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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6.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9


(여행 2일 차-3. 성모마리아 상이 빛나는 Le-Puy En Velay)




기차는 왼쪽으로 돌아나가며 쌩떼띠엔에서 두 번 더 정차했다. 내 생각보다 꽤 큰 도시였던 모양이다. 프랑스 특유의 회백색 건물들이 늘어선 겨울의 쌩떼띠엔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시와 멀어지니, 산이 나왔다. 기차의 창 좌우로 풀숲의 풀이 스쳐 닿는 듯 가까웠다. 기차가 비스듬히 올라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제야 기차 내부를 볼 여유가 생겼다.


건너편 마을이 예뻐서 찍었는데 덕분에 순례객 커플 두 분도 같이 모셨다.

텅텅 비어있던 기차 안에는 노년 커플이 셋 있었다.
모두 다 지팡이를 쥐고 배낭을 멘, 등산복 차림이었다. 백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세상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인자하다기보다는 실은 내가 궁금했던 것 같다. 한국어를 할 줄 아셨다면 ‘아이고, 젊은 처자 거길 혼자 가노.’라고 하실 것 같은 마음이 비쳤다. 푸근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살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나도 싱긋 웃어드렸다.


다음날 알았지만 내가 가려던 Le-Puy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 지점 중 하나였다. 이 노년 커플들은 모두 순례에 나선 것이었다.



눈 내리는 프랑스 산골. 멀리 살짝 시냇물도 보인다.


두 시간 넘게 천천히 올라가는 기차는 무지 느렸다. 완행열차였다. 창밖으로 굽이굽이 산골이 나오는데, 건너에는 푸른 풀밭에 하얀 소들이 풀을 뜯는 것도 보였다. 푸른 밭에 눈이 내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가본 적 없지만 강원도 정선이나 영월에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 이런 기분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에 눈은 계속 펑펑 내려 마음이 살짝 불안했다. 배터리를 아끼려고 가끔 열어보는 핸드폰에는 아직 6시도 채 안 되었다. 저 멀리 동상 같은 것이 번쩍 거리는 작은 도시가 보인다. 오늘 나의 종착지인 Le-Puy En Velay다. 열차 방송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뭐 여기가 마지막 역이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직 오후 5시 30분 밖에 안 되었는데 어둑어둑하다. Sortie는 프랑스어로 출구.


기차역에는 나랑, 같은 칸에 탔던 노년 커플 세 팀과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렸다. 기차역 밖은 깜깜했다. 안 그래도 비수기인 시절, 프랑스의 강원도 정선은 진짜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구닥다리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잡고 숙소를 찾아가는데, 아까 기차역에 있던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예약한 <Dyke Hotel>은 기차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Le-Puy에서는 시내 중심가인 듯했는데, 길거리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에 들어섰지만 주인도 보이지 않아 조금 기다렸다. 체크인을 했다.


유럽 호텔의 매력이자 괴로움인 계단. 짐이 적어 다행이었다.


2층이었던 내 방은 유럽 호텔의 상식인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다행히 나는 짐이 적었다. 여행 내내 혼자 계속 캐리어를 끌고 다니자니 도난에 위험할 것 같아, 나는 한인민박에 9박을 연박으로 잡았다. 그리고 캐리어를 둔 채로 여기저기 자고 오는 방식을 택했다. 만일을 대비해 캐리어는 자물쇠를 두 개 채워 내 침대 옆에 세워두었다. 혼자 다니기 위해 안전을 선택한 기회비용으로 숙박비를 이중으로 무는 셈이다.


 

방은 아담했다. 작은 테이블 한 개와 더블 침대 하나,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었다.

창 밖으로 아무도 없는 거리를 잠시 내려다보다, 가족에게 숙소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자 혼자 여행을 보낸 가족에 대한 나의 약속이다.


혼자 있자니 어색해 텔레비전을 틀었다. 못 알아들을 말을 하는 뉴스를 틀어두었다. 나는 집에서도 혼자 있으면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다. 와이파이를 잡아서 멜론으로 노래까지 틀어 두었다.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해볼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여자 혼자 여행 온 게 뻔히 보일 텐데, 사람 없는 호텔에서 목욕 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싶었다.


 

외로운 밤을 함께 해 주는 친구 물통. Vittel 사 물이다. 탄산 없음.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싶었지만, 한 편으론 숙소에 도착해 안심이 되었다.

나는 오늘 어쩌면 정말 생판 모르는 도시에서 밤길을 헤매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죽자고 덤비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던데, 나는 오늘 무슨 생각으로 리옹이라는 프랑스 한복판의 도시에서 번호도 모르는 기차를 탔으려나.



샤이니의 노래 <View>를 틀어두었다.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너무 아름다운 다운 다운 다운 View....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마을의 정식 명칭은 Le-Puy En Velay입니다. 여행 관련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검색해도 많이는 나오지 않아요. 오베르뉴 자체가 한국에 덜 알려진 탓도 있고, '르 퓌‘, ’르 뿌이‘ ’르 쀠‘, ’르 푸이 엉 벨레이‘, ’르 퓌 엉 벨레‘, ’르퓌앙벌레이‘ 등등등 너무 여러 가지 발음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강추하고 싶은 예쁜 소도시예요. 프랑스에서 웨딩 사진을 촬영하는 장소 중 하나라고 합니다.

대중교통으로는 기차 편을 통해서 갈 수 있습니다. 파리 출발을 기준으로 하루에 6번 운행이 있고, 기본적으로 경유해야 합니다. 프랑스 중부의 오베르뉴, Clermont-Ferrand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파리가 Il-de Paris에 위치하듯이, 클레르몽은 우리로 치면 충청북도 같은 개념이랄까요? 현무암이 많다는 Clermont-Ferrand 지형 특징으로 마을에 검은색 돌이 많습니다.


2. 한국에서 낯설 뿐, Le-Puy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하는 지점 중 하나이자 검은 성모 마리아상으로 유럽에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작은 소도시에 호텔이 60여 개 검색이 될 정도로 많고 대부분 기본은 하는 숙소들이라 잡히는 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부활절과 같은 시즌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고 하니 미리 숙소를 확보하는 것이 좋겠네요.    


3. Dyke Hotel에 대해 평을 하자면, 유럽의 숙소 욕실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욕조가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숙소 내부는 작지만 깨끗하고 비품도 샴푸, 비누는 갖추고 있어요. Le-Puy에서 가장 교통이나 이동이 편리한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짐이 많으시면 유유입니다. 물론 유럽 호텔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경우는 호화 호텔인 경우가 많으니 감안하셔야겠지요? 프랑스 호텔답게 조식은 간단해도 기본은 하는 맛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가성비를 따지면 ★★★☆. 조식은 뒤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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