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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Jul 26. 2018

눈높이와 눈넓이 (하)

문서 작성의 기본

문서 작성은 어려워


일이 시작되어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모든 과정에 수많은 문서가 만들어져 수정되고 공유된다. 이메일, 업무보고, 회의록, 제안서, 견적서, 계약서, 기획안, 일정표, 설문지, 보고서 등 문서는 작성 목적에 따라 그 종류도 많다. 


같은 종류의 문서라도 기관 및 기업에 따라 선호하는 스타일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선호 스타일을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내외부에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융통성 있게 다른 스타일의 문서도 허용한다. 


공기관은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해 숫자와 특수 기호로 대중소 목차를 맞춰 작성한 세로형 보고서를 선호한다. 하지만 공기관 입찰에 기업이 참여하는 경우, 기업에서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가로형 제안서를 허용하기도 한다. 


기업은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로형 보고서를 선호한다. 하지만 기업에 따라서는 문서 디자인에 들이는 시간과 종이의 낭비를 이유로 파워포인트로 만든 문서를 금지하기도 한다. 아마존 Amazon에서는 워드 프로그램으로 만든 6장 정도의 서술형 메모 Narrative Memo로 회의를 하고, 현대카드에서는 Zero PPT 캠페인을 통해 모든 보고서를 수기 또는 엑셀로 간단히 쓰도록 하고 있다. 

http://blogview.hyundaicardcapital.com/907


이렇게 문서는 종류도 많고 선호 스타일도 많다. 그래서 초심자가 문서작성 능력을 단기간에 키우기가 쉽지 않다.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의 유형은 문서의 논리 구조 구성, 문장력 강화, 유형별 문서작성 실습, 특정 문서 편집 소프트웨어의 사용 등으로 나누어진다. 최근에는 ‘하루 만에 모든 걸 배우고 싶다’는 요구가 많아 논리 구조, 문장력, 문서 작성 실습 등에 대한 내용이 모두 들어있는 하루 8시간 교육이 많아졌다. 하루 교육받고 문서작성 능력이 얼마나 길러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서 작성에 대한 책도 많고 온라인/오프라인 교육도 많아 이 글에서는 '문서 작성의 기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엉터리 문서의 폐해


"한 시간 정도 미팅에 참석하라는 메일이 왔다. 참석자를 보니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인 것 같은데 메일을 읽어봐도 왜 오라는 것인지, 무엇을 논의하는 자리인지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답 메일로 물어볼까 하다가 다른 일이 바빠 답신을 하지는 못 한다. 결국 나는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미팅에 참석하고 만다. 미팅을 하다 보니 사전 준비 없이 올 자리가 아니었다.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애초에 참석 메일에 제대로 된 안내가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멍청이처럼 말도 못 하고 앉아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어렵게 모인 분들이 좀 더 수준 높은 논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가 작성한 문서를 받고 위의 사례와 같은 짜증이 날 때가 종종 있다. 간단한 문서인 메일이 엉터리라도 이렇게 짜증이 날 정도이니, 복잡한 문서인 보고서가 엉터리라면 짜증을 넘어 물 없이 고구마를 10개 먹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엉터리 문서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육하원칙을 지키지 않아 읽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맞춤법이 엉망이라 읽기 불편하다
ex)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2주 소요” (X) 
= ‘일’이나 ‘것’의 뜻을 나타내는 의존명사 ‘데’는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2주 소요” (O)

수식하는 말이 많고 설명이 구구절절한 만연체라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온다

문장의 주어나 목적어를 지나치게 생략해 내용 이해가 어렵다

오타가 많다
ex) “마케팅팀과 함께 광고 모텔 선정에 관하여 협의할 예정” = ‘모델’을 ‘모텔’로 잘못 작성

신조어나 약어를 아무 설명 없이 쓴다
ex) 인정하는 부분, 야근각 (야근을 할 것 같은 상황), f/u (follow up)

배경 사진이나 폰트 문제로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 유명한 'X같은 보노보노 PPT' *출처: www.huffingtonpost.kr


누군가의 엉터리 문서를 받고 내가 짜증 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작성한 엉터리 문서를 받고 누군가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엉터리 문서를 만드는 누군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엉터리 문서가 만들어지는 핵심 이유는 글을 쓰는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는 건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전적으로 쓴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문서 작성의 기본자세는 <읽는 네 탓>이 아닌 <쓰는 내 탓>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정보의 홍수, 관심의 가뭄


정보의 홍수 Information Overload는 정보가 너무 많아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의사결정이 어려움을 뜻하는 것으로 정보 과잉, 정보 과부하, 정보 과다로도 부른다. 


정보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든다. 모든 정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기에 나와 관계없는 정보에는 관심을 끄고, 관심 가는 정보 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골라 관심을 집중시키는 스킬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관심’이라는 무형의 자원은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 


토머스 데이븐포트 Thomas H. Davenport는 그의 책 ‘관심의 경제학’에서 다음과 같이 관심의 희소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관심의 경제'에 살고 있다. 이 새로운 경제 사회에는 자본과 노동력, 정보와 지식 등 모든 것이 충분하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 소비자와 시장에 다가가는 것, 전략을 세우는 것, 웹 사이트를 만드는 것, 광고를 제작하는 것도 쉽다. 부족한 것은 바로 사람의 관심이다."

*출처: www.amazon.com


문서 작성을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정보의 홍수와 관심의 가뭄'을 고려하면, 무엇에 대해 얼만큼의 분량으로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1. 기본 가정: 읽는 사람은 내 문서에 관심이 없다

2. 기대 효과: 내용의 전달, 메시지로 설득

3. 기대 효율: 내용의 양, 메시지 수 최소화



문서 작성의 방향 설정


1. 기본 가정: 읽는 사람은 내 문서에 관심이 없다


쓰는 사람이 잘못 생각하는 대표적인 오류가 ‘읽는 사람도 나만큼 내용을 알고, 나만큼 관심을 가질 것이다’라는 착각이다. 읽는 사람은 다른 일로 바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문서를 받았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용도 잘 모르겠고 딱히 관심을 가질 이유도 찾기 어렵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문서를 쓰다 보니 내용도 많이 알게 되고, 관심도 커지게 되지만 읽는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관심이 1도 없는 상태다.


이렇게 내용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내 문서를 읽는다고 했을 때, 내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읽는 사람은 ‘누구’인가?
- 상사인가? 고객인가? 엔지니어 팀인가? 영업본부인가? 직원 전체인가?
- 집단일수록 그리고 집단이 클수록 공식적인 문서 양식을 지켜야 함

읽는 사람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 문제점인가? 해결책인가? CEO의 의중인가? 직원들 의견인가? 숫자인가?
- 1, 2, 3에 관심이 있는데 관심 없는 7, 8, 9에 대해 문서를 쓰지는 않나?
- 읽는 사람에게 빙의되는 수준으로 철저히 그 사람 입장에서 고민해야 함

읽는 사람의 ‘관심의 순서’는?
- 1, 2, 3 순서로 관심이 있는데 나는 3, 2, 1 순서로 문서를 쓰지는 않나?
- 읽는 사람의 ‘관심의 순서’에 따라 목차를 구성하면 훌륭한 문서

읽는 사람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 핵심만 요약, 본 내용의 사전과 사후에 대한 것까지 포함한 전체를 설명, 숫자나 데이터의 정확성, 시시콜콜한 디테일, 좋아하는 문구 등
- 내 스타일을 버리고 읽는 사람의 스타일에 맞추기

읽는 사람이 이 정도 관심을 가진다면 '완벽한 문서' *출처: animals.howstuffworks.com


2. 기대 효과: 내용의 전달, 메시지로 설득


우리는 디자인이 깔끔하고, 오타나 맞춤법의 잘못이 없고, 분량이 부족하지 않은 문서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문서 형식의 기본이긴 하지만, 여기에 매몰되면 껍데기는 화려하지만 알맹이가 부실해진다. 


알찬 알맹이의 핵심은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읽는 사람 입장으로의 관점 전환>이다. 즉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 입장에서 내용 이해가 쉬운지, 그리고 메시지가 와 닿는지'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소설을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완전히 바꾸는 만큼 관점 전환은 쉽지 않다. 문서 작성할 때마다 신경 쓰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6이고 읽는 사람 입장에서 9라면, 쓰는 사람이 9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출처: formax.qc.ca


읽는 사람이 문서를 보고 엉뚱한 질문을 하면, 쓰는 사람 관점에서 ‘저 사람의 수준이 낮다’는 식으로 읽는 사람 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남 탓을 하는 이유는 내가 열심히 이 문서를 만들었는데 그걸 상대방이 몰라 봐서 생기는 억울함 때문이다. 읽는 사람이 문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서에 설득되지도 않는다면 그건 철저히 내 탓이다. 왜 이해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되는 문서를 만들었는지 깊이 반성하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남 탓'말고 '내 탓'을 해야 한다.


천주교에서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라고 말하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세 번 치는 기도가 있다. 혹시 내가 자꾸 '남 탓'만 하려 한다면 가끔 내 가슴 한 번 치며 반성해 보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출처: news.joins.com


이렇게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봐야 하는 건 문서의 고객이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또한 문서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발신자(쓰는 사람)가 수신자(읽는 사람)에게 정보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있다. 문서는 말로 하는 것보다 자세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기가 어려워 소통에 왜곡이 생기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 쓰는 사람이 완성된 문서를 보내는 순간, 읽는 사람은 문서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문서 작성의 기대 효과를 ‘내용의 전달, 메시지로 설득’이라고 할 때, 내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읽는 사람이 '알고 싶은 내용'인가? 
- 분량 채우려고 문서에 억지로 내용을 넣지는 않았나? 혹시 나만 궁금해하는 내용인가?
-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관련이 있어야 읽는 사람이 내용을 알고 싶어 한다, What’s in it for me?

읽는 사람이 ‘얼마나 내용을 이해’ 하는가?
- 내 문서는 워낙 잘 만들어서 읽는 사람이 100% 이해할 거라고 믿는가?
- 가능하다면, 쓰는 사람이 질문을 통해 읽는 사람의 이해도를 파악하고 추가 설명을 해야 함

읽는 사람이 ‘내 메시지에 설득’ 되는가?
- 오히려 내 메시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늘어나지는 않는가?
- 전달하는 내용과 주장하는 메시지가 잘 결합되어야 설득이 됨


3. 기대 효율: 내용의 양, 메시지 수 최소화


효과는 ‘아웃풋이 얼마나 큰가’에 집중하는 것이고 효율은 ‘인풋이 얼마나 작은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동일한 기대 효과를 가진 문서를 만든다면 인풋이 작을수록 효율이 좋아진다. 문서 작성을 효율적으로 하면 야근도 줄어들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효율이 좋아질까? 


첫째, 내용의 양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는 문서의 내용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 쓸 데 없는 내용을 잔뜩 집어넣곤 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지금 세상에서 내용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문서가 완성되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 볼 때 무의미한 내용이 많으면 문서의 초점이 흐려져 읽기가 쉽지 않고,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내용의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문서에 ‘쓸 데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가?
-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내용’에 이것도 넣고 싶고 저것도 넣고 싶은가?
- 읽는 사람의 눈으로 버릴 자료는 과감히 버려야 함, 정리의 핵심은 '버리기' 

문서에 빠지면 안 될 ‘필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가? 
- 내용이 양을 최소화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내용을 빠뜨리지는 않았나? 
- 목차를 항상 옆에 두고 문서를 작성하면 됨
- 목차는 내용을 구상할 때부터 문서를 완성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이정표로 활용

악~! 읽을 게 너무 많아! *출처: administrativefiduciary.com


둘째, 메시지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메시지를 줄이고 줄여 "이렇게 적어도 괜찮나?"싶을 정도로 줄여야 한다. 메시지 설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 다음에 별도의 글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 직장인 업무 기본서, 업무전과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blog.shi.com/software/adobe-bolsters-mobile-workforce-capabilities-with-acrobat-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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