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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7.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10


(예약 3일 차-전반전. 댕청미를 뿜은 Notre-dame du Puy)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여행지에서 맞는 아침은 항상 좋다. 괜히 삶이 평화롭다.

시원하게 씻고 짐을 챙겨 내려갔다. 조식을 준다고 적혀있던 9시가 되기 10분 전이다. 거리를 좀 둘러볼까 해서 내려갔는데,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너무 추웠다.


건너편 붉은 네온등이 있는 가게는 Pub인 것 같았다. 어젯밤 유일하게 사람이 보였던 곳이다.
Dyke Hotel의 전경. 창문 너머 보이는 곳이 식당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주방이 있던 호텔 데스크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일 생각을 안 한다. 9시 15분이 되어서야 어제 본 주인장이 내려왔다.


“Breakfast, please"

"#$%^&*^%$*^?" (프랑스어)

“Breakfast. morning, morning meal"

"*&^%$%^&*&^%$? “

“브. 렉. 퍼. 스. 트! 밥. 밥 달라고! 아침밥” (손으로 밥을 떠먹는 시늉)

“.........!”

한국말로 화를 내니까 알아듣는 주인장. 아니 근데 그래도 호텔인데 영어로 조식인 Breakfast를 모르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는 프랑스에서 흔한 일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바게트 빵과 오렌지주스, 커피, 짭짤한 버터. 복숭아, 딸기, 살구잼과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구닥다리 식당에 가도 바게트 빵이 완전 맛있다!! 나는 한국에서 바게트 빵을 먹고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늘빵이나 먹었지. 그런데 프랑스 바게트 빵은 정말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소하고 적당한 질기를 갖고 있다. 빵만 먹어도 너무 맛있다.


식사를 하고 있으니 어떤 백인 중년 남성이 식당에 내려왔다. 주인장과 프랑스어로 무엇인가 대화를 꽤 주고받았다. 조용하지만 바게트 때문에 신나게 밥을 먹는 내게 그가 말을 걸었다.


“&^%$##((*(*&^%?"

"I can't speak French, at all."

"Where are you?" (from을 스킵하심)

“Korea, South"

"Oh! Korea. I love them."

그는 갑자기 자기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핸드폰에 Samsung이라고 적혀있었다.

“Samsung, good. Very good to use. (이렇게 적지만 그는 쌤쏭이라고 했다.)

“Yes, we're  very proud of it."

한 때는 라이벌 회사였지만 스마트폰을 말아먹고 애매한 대기업이 되어버린 회사 직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이후로도 여행에 관해 조금 대화를 했지만, 그는 쌤쏭 핸드폰 칭송에 바빴다. 그에게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어떻게 가는지 영어가 안 되는 주인장에게 대신 물어봐달라고 했다. 그는 이해한 듯 크게 끄덕거리더니 이번에는 내게 싸이 강남스타일 칭송을 시작했다.


즐거웠던 식사와 수다쟁이 여행객을 뒤로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아침 공기는 너무 맑고 좋았는데, 일요일의 프랑스 시골 거리에서 맞는 아침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Dyke Hotel의 전경


빌빌 거리는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켜셔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 대성당, Notre-dame de Puy를 찾아 올라갔다. 사실 딱히 길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 도시가 워낙 작은 데다, 어느 곳에서도 붉은 성모 마리아상이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여서, 으레 저곳이겠거니 했다.


고풍스러운 아치를 두고 있는 이 건물은 중학교였다. Lafayette middle school.


성당을 향해 가는 길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근 몇 년간 이렇게 기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석회암과 현무암을 나란히 배치한 아치형의 터널, 불그스름한 지붕에 누런 벽을 한 집들이 차 있는 골목은 중세시대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1600년대, 1400년대라고 적힌 푯말을 가진 집들은 호텔로 개조해서 쓰고 있는 곳도 있었다.


 


검은색 멍멍이 한 마리가 따라왔다. 길거리에서 사람은커녕 생명체를 보질 못했던 나는 무지 반가웠다. 한국말로 인사말을 건네는 멍청함을 시전 했지만 멍멍이는 계속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7-8분 정도 걸으니 대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의 대성당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미사 시간이 아직 멀었나?'

20분 정도 기다리면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성당 앞 골목은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유럽의 중세 모습. 눈이 와서 계단에 앉지는 못하고 서 있었다.



9시 30분이 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내려가는 길에 Le-Puy En Velay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 도착했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산골 마을.



전망대에 오르면 신기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뭘 하고 살까... 얼굴도 모르는 이의 하루가 괜히 궁금해진다. 작은 프랑스 중세도시는 평화로웠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이 누군가는 아마 아침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붉은 지붕들이 모인 마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생에 나는 유럽에서 살았던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작은 마을, 붉은 벽돌 지붕, 차 없는 좁은 골목, 조용한 골목들. 그래도 제일 좋은 건 반짝거리는 오래된 돌길. 아직도 저렇게 단단하다니...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고대, 중세인들의 대단함에 반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여행객의 역할이겠지.


대성당의 성모 마리아 상을 눈 앞에 둔 채로 언덕을 내려왔다. 철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성모 마리아 상은 황금색인 줄 알았는데 붉은색이었다. 중세시대 골목을 천천히 내려오자니 중세시대 평민이 된 것 같은 즐거움을 누렸다. 귀족이었을 리가 없지...


내 사진이 없던 나는 골목의 거울에서 셀카를 한장 찍었다.


전망대에서 나랑 같이 자유를 만끽했던 멍멍이는 어느새 안 보였다.

대성당 다음으로 Le-Puy En Velay를 유명하게 만든 생 미셸 (Saint-Michel) 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에서 내려와 마을을 가로질러 생 미셸 성당 앞으로 왔다. 15분 정도 걸은 것 같다. 생 미셸 성당도 도시 어디에서나 보인다. Le-Puy 언덕 한복판에 생뚱맞게 툭 튀어 오른 언덕에 서 있는 생 미셸 성당. 언덕 초입에 조금 올랐다. 아까 성모 마리아 상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풀 수 있겠다는 흥분이 든다. 몇 계단이나 올라야 할까?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는 엄청 올라간 것 같던데.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혔고.

입구 안내에 걸린 안내 표지에는 일요일은 쉰다고 적혀있었다.



......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제가 보지 못했던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은 대성당, Notre-dame de Puy 안에 있습니다.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은 기본적으로 백인을 상정하고 만든 마리아 상만 있는 유럽에서 드물게 검은 피부라고 하네요. 중세부터 이 검은 마리아상을 보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행려병자들이 Le-Puy를 많이 찾았다고 해요. 대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저는 당연히 보지 못했네요. 스트레스로 전신이 다 쑤셨는데....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대성당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관람이 가능합니다. 여름인 7월과 8월에는 토요일도 가능하다고 해요. 입장료는 없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2. 핸드폰 이야기가 나왔으니, 삼성페이나 LG페이 쓰시는 분은 해외에서 꼭 써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삼성페이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한국에서 쓰는 것과 똑같이 아주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불안함이 덜하기 때문이겠죠. 단, 로밍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삼성페이를 한국에서 쓸 때도 Wifi 상태로는 안 되듯이 글로벌 로밍 상태여야 사용이 가능합니다. 로밍보다 가격이 저렴한 포터블 핫스팟이나 유심칩을 이용하면 결제가 불가합니다. 물론 현금 대신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여행 중에 저 세상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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