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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Aug 08. 2018

왼손잡이의 혁신

박상훈의 INNOSPARK, 2009년 9월호

글을 읽기 전에 간단한 테스트를 한 번 해보자.
1. 먼저 종이에 펜으로 사선( / ) 10개를 빠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린다. 
2. 다음에는 사선의 대칭형인 역사선(\) 10개를 위와 비슷한 속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린다. 


by sanghoon



낯익음 혹은 낯섦 


필자는 역사선 Backslash의 모양 자체가 사선 Slash에 비해 낯설게 느껴졌고, 그리는 동작도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선은 분수를 표시하거나 대등한 것을 나타내는 문장 부호로 자주 사용하고,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할 때에도 쓰지만 역사선은 평소에 활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1] 즉 역사선은 자주 보지 못 해 낯선 것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불편한 것이다. 


‘2분의 1’은 사선을 이용해 1/2이라고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다. 만약 우리 인류가 각각의 기호에 의미를 담아 활용할 줄 몰랐다면, 기호를 일일이 글로 설명하느라 수학책 두께가 지금의 10배는 넘게 두꺼웠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 의 왼쪽을 분자, 오른쪽을 분모라는 규칙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2\1이라고 쓰고 이를 ‘2분의 1’이라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약 500년 전, 화가이자 과학자, 수학자, 식물학자, 해부학자, 공학자, 발명자,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 작가이었던 한 사람은 이런 낯선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센스가 빠르신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을 것이다. 그는 바로 과학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의 교집합에 서 있던 한 사람,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Leonardo da Vinci (1452~1519) *출처: www.1startclub.com


왜 다빈치는 남들처럼 오른쪽 방향 대신에 왼쪽 방향으로 글씨를 썼을까?


일설에는 다빈치가 난독증이 있어 반대 방향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지식을 암호화시키려는 편집증적 성격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따로 있다. 


당시 왼손잡이들은 대부분의 오른손잡이와 같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다가 손에 잉크를 자주 묻히곤 했다. 무려 500년 전이니 지금처럼 잘 묻지 않는 펜도 없었을 터다. 왼손잡이였던 다빈치는 어떻게 하면 잉크를 묻히지 않을까 고민했고, 결국 거울로 비춰 좌우가 바뀌어야 제대로 보이는 ‘거울 글쓰기’라는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2] 잉크가 묻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글씨 쓰는 손을 바꾸기보다 글씨 쓰는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렇듯 그가 보통 사람들이 쓰지 않는 낯선 방법을 쉽게 채택하고, 잠수복이나 비행기가 발명되기 400여 년 전에 독창적인 설계도를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성장 과정과 맞닿아 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빈치'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당대 지식인들의 언어였던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우지 못했고, 그 결과 그리스, 로마 철학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꾸준한 관찰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다빈치는 당시의 관습과 정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일례로 그가 20살 되던 해, 스승인 베로키오 문하에서 당시 통용되던 계란 노른자와 빗물을 섞어 만든 물감을 무시하고 물감에 기름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유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유화 기법은 몇 년 전에 발명되었지만, 당시 남부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은 기법이었다고 한다. [3] 


혁신적인 제품들은 우리 눈에 낯익기보다는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2007년 1월 18일, 닌텐도 Nintendo에서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 DS Lite’를 한국에 출시하면서 영화배우 장동건이 소파에 앉아 게임을 즐기는 광고를 보고, 필자는 “광고비가 꽤 많이 들었겠지만 과연 저렇게 단순한 게임기가 첨단 게임에 익숙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팔리기는 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필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2년 후인 2008년 12월 27일 누적 판매량이 무려 100만 대에 이르게 된다. [4]  


여러분이 한 사업부문의 전략 책임자로서 올해 목표를 작년보다 10% 더 성장하는 것으로 설정했다고 하자. 그런데 전략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CEO가 10% 성장 목표를 10배로 수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점진적 혁신과 구조적 혁신 by sanghoon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혁신'이 일상적인 변화를 이끄는 '점진적 혁신'에 비해 창출할 수 있는 부의 가치가 100배나 되지만 산업의 구조를 뒤흔들 만큼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큰 변화가 어렵다고 해서 '점진적 혁신'에만 매달린다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 '구조적 혁신'의 파도에 휩쓸려 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도요타는 점진적이며 지속적인 카이젠 改善 활동에 힘입어 현재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손꼽히지만, 만약 어떤 회사가 SF 영화에 등장하는 ‘바퀴 없는 차’를 만들어낸다면 자동차 산업 내에서 경쟁의 지향점 자체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5] 


즉 게임의 룰을 바꾸는 '구조적 혁신'은 게임 안에서 정해진 룰로 승리하는 '점진적 혁신'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Innovation이라는 단어에서 다섯 번째 알파벳인 V에는 사선( / )과 역사선(\)이 함께 있다. 필자는 이를 낯익음과 낯섦, 1/10과 10\1, 10퍼센트와 10배로 구분되는 '점진적 혁신'과 '구조적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제이슨 제닝스의 책 제목을 빌린다면, “THINK BIG, act small”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참 간단한 말이지만 “think small”하거나 “ACT BIG”하는 회사들이 꽤 많기 때문에 그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6] 


과거의 성공 규칙이 절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게리 해멀이 쓴 ‘경영의 미래’에서 글귀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7]


우리는 
불규칙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불규칙적인 사람들은 
불규칙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불규칙적인 제품을 만들고, 
불규칙적으로 이득을 얻는다. 





[1] 심지어 컴퓨터 키보드에는 역사선이 표시된 자판이 보이지도 않는다. 워드 프로세서에서 역사선을 보고 싶다면, 키보드 오른편에 있는 ₩ 자판을 누르고 그 글자에 영문 글꼴을 적용해야 나타난다. 
[2] Leonardo's Notebooks, Leonardo da Vinci, Suh, H. Anna, 2007
거울 글쓰기는 소설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Dan Brown, 2003)에서 중요한 단서를 감추는 암호화 수단으로 설명된다. 
[3] BBC에서 제작하고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시대를 앞서간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참고
[4] 한국 닌텐도 홈페이지 (http://www.nintendo.co.kr/)
[5] 최근 검색 광고 회사인 구글이 핸드폰과 컴퓨터 운영체계 사업에 진출하고, 핸드폰 회사인 노키아가 넷북 시장에 뛰어들고, 컴퓨터 제조업체인 델이 성장 가능성이 큰 스마트폰 시장을 노리는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영역파괴 현상이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다른 산업의 회사에서 ‘바퀴 없는 차’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6] 제이슨 제닝스는 기업을 실천형(TB, as), 구멍가게형(ts, as), 체면중시형(TB, AB), 허풍형(ts, AB)의 4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은 비전과 전략은 원대하나 실행이 잘 안 되는 ‘체면중시형’이라고 한다. (THINK BIG ACT SMALL, Jason Jennings, 2005)
[7] The Future of Management, Gary Hamel, 2007  




*커버 이미지 출처: http://indigenouslawjournal.com/da-vinci-anatomy-book/drawings-that-prove-ianspiration-da-vinci-anatom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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