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후 Dec 05. 2022

스타트업씬은 사실 힙합씬과 많이 닮았어요

컨설턴트 출신 벤처캐피탈리스트 오인석의 이야기

링크드인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이 있다. 그는 오랜 기간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몇 년 전 벤처캐피탈로 자리를 옮겼다. 온라인으로 주로 소통하다가 그와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앞에서 내 얘기를 술술 풀어놓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컨설팅펌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너무 내 속내만 드러낸 것이 억울해 기습적으로 제안을 했다.


"인터뷰를 해보는 게 어때요?"


예정에 없던 제안에 예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아직 뭔가 이뤄낸 것도 없는데요?"


평소 자주 접하는 반응이기에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천편일률적인 성공한 벤처캐피탈리스트 얘기가 궁금했으면 종로서점에 갔을 거예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제가 글로 옮기고 싶은 것은 차장님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인생의 굴곡과 삶 속의 크고 작은 생채기예요."


나흘 후 그로부터 회신이 왔다.


"작가님, 이전에 제안 주셨던 인터뷰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Q.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TKG벤처스 투자운용팀에서 수석심사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오인석이라고 합니다. 벤처캐피탈로 업종을 전환하여 VC업계에 진입한지 이제 2년이 다되가네요,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처음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커리어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준 곳을 유안타인베스트먼트입니다. 약 1년 6개월 정도 근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최근에 신생 투자사의 창립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 오인석, ©유안타인베스트먼트


Q. 중국어가 유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사유가 있나요?

사실 창피한 얘기일 수 있는데 국내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당시는 고등학교를 성적순으로 정해져 모두가 선망하는 상위권은커녕, 중하위권의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던 성적이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죠.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그런 고민이 겹겹이 쌓여 책상에 앉아있기 힘들어 거실에 나왔는데 TV에서 세계 명문대학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세계의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SBS에서 방영하고 있었어요. 미국 하버드대학부터 MIT·스탠퍼드, 중국의 베이징·칭화대, 일본 도쿄·와세다·게이오대 등 명문대는 모두 나왔어요. 


©SBS특별기획 ‘세계의 명문대학’


그중 중국의 한 명문대의 기숙사가 오후 11시 30분에 소등하자 학생들이 그나마 불빛이 들어오는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불편한 환경에서도 학생으로서 저렇게 자신의 본분에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 나은 환경에서 스스로 집중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부끄러웠죠. 그리고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옆에 앉아있던 아버지에게 말했죠.


“아빠, 나 중국 갈래. 북경대 같은 명문대는 못가더라도 중국어 하나는 배워올게.”


평소 같으면 아무런 대책 없이 중국을 가겠다는 저를 훈계할 만도 하신데 당시 저의 비장함이 극명하게 전달되었는지 부모님은 상의를 하신 후 중국유학을 허락하셨어요.


Q. 그래서 오랜 기간 동경했던 북경대에 갔나요?

중국에 오는 많은 유학생들의 목적은 사실 별반 다르지 않아요. 바로 북경대 아니면 칭화대에 진학하는 것이죠. 중국에서 3년간 하숙하며 준비한 북경대 입학 시험을 3개월 남겨두고 학업에 더욱더 정진하기 위해 특단의 조처를 했어요. 바로 잠을 최대한 줄여서 죽지 않을 만큼만 자는 거죠. 이를 위해 침대를 아예 방에서 치웠어요. 그렇게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책상에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으려고 노력했죠. 그 결과, 꿈에 그리던 북경대에 가까스로 진학할 수 있었어요.


©북경대학교


그렇게 바라던 북경대에 진학했지만 막상 정규수업을 따라가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입학 후 보상심리 때문인지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당시의 상황과 심정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자칫하면 퇴학을 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학점이 안 좋았어요. 이러한 상황도 모르고 그저 아들이 북경대 다닌다고 주위에 자랑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그렇게 다시 학업에 매진한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비록 북경대에서 수업을 따라가느라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시간을 내 중국 내 약 30개의 도시를 여행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주로 혼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길을 떠날 때가 많았어요. 아마 티베트 빼고 중국의 대부분의 도시는 다 가본 것 같아요. 아마 제 생애 다시 그렇게 홀연히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겠죠.


Q. 전역 후 자영업을 하셨는데 어떤 사업이었어요?

사실 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은 없었어요. 당시 저는 전역 후 아직 취업 전이었는데 마침 증권사와 반도체회사에 다니던 친구들과 만난 것이 화근(^^;)이었죠. 마침 두 친구 모두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밤샘 토론의 결론은 우리가 금수저가 아닌 이상 결국 창업 아니면 취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논의가 지속되어 단기 프로젝트로 요식업을 잠시 해보면 어떠냐는 얘기까지 나왔어요. 사실 그때까지 친구들이 회사 일에 지친 나머지 그냥 불평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어요. 며칠 후 취업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인석아, 나 오늘 퇴사한다고 회사에 얘기했다. 우리 진짜 장사 한번 해보는 거지?”


남들은 입사하지 못해 안달인 대기업을 퇴사하고 하루라도 빨리 장사를 시작하자는 친구를 보니 취업사이트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죠.


“메뉴는 정했어?”


“응, 칵테일이야.”


당시 친구의 직장이 여의도였는데 그곳이 익숙했는지 여의도로 장사터가 정해졌어요. 그리고 시장조사를 해보니 여의도 노점상들이 취급하는 메뉴 중 유일하게 없는 것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칵테일이었죠. 저희가 준비한 노상 칵테일바는 앉을 테이블과 의자도 없이 무조건 테이크아웃만 제공하는 초라한 노점상이었죠. 홍보라고는 전단지를 돌린 게 다인데 어느 날부터 찾아주시는 손님이 한두 명씩 늘더니 나중에는 급기야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점차 재방문해주시는 분들이 늘더니 나중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었죠. 심지어 어떤 분들은 여의도 사무실에서 야근하시다가 잠깐 나오셔서 칵테일을 사서 가시기도 했어요.


당시 직접 제작한 전단지


공교롭게도 그때 가장 잘 팔렸던 칵테일이 모히토였어요. 제가 모히토를 제조하기 앞서 여러 바를 찾아다니며 모히토를 마셔봤어요. 그런데 대부분 이것저것 섞은 후 액상을 타서 그냥 외관만 적당히 모히토를 흉내 내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어설프게 하기보다는 아예 쿠바의 정통 모히토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라임나무와 애플민트를 손수 재배해서 그 재료로 모히토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칵테일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고 매출도 제법 나왔지만, 처음부터 프로젝트성 요식업이었기에 시작한 지 4개월 후 사업을 종료하고 다시 직장인과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갔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칵테일 가게를 정식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모히토만큼은 제가 가장 맛나게 탈 수 있어요.


Q. 이노션에서 근무하셨는데 당시 담당하셨던 업무는 무엇인가요?

당시 주된 저의 업무는 주로 상품전략, 마케팅전략, 상품전략 등 요즘 흔히 쓰는 Go-to-market 전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투마켓(Go-to-Market Strategy, GTM) 전략은 신규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단계를 세분화한 전술적 프레임워크라고 볼 수 있어요. 신제품/서비스 출시 또는 브랜드 재출시 등 거의 모든 기업에서 GTM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심지어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때도 활용할 수 있죠. 현대차를 예로 들면, 중국에서 새로운 차를 출시한다면 중국 현지에 가서 사람들의 성향과 니즈를 조사하고 이를 근거로 잠재적인 구매자가 원하는 차는 어떠한 특성을 가졌는지 분석하는 역할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뽑으라고 한다면 현대자동차의 모터스포츠예요. 보통 모터스포츠를 흔히 레이싱 경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서킷 레이스로는 그 유명한 오픈휠 레이스의 최고봉 포뮬러 원과 내구레이스의 최고봉 르망 24시가 있으며, 서킷 외 레이스의 정점에는 전 세계 랠리의 총괄판인 월드 랠리 챔피언십이 있어요.



당시 현대차의 이미지가 자동차의 성능보다는 값비싼 옵션으로 소비자를 우롱한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있었어요. 사실 현대차 입장에서는 그런 세간의 평가가 억울할 수 있는 게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서 R&D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결과, 독일 BMW사의 퍼포먼스 라인업 M시리즈와 같은 N브랜드를 출시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걸로는 대중의 평가를 바꾸기에는 부족해서 모터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게 되었어요. 해당 안의 실효성에 대해 제가 컨설팅하게 되었는데 결론은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꼭 필요한 마일스톤이라는 것이었죠. 


이를 두고 기업 내 갑론을박이 있었어요. 회사 예산 엄한데 쓰는 거 아니라고 말하는 임직원도 있었고 브랜딩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다행히도 최종의사결정권자가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어요. 덕분에 모터스포츠 중 가장 험하고 드라이버와 차를 극한으로 내몰기로 유명한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 현대차가 참가하게 되었죠.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 현대차가 꾸준히 우수한 성과를 거두자 현대차의 기술력에 대한 국내외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컨설턴트로서 기업이 올바른 의사결정에 기여한 것 같아 제가 레이스를 우승한 것만큼이나 기뻤죠.


Q. 이노션에서 근무 당시 업무만족도가 높았는데 노무라종합연구소로 옮기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노션에서 나름 인정받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다수 진행했지만, 컨설팅을 더욱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그리고 이노션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 다수가 마케팅전략 관련 컨설팅였다면 조금 더 회사의 경영 전반에 의사결정에 깊게 관여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략컨설팅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하는 컨설팅펌을 고민하던 찰나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컨설팅펌 근무 당시 중동 출장 중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일본 노무라증권산하의 컨설팅펌으로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자동차 산업에서 신망이 두터운 회사에요.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터라 수준 높은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현대차의 아세안 진출전략 프로젝트였어요. 당시 현대차가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로서 미국, 중국 그리고 유럽까지 진출하였지만 동남아 시장은 아직 진출 전이었어요. 그래서 이와 관련한 컨설팅 의뢰를 노무라종합연구소에 의뢰하였는데 제가 현대차 프로젝트 경험이 아무래도 많다 보니 담당하게 되었죠.


동남아 자동차 시장을 조사하였는데 알수록 매우 흥미로운 점들이 많았어요. 인구 2억 7,900만 명이 넘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죠. 그런데 소수의 기업들이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었어요. 아세안 자동차 시장의 98%를 일본 완성차 메이커들이 점유하고 있었죠. 참고로, 당시 일본 내수시장 내 일본차들의 점유율이 92%였어요. 시장조사를 하고 매크로적인 경제, 외국인 투자정책, 자동차 산업 육성정책 등 다양한 트렌드를 다각도에서 분석한 결과, 아세안 시장은 현대차가 절대적으로 놓칠수 없는 시장이라는 것이 결론이었어요.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생산공장, ©현대자동차


하지만 모든 클라이언트가 컨설팅펌의 보고서를 수용하는 것은 아니기에 최종의사결정권자의 의사결정을 숨죽여 지켜봤죠. 아세안 시장으로의 진출을 늦추거나 전면 취소하면 지난 모든 노력과 시간은 수포가 되겠지만 그 또한 컨설턴트의 숙명이니 받아들여야 했어요. 그런데 최종의사결정권자가 해당 안에 대해 최종결제를 하였고 아세안 시장 진출이 가시화되었어요. 그 결과, 2022년 초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생산 공장 준공식을 개최하였죠. 공장은 77만 7000m(제곱미터) 규모 부지에 건설되는데 연내 15만 대, 향후 25만 대 규모의 연간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라고 해요. 현대차가 인도네시아를 아세안 시장을 위한 전략 차종 육성부터 생산, 판매까지 가능한 전초기지로 삼은 과정을 보면 숱한 야근과 주말근무가 헛되지 않은 것 같아 현대차 계열사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큰 뿌듯함을 느꼈어요.


Q. 컨설팅 업무에 대한 애착이 무척 컸는데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신 계기가 있었나요?

무엇보다 컨설턴트가 저의 천직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컨설턴트로서 운이 좋게 현대차부터 삼성전자, LG전자, SK 등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맞아 신사업, 시장진출전략(Go-to-market), 실적개선전략(Turnaround), 성장전략(Growth) 등 웬만한 프로젝트를 참여하고 이끌어봤어요. 그렇게 다양한 컨설팅을 해보니 이제는 새로운 산업과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점차 커졌죠. 마침 컨설팅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었어요. 현대차의 아세안 시장진출과 같은 경영전략 컨설팅은 줄고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등 운영 효율화 컨설팅 의뢰가 점차 많아졌죠.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 때문에 이제는 컨설팅을 충분히 한 것 같아 전직을 결심하게 되었죠. 주위의 지인들이 업을 바꾸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지 종종 물어보시는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중국에서 홀로 지내서 그런지 변화에 대한 거부감 혹은 두려움이 딱히 없었어요.


Q. 많은 직업 중 왜 벤처캐피탈로 업을 전환하였나요?

컨설팅을 그만두기로 한 후 이제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막막했지만 창업하기에는 내세울 만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딱히 없었어요. 그렇다고 MBA와 석사를 준비하자니 평생 할 공부는 중국에서 다한 것 같아서 학업에 대한 관심이 적었어요. 남은 선택지는 결국 월급쟁이였죠. 



지혜를 구하고자 컨설팅업계에서 벤처캐피탈로 옮기신 선배들을 찾아 뵈었어요. 벤처캐피탈에서 하시는 업무를 설명해주시는데 이미 표정과 톤에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남들과의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각자의 포트폴리오에 집중하고 높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벤처캐피탈업에 오면 더욱 분주하게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어요. 제가 내성적이긴 하나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과정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동기부여도 되는 유형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어요. 거기다가 제가 확신을 갖고 투자한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저도 덩달아 잘 되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Q. 이전의 컨설팅 경력이 벤처캐피탈 심사역을 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단순 비교하면 컨설턴트와 벤처캐피탈 심사역은 무척 다를 것 같지만 의외로 상당히 닮은 구석이 많아요. 컨설턴트도 벤처캐피탈 심사역도 항상 새로운 산업과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학습을 요하고 구두로든 문서로든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같아요.



이러한 경험을 살려 최근 스타트업의 IR 덱(투자유치를 위한 회사소개서) 관련하여 도움을 종종 드리고 있어요. 제가 투자한 포트폴리오사는 물론 투자하지 않은 스타트업들도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시간을 내어 돕고 있어요. 때론, 먼저 제가 제안을 드리기도 해요. 이전에 한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한 스타트업의 IR 발표를 들었는데 뭔가 아쉬웠어요. 발표하시는 대표님을 보니 눈에서 불꽃이 튀는데 그에 반해 IR자료가 너무나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어요. 심지어 발표자인 창업자 본인도 답답함을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연락했죠.


“대표님, 발표 잘 봤습니다. 초면에 죄송한데 IR 덱을 많이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심사역이 투자 제안도 아닌 IR 덱을 수정하자는 제안을 하자 창업자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지만 거듭된 제안에 속는 셈 치고 저에게 맡겨 주셨어요. 물론 제가 대가로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니 더 의심하셨을 수 있어요. 그분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50장의 IR덱을 새로 만들어서 보내드렸죠. 시간이 지난 후 창업자에게서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요.


“심사역님, 최근 스타트업 시장 상황이 예전같지 않아 투자유치가 쉽지 않은데 도와주신 덕분에 Pre A라운드에서 목표로 했던 50억을 성공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어요. 너무 감사해요. 저희 팀원들도 어떻게 생면부지의 남이 자기 일처럼 헌신적일 수 있냐고 거듭 놀라워했어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창업자분은 투자유치를 저의 공으로 돌리셨지만 사실 원래 사업모델이 잠재력은 물론이고 매력 있는데 이전 IR 덱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담아내지 못했던 것이 커요. 저는 그저 창업자의 시선이 아닌 외부 특히 투자자의 입장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보완한 것이 다예요.


Q.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투자철학이 있나요?

제가 벤처캐피탈에 오면서 생긴 저만의 투자철학이자 신념이 하나 있어요.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상대적 강팀을 탑독(Topdog)이라고 많이 표현하죠? 그 반대의 표현은 언더독(Underdog)이에요. 저는 모두가 인지하고 인정하는 탑독(Topdog)의 그늘에 가려진 언더독(Underdog)을 유심히 관찰하고 지켜보려고 노력해요. 어쩌면 저 역시도 벤처캐피탈이라는 곳으로 옮겨와 늦게 심사역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언더독이나 다름없어요.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스타트업에 동질감을 느끼고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이 외에 투자를 검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창업자가 시장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ㆍ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와 자사가 보유한 기술/상품/서비스 등이 적합한 솔루션(solutionㆍ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에요. 추가로 스타트업이 정의한 페인포인트와 솔루션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봐요. 즉, 스타트업이 페인포인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였고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해결책에 대한 접근이 논리적이고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심사역은 물론 시장을 설득할 수 있다고 봐요.


Q. 벤처캐피탈로 옮긴 후 첫 번째로 투자한 스타트업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첫 번째로 투자한 스타트업은 언더독이지만 잠재력이 무척 큰 곳이에요. 저는 이 스타트업이 업력과 시장 점유율에서 앞선 경쟁사들을 하나둘 차근차근 따라잡아 결국 최종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명품전문 이커머스 사업을 전개하는 이 스타트업은 ‘젠테’입니다.


©젠테스토어


기존의 온라인 명품 플랫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점이 있어요. 핵심만 간단히 설명하면, 경쟁사 대비 가장 저렴하고, 가품 유통이 원천 차단되며, 트렌디한 상품이 가장 많아요. 유럽은 부티크샵이 명품 유통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죠. 부티크가 전체 명품 유통의 65~70%를 취급하는데 이 중 80%가 부티크가 가진 오프라인 샵에서 팔려요. 젠테는 부티크 직계약을 통해 제품을 직접 소싱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는 명품 플랫폼이에요. 


현재 온라인 명품 커머스 시장은 마케팅으로 인한 출혈경쟁이 심한데 후발주자인 젠테는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아요. 거의 입소문으로만 10만 회원에 가까워지고 있죠. 덕분에 젠테는 올해 손익분기점 달성은 물론 매출액 500억 원을 목표로 순항 중이에요. 젠테는 투자금 없이 성장하다가 올해 4월 시리즈A 100억원을 유치하였어요. 첫 투자유치 후, 창업자와 앞으로 사업의 스케일업에 대해 꾸준히 논의하고 있어요. 이런 스타트업이 정말 옥석이 아닐까 싶어요. 


Q.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같은 대형 투자사에서 신생 투자사 TKG벤처스로 이직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생 투자사의 초기멤버로서, 새로운 펀드를 결성하고, 투자심사 프로세스를 공동으로 수립하고, 조합관리를 배우고, 회사의 양적이고 질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이런 도전을 통해 제가 가진 잠재력을 발휘하고, 투자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사실 이런 마음이 있더라도 막상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워낙 간절했는지 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져 한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을 하고자 TKG벤처스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Q: 최근 VC시장이 주춤한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최근 투자유치에 실패하거나, 기업가치 평가 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이 점차 늘고 있어요. 사실 이런 기조가 단기간 내 변하기는 쉽지 않아 보여요. 그런데도 벤처캐피탈은 소진해야 하는 대기자금이 많이 쌓여있는 만큼 투자는 결국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다만, 투자 시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요.



흔히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는데 투자금으로 속도감 있게 성장하는 스타트업과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자생력을 갖추고 내실 있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으로 나눠지죠. 저는 결국 후자의 기업들이 주목받는 시기가 도래한 것 같아요.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묵묵하게 기술과 서비스에 확신을 갖고 끈질기게 생존해온 창업자들은 역설적으로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봐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벤처캐피탈에서 2년 남짓 근무하면서 느낀 바가 있는데, 스타트업씬은 어쩌면 힙합씬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힙합 음악을 즐겨듣는데 힙합씬에서는 나이, 성별,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 다 자기 목소리를 내죠. 그리고 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계급장을 떼고 실력으로 승부하기도 해요. 그 덕분인지 실력과 개성이 넘치는 신인 래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도 힙합씬이 계속 진화하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또한,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을 가사와 멜로디로 분출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데 스타트업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이와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경험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기술과 제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회적 문제점을 풀어나가죠.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스타트업씬에서 벤처캐피탈은 항상 새로운 문물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젊고 역량 있는 창업가가 상상하는 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익숙하지 않은 시각과 문화를 가진 스타트업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 내면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동기화를 시도하는 심사역이 되겠습니다.

이전 05화 상상을 실현하고 세상을 바꿀 스타트업을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