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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5.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7


(여행 2일 차-1: 망한 Lyon의 환승)



일찍 일어났다. 씻고 나와 아침 식사 거리를 접시에 담았다.


한인 민박은 아침과 저녁을 주었다. 주인 분이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한 셰프 식사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비수기에는 하루 1박이 25유로, 연박 5일 이상이면 20유로로 할인해주었는데 가격보다 음식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

밥을 푸면서 어제 봤던 알바에게 오늘 '클레르몽페랑'으로 갈 거라고 했다. '끌레 뭐?' 하는 표정의 알바는 지명을 못 알아듣는 표정이었다.


3대 미식 국가에 왔는데, 프랑스에서 가르치는 한식 아침밥은 우리랑은 입맛이 다른가. 밥맛이 알 듯 말 듯했다. 이상한 표정으로 밥을 먹는 내게 알바는 파리 리옹 역에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오징어 무국이 나왔다.


파리 리옹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스쳐가는 파리의 아침 풍경을 보았다. 와 역시 내가 유럽에 오긴 왔구나. 유럽을 몇 번 오고 간 지금도 나는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유럽의 도시 모습이 너무 좋다. 높은 빌딩으로 쌓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굴뚝 연기가 왠지 진짜 분주한 아침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알바랑 대화를 했다.

"테러도 났는데 어떻게 오셨네요."

"그냥... 회사 다니던 사람인데요, 가서 죽으면 죽지 싶어서 왔어요."

"나도 그랬는데. 큰 결심 하셨네요."

"클레르몽페랑 혹시 가보셨어요?"

"저 거기 오늘 처음 들어요."

"?"

"저 파리 온 지 3일 됐어요."

"한국 잠깐 들어갔다 오셨나 봐요?"

"아니요, 아예 살러 온 거예요."


뭔 소리인가 싶었던 알바의 썰을 들어보니 나랑 비슷했다. ‘두ㅇ건설’이라는 대기업에서 하루에 3시간 자고 설계 일을 했던 알바는 대리 1년 차에 도저히 이렇게 못 살겠다 싶었단다. 마침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죽마고우가 파리에서 인기 있던 한인민박 주인이 그접고 한국으로 들어가서 매물이 나왔다고 했고, 친구랑 그 집을 넘겨받았다고 했다. 한국은 더 이상 자신이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그 길로 파리에 온 지 3일 째라고 했다. 파리에 올 때 탄 비행기가 태어나서 처음 타 본 비행기였단다. 제주도도 가본 적 없는 놈이었다고 스스로 말했다.


알고 보니 알바가 아니고 주인이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주인장은 자타... 까지는 아니고 나름 공인받은 동안인 나 못지않았다. 네가 동안이네, 네가 더 동안이네 서로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칭찬을 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이내 리옹역에 도착했다. 덕분에 파리 거주 3일 차 주인장에게 여행 관련한 정보는 하나도 못 얻었다. “1박 하고 올 거예요. 짐 좀 부탁드려요.” 주인장에게 인사를 했다.



기차역에 들어섰다.

‘와.........’



누구나 유럽 하면 떠올리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기차역이 제일 ‘유럽스럽다’는 말에 부합하는 것 같다. 기차 플랫폼과 커다란 시계,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철골 구조의 건물, 왠지 ‘뿌우~’하고 증기를 내뿜을 것 같은 기차들.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회갈색 색감의 이미지.


리옹 역에 발 딛고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와하는 탄성을 조용히 내었다.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역이라는 데도 리옹역은 정말 멋졌다. 괜히 너무 좋아서, 리옹 역에 발 딛었던 그 느낌을 다시 받고 싶어서,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타고 다시 올라왔다.


https://m.blog.naver.com/toyou10123/144993626

(리옹역을 찍었던 사진잊어버려, 비슷하게 찍으신 분의 블로그 이미지로 대신한다. 이날 찍은 사진은 제대로 구동이 안 되었던 핸드폰이 모두 날렸다. ㅠㅠ)



예약했던 TGV 6609가 딱 앞에 보였다.

5분 정도를 남기고 탑승했다. 역에 일찍 도착한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이메일로 받은 나의 예약 내역. 최종 행선지는 Le Puy En Velay 라는 곳이다.


기차 측면에는 크게 1과 2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일등석과 이등석 구분인가.’ 2자가 적힌 칸에 올라탔다. 프랑스 기차는 기본적으로 1등석과 2등석을 예매하고, 해당하는 칸 아무 자리에나 앉는 방식이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첫 기차는 지정석을 예매했다.


Coach 006 - Seat 051.

자리는 우리나라 KTX의 8-9번대 가족석 자리처럼 앞뒤로 마주 보고 있었다. 통로 석인 내 옆 자리에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검은색 머리의 라틴계 남자가 이미 앉아있었다.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열중해 작업을 했다. 건너편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중년 백인 남성이 손에 든 책을 읽고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니, 미소 지으며 답을 해 주셨다.


조지 클루니가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에 들어가면 그런 모습일 듯한
맑은 인상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책 읽던 모습은
지금도 내게 사진처럼 남아있다.    



기차는 출발했다. 손에 쥔 옵티머스 G의 시계는 아직 9시 56분인데, 기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 마침 가족에게 첫 기차를 탄 기쁨을 알리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계속 전송이 되지 않았다. 시차로 데이터 전송이 2분이나 느린 것인지, 핸드폰의 영혼이 나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조금 생겼다.


달린 지 20분 정도 지나자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 근교가 그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유의 노란색 들판과 길게 늘어선 잎이 마른 가로수가 있고, 그 끝에 집이 한 채 있는 곳이 많았다. 사람이 없어 조금 스산하지만 한편 아늑하고 따듯해 보이는 프랑스의 시골. 인상파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얘네는 조상 덕분에 이런 것을 보고 사는 복을 누리는 걸까, 부러웠다.

   


1시간 남짓 가서 프랑스 중부의 도시, 리옹(Lyon)에 도착했다.



나의 옵티머스는 어쩐지 도착해야 할 11시 56분을 넘겨 가리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아까 2분 늦었던 것 같은데 뭐지? 갸웃거리던 중에 기차에서 내렸다. 지진에 가까운 속도로 뒤이어 탈 기차의 플랫폼을 찾는 나의 동공. 그러나 전광판에는 내가 탈 TER 89981번은 보이 지를 않고, 비슷한 다른 번호들만 출발한다고 떴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다급해진 내 마음은 이 플랫폼 저 플랫폼을 뛰어다녔다. 결국 리옹에서 출발했어야 할 12시 6분을 넘기고 나는 플랫폼에 남았다.




어.... 어떻게 하지?

굼뜬 나의 옵티머스 G는 배터리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프랑스에는 우리나라의 Korail에 해당하는 국영 철도회사인 SNCF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KTX가 도입될 때 프랑스의 철도 시스템, 특히 TGV를 따라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여온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기차의 형태나 좌석 구조 등이 거의 동일합니다. SNCF 홈페이지는 감이 안 오는 프랑스어 지명을 검색하기 낯설다는 점을 제외하면, Korail과 거의 똑같아 예매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유럽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지긋지긋해하는 철도 예매 시스템. 결제 마지막 단계에서 ‘지금 그러니까 결제가 됐다는 거야, 안 됐다는 거야’라고 신경질 내게 만드는 경우가 많죠. SNCF도 그런 편이지만, 그래도 악명 높은 스페인 Renfe에 비하면 많이 양반인 편입니다.  


2. 파리 이외에 중소도시나 시골을 좀 다녀볼 생각이시면, 영어 지명을 확인하면서 예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프랑스어 발음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지명이 헷갈릴 때가 꽤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갔던 남부 코트다쥐르의 아를은 스펠링이 Arles인데, 마찬가지로 중남부 알프스 근처에는 알레스 Ales라는 곳도 있더군요. 심지어 그리 멀지도 않아요.


3. 제가 환승하면 지나친 Lyon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음식이 맛있기로 손에 꼽히는 도시입니다. 알프스에 가까워 물 좋고, 고기 좋고, 곡식이 잘 자란다더군요. 내륙 지역이지만 해산물도 신선하게 들여온다고 했습니다. 다음번에 가족과 프랑스를 가면 꼭 가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기회 되시는 분들은 꼭 들러 식도락을 즐기시기를.  

보지 못했던 리옹의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입니다.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 -
8 Place de Fourvière, 69005 Lyon, 프랑스
+33 4 78 25 13 01
https://maps.app.goo.gl/ZzVM4BhaENo4DeB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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