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INNOSPARK, 2009년 10월호
필자가 일을 하며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노트북과 연필, 두 가지가 있다.
노트북은 각종 보고서, 강의 슬라이드, 교재, 유인물 등의 문서 편집에 주로 활용하는데, 간혹 단순 작업을 빠른 시간에 끝마치고자 할 때에는 문서 작업과 함께 음악을 듣는 데에도 이 도구를 쓴다. 만약 타자기를 쓰던 시절에 지금과 비슷한 일을 했다면 중요한 문서를 거의 완성하고도 오타 때문에 새로 작성하거나, 오탈자를 교정하기 위해 따로 글자를 오려 붙이거나, 글쇠가 서로 엉킬까 봐 빠르게 타자를 치기도 어려워 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고객사에 제공되는 공식적인 문서나 내부 공유 회의를 위한 발표 자료를 만들 때에는 노트북을 주로 쓰지만, 개인적으로 과정의 컨셉을 구상하거나 시뮬레이션 등을 디자인할 때에는 연필을 쓴다. 이 글의 개요를 작성하는 순간에도 필자의 손에는 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연필은 노트북 가격과 비교해 그 값이 몇천 분의 1 밖에 안 되지만, 최신 노트북 못지않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도구이다.
손에 닿는 나무의 따뜻한 감촉, 흑연이 종이에 닿으며 내는 소리, 나무가 있었던 숲을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향기 등 연필은 노트북의 플라스틱 감촉, 키보드를 치는 소리와 팬이 돌아가는 소리,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전자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낌이 좋다.
물론 동일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는 작업이라면 연필이 노트북을 따라갈 수가 없다. 심지어 노트북은 Ctrl C(복사하기)와 Ctrl V(붙여넣기)의 두 동작이면 인터넷이나 다른 문서에 있는 수백 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순식간에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모방의 속도’가 아닌 ‘창조의 속도’라면 연필이 노트북보다 빠를 수 있다. 필자는 하루 종일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잡히지 않던 생각이 빈 회의실에 홀로 앉아 한 시간 동안 하얀 종이 위에 생각나는 대로 연필로 긁적거리다가 순식간에 떠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시간까지 고민한 것들이 쌓였기 때문에 그렇게 아이디어가 튀어나왔겠지만, 연필이 아닌 노트북으로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면 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경험 이후로 필자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자 할 때에는 연필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
필자는 업의 특성상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12.1인치 노트북을 쓴다. 사무실에 앉아 작업할 때에는 작은 화면이 불편해 노트북에 19인치 LCD 모니터와 키보드를 연결시켜 사용하고 있는데, 눈도 편하고 거북목 증후군이나 손목터널 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어 좋다.
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연결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할 때에는 오피스 프로그램 창과 인터넷 브라우저 창을 수없이 띄우고, 내리고, 전환하는 것도 힘이 들고 흔히 말하는 ‘스크롤의 압박’도 느낀다.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노트북과 LCD 모니터를 함께 쓰는 듀얼 모니터도 사용해 보지만, 이 방법도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에서 톰 크루즈가 허공에 떠있는 거대한 화면을 특수 장갑을 낀 손으로 만지며 자료를 탐색하고 정리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상상을 해보지만, 아직은 이 기술이 구현되지 않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연필은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하다 보니 A4지로 10장 이상 적었다면, 이 메모를 넓은 회의실 탁자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한눈에 전체를 보자. 다음에는 색연필로 박스를 그려 연결하고 싶은 아이디어끼리 표시한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싶다면 1, 2, 3의 숫자를 박스 옆에 적는 것도 좋다.
키워드나 간단한 문구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포스트잇을 쓰는 방법도 있다. 회의실 벽이나 통유리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톰 크루즈가 했듯이 포스트잇을 이리저리 옮기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좁은 노트북 화면에서 벗어나 100인치가 넘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싱싱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보자. 포스트잇을 활용하는 방법은 팀 단위 작업에도 효과적이다. 한 번 시도해보기를 바란다.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면 정해진 글꼴에 따라 한결같은 모양의 글씨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글꼴, 글자색, 밑줄, 진하기, 이탤릭 등의 효과를 적용하지 않으면 어떤 글자가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는다. 많은 글자들 가운데 특히 강조해서 나타낼 부분을 여러 가지 효과로 보여줘야 하는 보고서를 만들 때에는 상당히 많은 추가 작업이 요구된다.
하지만 연필로 글씨를 쓰면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 조금씩 다를 뿐만 아니라, 단어에 표시한 밑줄, 동그라미, 화살표 등도 서로 다르다. 이 때문인지 필자는 스스로 적은 메모를 볼 때에는 '글씨의 집합체'가 아닌 '이미지 덩어리'로 인식한다. 그래서 다시 찾고자 하는 부분도 큰 어려움 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처럼 연필로 쓴 글씨는 마치 그림과 같이 인식되기 때문에 흩어져 있는 개념과 아이디어를 묶을 때 효과적이다.
16세기 초 흑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이탈리아에서 나무로 흑연을 감싸는 방법을 개발하고, 1858년 하이멘 립먼 Hymen Lipman이 연필 끝에 지우개를 달면서 지금의 연필 모양이 만들어졌다. [1] 값이 싸고 흔하게 볼 수 있어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기는 했지만 사실 연필은 500년 이상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최적의 기능과 모양이 만들어진 훌륭한 도구이다.
다음은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이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김홍도)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지요? (신윤복)
어찌 그러하냐? (김홍도)
그림이 그리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리움이 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얼굴 그림이 되고,
그리운 산이 있으면 산 그림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문득, 얼굴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그립고,
산 그림을 보면 그 산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신윤복) [2]
그림과 그리움은 서로 맞닿아 있다.
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달라질 세상을 그리워하며
연필로 나의 아이디어를 꾸준히 그리다 보면,
새로운 세상을 담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1] 흑연은 ‘돌로 만든 먹’이라 하여 석묵(石墨)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은 이미 알려진 두 가지 물건의 단순 결합이라 발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1875년 미국 대법원에서 특허가 취소되었다.
[2] 바람의 화원, 이정명,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