있덨던 불고기는 금박 안에 숨어있다. 못 찍었다.



이코노미 초저가로 탄 비행기에 자체 비즈니스 클래스로 누워서 가자니 세상 편했다. 어차피 내 줄이 아예 비어서, 가운데 좌석 네 개인 곳에 가서 누울까 생각도 했다. 그래도 왠지 밖을 보고 싶어서 창가 쪽에 머물렀다. 세 칸으로도 충분한 짧은 다리도 한몫했다.



장기 노선을 타면 까만 밤하늘을 보게 마련이다. 올려다보지 않아도 내 눈높이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창 밖으로는 얼핏 달도 본 것 같은 영롱한 느낌. 어두컴컴한 하늘을 나는 고요한 비행기에 앉아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꼭 명상하는 것 같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지금 프랑스에 가고 있는 걸까. 들뜨지도 두렵지도 않은 편안한 마음으로 창 밖을 응시하다 잠이 들었다.


자다 깨면 저 앞 좌석 너머에서 기내식 카트가 오는 걸 보는 것비행기 탄 승객의 운명. 프랑스 행 OZ501편에서는 간식으로 피자를 한 번 내주었다. 그지같이 맛이 없었다. 그냥 빵을 주지. 먹고 영화를 한 편 보다가 다시 잠이 들고, 아침 식사를 받았다. 생선과 밥이었는데, 꽤나 맛있게 먹었다.

피자 맛 없어~ 맛 났던 생선 요리



나는 비행기를 타면 영화보다 비행경로가 나오는 화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거 어떻게 읽는 거지?' 싶은 낯선 도시의 이름을 보다가 낯익은 국가의 지명 걸 알면 신기하다. '아직 러시아야? 어지간히 크네.' 싶다가 곧 중동을 지나친다. 나는 중동에 이상한 로망이 있다. 푸른 숲이 아닌 누렇게 황량한 사막 그림이 나와도 그게 왠지 싫지 았다.   


그 당시에도 좀 촌스럽다 싶었던 OZ501편의 기내 엔터테인먼트. 현재도 취항 중인 것 같다. 내부가 바뀌었을까.


면세품 판매를 종료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곧이어 기장이 '여러분, 우리는 곧 프랑스의 수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착륙합니다. 내리시는데 안전 어쩌구 저쩌구'라고 기내 방송을 해 주었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모습에 나지막한 주택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 귀여운 모습. 한국에서 보기 힘든 숲에 둘러싸인 마을 모습에 내가 진짜 프랑스에 왔구나 싶었다.





비행기가 땅에 닿았다. 나도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다. 유명 관광지인 파리는 입국 수속이 한 시간 넘게 걸린다던 여행 가이드 책은 소용없었다. 사람이 없어 내리자마자 거의 5분 만에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는 곳으로 왔다. 몇 안 되는 한국 사람들이 짐을 한참 기다렸다.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데 혼자 온 내게는 같이 기다린 기분이 들 왠지 여행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짐을 찾고 나왔다.

바로 눈 앞에 무장한 흑인 경찰이 말을 걸었다.

"Madame, %÷%=&%&@+×÷÷><"

면세품 보고 뭐라는 줄 알고 쫄았던 내게 나를 내려다보는 의 눈빛은 뭔가 압도적인 것을 말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총을 든 무장 경찰들. 총을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테러가 났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다른 관광객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둘셋씩 모여있는 사람들이 말을 나누길래 나도 슬쩍 끼었다. "우리 못 나가요?" "잘 모르겠어요. 나가도 되지 않을까요?" 같이 OZ501을 타고 온 듯 한 프랑스인 같은 사람이 출구로 빠르게 짐을 끌고 나갔다. 같이 걱정던 한국인들하고 우르르 몰려서 출구로 나갔다.


한인민박을 통해 예약했던 한인 픽업 기사님을 만났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50분 정도 걸렸다. '프랑스도 이렇게 차가 밀리는구나.' 

기사님은 50분 내내 자신의 유학 시절 썰을 풀어놓으셨다. 철학을 공부해서 프랑스로 오게 되었고,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완전히 엘리트주의인 프랑스 사회 때문에 이방인인 자신은 박사 학위를 받다가 말았다는 이야기까지. 정규 교육 과정에서 알려주지 않는 스탠더드 한 프랑스 귀족 특유의 문법이 있어서, 논문에 이를 맞추지 않으면 절대 프랑스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없다고 했다. 프랑스 특유의 교육 환경 덕분에 자녀들 키우기는 힘들지 않다는 아저씨와 대화하자니, 내가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등할 줄 알았던 프랑스의 교육보다 유럽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왜 그럴까 하는 호기심과 집중력이 발동한다.


저녁 7시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주위 깜깜했다. 동네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중 나온 알바가 짐을 끌어주고, 숙소를 꼼꼼히 설명해주었다. 나 말고 3명이 숙박 중이라는 민박에는 커플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씻었. 민박집 샤워기의 애매한 수압을 느끼고 있자니, 집이 아닌 게 실감 났다. 침대에 누웠다. 스르륵 잠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잠이 잘 안 왔다. 발이 시렸다.





,,, 프랑스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서늘하게 자나?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2010년 처음 미국을 여행한 이후로 장기 노선을 타면, 타자마자 어매너티와 화장실부터 체크합니다. 기종이나 항공사에 따라서 개인 어매너티에 칫솔을 챙겨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갈 때 탔던 에티하드 항공사는 칫솔, 치약은 기본이고 양말과 귀마개를 챙겨줬었죠. 그렇지만 어매너티 없이 화장실에 칫솔을 몇 개만 비치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 경우는 탑승하자마자 화장실부터 가서 칫솔을 챙겨둡니다. 이번 아시아나는 어매너티에 칫솔이 없었지만 승객이 너무 없어 굳이 화장실에서 칫솔을  챙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2. 한인 픽업 택시의 경우, 숙소가 있던 파리 13구까지 50분 정도 소요되고, 당시 비용은 편도로 80유로 정도를 냈습니다. 테러로 환율이 치솟아 1480원 정도였으니 거의 10만 원 가까운 돈을 낸 셈인데요. 대중교통에서 제 덩치만 한 캐리어를 끌며 처음 온 관광객 티를 내기 불안했거든요. 기회비용으로 나쁘진 않았지만 비용이 세긴 센 것 같습니다. 여성 혼자 처음 가시는 분께만 추천하고 싶습니다.   

3. 여유가 된다면, 기내 면세품을 예약 주문하면 좋습니다. 가는 편 항공편에서 귀국하는 항공편에서 받는 기내 면세품을 주문하면 기내 현장에서 그냥 사는 것보다 10% 정도 저렴합니다. 출발하면서 ‘아차!’ 싶었던 면세품이 있다면 기내 항공편으로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많이 다녀 본 사람들은 알지만 현지 공항 면세품은 ‘이게 면세품이라고?’ 싶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지 않죠. 출발 편 기준으로 72시간 이후에 귀국하는 경우면 기내 면세품 주문이 가능합니다. 좌석 앞 주머니에 면세품 안내 책자를 잘 뒤져봅시다. 기종 별로 구비하는 상품에 차이가 있으니 체크하세용.




 #파리 #직항 #아시아나 #OZ501 #기내식 #테러 #프랑스 #면세품 #무장 경찰 #장기 노선 #한인민박 #한인 픽업 #파리 택시 #휴가

작가의 이전글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