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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Aug 08. 2018

숨겨진 여백을 찾아서

박상훈의 INNOSPARK, 2009년 11월호

여기 검은색 점들로 가득 차 있는 그림이 있다. 오로지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디에 그려 넣는 것이 좋을까? 그림을 보고 잠시 생각해 보자.
 

99개의 점 by sanghoon


그림을 자세히 보니 가로 10개, 세로 10개로 총 100개의 점이 있어야 하는데 오른쪽 아래에 자리 하나가 비어 있다. 마음속으로 “옳다구나! 저 자리다!”라고 생각하며 검은색 점 하나를 쿡 찍는다. 


객관식 시험에서 마지막 100번째 문제를 풀고 OMR 카드에 최종 마킹을 마친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것이 단순히 재미 삼아 점을 찍는 놀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동종 산업 내 우수 기업들의 비용, 생산성, 품질 등 성과 측정기준과 경영 프로세스, 제품, 전략 등을 조사해 자사의 목표로 삼을 만한 기준 Benchmark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벤치마킹 Benchmarking과 산업에 관계없이 최고의 실행사례를 찾아 자사에 도입하는 베스트 프랙티스 Best Practice는 여러 기업에서 빈번하게 활용되는 경영기법이다. 


업계 최고의 기업이나 경쟁사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타사의 우수 사례를 적극적으로 배운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 기법은 유용하다. 다만 우수한 기업과 사례를 지나치게 연구할 경우, 자칫 ‘무작정 모방’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두 기법의 사용은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위 그림에서 100번째 점은 기존에 있었던 99개의 점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다른 점들이 배치된 모양을 고려해 나름 신중하게 선택했지만 점을 찍는 순간 100개 중의 하나가 될 뿐이다. 


이는 별 특징 없이 경쟁사와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를 늘어놓고 우리 것만 잘 팔리기를 바라는 기업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점이 꽉 차 있는 곳에 또 다른 점을 찍는 것으로는 근근이 버티는 수준 이상의 성과를 이룰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존에 점이 찍혀 있는 공간을 피해 여백에 점을 그려 넣으면 된다. 생각보다 허무한 답에 실망했을 분들을 위해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자.


여백을 찾은 

사우스웨스트 항공 [1] 

냅킨에 적은 메모


지방 항공사 경영에 실패한 사업가 롤린 Rollin은 변호사인 허브 켈러허 Herb Kelleher의 도움을 받아 청산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롤린은 문득 냅킨 한 장을 집어 위의 그림과 같이 삼각형 하나와 텍사스 주에서 가장 큰 세 도시의 이름을 적어 허브 켈러허에게 보이며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무모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점에 동의한 허브 켈러허는 사업에 동참하기로 결심을 했고, 이렇게 창업 이래 30년 연속으로 흑자를 내는 최고의 항공사, 사우스웨스트가 탄생하게 된다.


이 메모가 비즈니스의 여백을 찾는 관점에서 특별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단거리 직항 노선

1960년 당시 아메리칸 항공, 콘티넨탈 항공, 브래니프 항공과 같은 대형 항공사들은 미국 전역을 커버하고 있었다. 이들 대형 항공사는 도시들 간에 직항 노선을 개설할 경우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판단해 대도시 터미널 집중 방식 Hub-and-spoke distribution model을 활용했다. 


이는 화물과 승객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집결지 Hub인 C지점을 거쳐 가는 방식으로 장거리 물류를 주로 하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짧을 경우 그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C지점을 거치지 않고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바로 가는 지점 간 운송 Point-to-point을 채택했음을 메모를 통해 볼 수 있다.  

2. 여백에 그린 노선


1960년대의 항공 노선을 그린 아래 그림을 보면 롤린이 그린 삼각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즉 롤린이 그린 S는 A, B, C의 노선들과 겹치지도 않고 경쟁할 이유도 없는 여백에 삼각형을 그린 것이다.
 

비어있는 곳에 그려진 삼각형



여백을 찾는 도구, 

전략 캔버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우스웨스트 항공처럼 숨겨진 여백을 찾을 수 있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도구로는 2005년에 인시아드 INSEAD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Renee Mauborgne 교수가 함께 쓴 ‘블루오션 전략’의 전략 캔버스 Strategy canvas를 들 수 있다. 전략 캔버스에서 업계가 제품, 서비스, 유통에서 경쟁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확인하고, 경쟁사들이 각 요소에 투자하는 수준을 가늠함으로써 우리 회사가 제거, 감소, 증가, 창조할 요소를 결정할 수 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읽은 베스트셀러라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블루오션을 창출하고자 한다면 전략 캔버스 상에서 경쟁사들이 고려하지 않은 여백에 점을 찍어야 한다. 단언컨대 경쟁사들이 이미 찍은 점들로 가득한 곳에 여러분이 또 다른 점을 찍는다면 시장 나누어 먹기는 하겠지만 '여백의 혁신 White Space Innovation'은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이든 회사든 옆에서 뛰는 경쟁 상대를 따돌리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경쟁사에 비해 자원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우리만 특별히 사업 환경이 좋은 편도 아니다. 어제까지 우리 제품(서비스)을 구입하던 고객이 더 좋은 가치를 제공하는 곳으로 언제든 옮겨갈 수도 있다. 아예 영원한 충성고객은 없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려면 어찌해야 할까?
 

 

새로운 NEO 

하나ONE


99+1개의 점 by sanghoon


이것은 앞의 그림에 흰색의 큰 점을 그려 넣은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볼 때 관심을 기울인 대상인 전경 Figure과 그렇지 않은 대상인 배경 Ground으로 구분해 인식한다. ‘99개의 점’을 볼 때 검은색의 점을 전경으로, 흰색을 배경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 박스' 안에 갇히게 된다. 점들이 모여있는 공간에 따로 선을 그어 경계를 나타내지 않았기에 조금 옆에 점을 찍어도 되지만, 우리도 모르게 무형의 사각 테두리 안에서 점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바꿔 검은색의 점들을 배경이라 생각하면,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달라진다.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이 검은 여백에 흰 점을 찍으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일하는 모습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선천적으로 창조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보다는 웬만한 것은 이미 다른 사람, 다른 기업이 했기에 우리가 딱히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믿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매트릭스에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주인공 네오 Neo가 결국 모두를 구하는 특별한 하나 One가 되는 것처럼 특별한 사람, 특별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1’을 창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  


“The question is not what you look at, but what you see.”
- Henry David Thoreau 




[1] 이 부분의 내용과 사진은 아래 책과 블로그를 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책: 생각을 SHOW하라(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6가지 방법), 댄 로암(Dan Roam), 2008
블로그: THE BACK OF THE NAPKIN blog, Southwest Airlines keeps up the napkin spirit
(http://digitalroam.typepad.com/digital_roam/2008/04/southwest-airli.html)

[2] 철자의 순서만 다른 NEO와 ONE은 영화의 내용상 새로운 사람 Neo이 유일한 구원자 The One가 되므로 단어(문장)의 철자를 재배열하면 새로운 의미의 단어(문장)가 나타나는 애너그램 Anagram이다. 매트릭스의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기존 영화와 전혀 다른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videoblocks.com/video/businessman-standing-in-front-of-black-shape-of-bulb-light-business-plan-and-various-graph-in-black-wall-concept-vfrs49v_eijlw3z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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