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의 수목원처럼 정적이 가득한 수컷들의 점심을 거부하듯 같이 식사하던 롯데벤처스의 안준영 심사역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제가 아는 벤처캐피탈 심사역 중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이 있는데 소개해드릴까요?"
이상하게 요즘 내게 자신의 지인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하는 분들이 참 많다. 아무래도 내가 많이 외로워 보여 그런 듯하다. 평소 남 얘기를 잘 하지 않는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삼천리인베스트먼트에서 근무하는 심사역으로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 과정 1기 동기라고 했다.
나의 선입견 때문인지 쌀만 팔 것 같은 농협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신기술금융회사를 설립한 것조차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안준영 심사역이 내 신원을 확인해준 덕분에 며칠 후 그와 연락이 닿았고 곧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그와 만날 수 있었다.
그와 두 시간 정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자신만의 뚜렷한 투자 가치관과 자신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오랜 기간 고민한 흔적이 그가 던진 문장들에서 짙게 묻어났다.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으로 옮기고 이후 창업하며 겪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다시 벤처캐피탈에서 투자하는 토대로 삼았다. 그의 지난 행보에서 삶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잠시 나가자”며 건물 밖으로 나와 적적한 여의도 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투자에 대한 자신의 오랜 고민의 일부를 내게 나눠주었다.
"많은 창업가들이 단순히 벤처캐피탈 심사역들과 관계가 좋으면 투자유치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투자 결정은 공정한 내부심의를 거쳐 결정되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만으로 투자가 집행될 수 없어요. 그래서 창업가들이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을 사업에 대해 더욱 고민하는 데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믿고 상상하는 미래를 실현해줄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게 저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믿어요."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도시가스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삼천리그룹이 출자하여 설립된 삼천리인베스트먼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철수라고 합니다. 이제 막 8년 차에 접어든 투자심사역 혹은 벤처캐피탈리스트입니다. 스타트업 창업 경험을 살려 벤처캐피탈계로 넘어와 현재는 스타트업 투자하는 심사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삼천리인베스트먼트 김철수 상무
Q.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주위 지인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학창시절 저를 표현하면 ‘성적이 좋은 반항아’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초등학교 때는 정말 말썽꾸러기였어요. 어머님이 종종 학교에 불려가셨을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졸업 날 중학교 가서는 다신 학교 안 불려갔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으로 인해 중학교에서는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업에만 충실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에 고분고분한 모범생으로 산다는 게 절대 쉽지 않더라고요.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듯했어요. 그렇게 억눌러왔던 저항정신이 고등학교에서 다시 거침없이 솟구치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3년 내내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였는데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학교의 강압적인 통제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선 반항도 했고요. 그런 저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셨던 선생님들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저를 아껴주시고 지지해주셨던 선생님들도 있었죠. 돌이켜보면 1학년 당시 담임 박동재 선생님과 국사 이택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저의 고등학교 시절은 더욱 거칠고 불안했을 거예요.
Q. 대학교 재학 시절 교내활동을 열성적으로 하셨는데 동기가 궁금합니다.
교내 활동을 열성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함께했던 선배와 친구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뱅크샐러드 김태훈 대표는 친구이자 한 학번 선배였고, 사회적 기업 미더 김종훈 대표는 대학 동기였으며, 집꾸미기 창업자 노대영 대표는 직속 후배였어요. 그 밖에도 배울 점이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요. 종종 학교 근처 친구나 선배의 자취방에 모여 앉아 술잔을 부딪치며 다양한 사회 현안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어요.
‘대학교 4년은 젊은 시절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해방의 시간’
고등학교는 사실 교육과정이라는 틀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면 대학 생활은 처음으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는 소중한 시기였어요. 그 ‘자유’를 잘 활용하여 저를 성장시키는 건 온전히 제 몫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대학 시절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1학년 여름방학 때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겨울방학 때는 대학교 친구와 함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반을 성공했어요.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산맥 베이스캠프에서
그리고 당시 동기들은 대부분 복수전공을 많이 했는데, 저는 대신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여러 수업을 청강하였어요. 경영학 전공수업은 물론이고 법학(민법총칙, 형법, 법과 현대사회), 정치학 개론, 여성학, 한문학, 한국철학, 서양철학, 신문방송학(커뮤니케이션 이론) 등 다양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소개로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에서 학점교류로 Pre-MBA 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조건이나 제약 없이 뭔가를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시기가 대학생 이후로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당시 이런 다양한 경험과 배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에서 Pre-MBA 과정 수료
Q. 입사 합격을 통보한 유수의 기업들 중 현대제철에 입사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곳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였나요?
LG생활건강 마케팅 세미나를 통해 인턴을 하고 있을 당시 현대제철에서 합격통보를 받았어요. 당시 LG생활건강 페리오팀에서 너무 재밌게 브랜드 업무를 경험하고 있어서 고민이 되었어요. 제가 입사 결정을 하지 못하자 어느 날 현대제철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어요.
“김철수 지원자님, 아직 고민 중이세요? 올해 현대제철에서 신입사원을 40명을 선발했는데 김철수 지원자님만 유일하게 입사 결정을 안 하셨어요.”
당시 현대제철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로 안정적이고 직원 복지와 처우가 매우 높은 수준이었어요. 장고 끝에, 현대제철로 입사하기로 결심했죠. 당시 많은 지인들이 제가 마케팅 관련 경력을 쌓다가 구매부서로 입사한 걸 보고 의아해했어요.
제가 마케팅이 아닌 구매부서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해요. 현대제철의 핵심은 원가 관리이고 이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부서가 바로 구매본부라고 확신했어요. 철강재는 판매가격 차별력이 거의 없고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요. 그래서 원자재 구매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수익성이 좌지우지되기에 무척 중요한 업무라고 볼 수 있죠.
현대제철,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제철 입사 후 스크랩 구매팀에서 스크랩 구매업무를 담당하였어요. 구매본부에서 관리하는 핵심지표 중 하나가 바로 원가절감이예요. 덕분에 원가분석하는 법도 배우고 단순 예산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닌 '전략구매'란 개념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어요.
Q. 안정적인 현대제철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체적인 대학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는데 위계질서가 분명한 현대제철에 입사하니 조직 특성상 보수적인 부분이 적응이 쉽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마케팅을 전공으로 공부하던 제겐 철강산업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어요.
사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 믿었는데, 행복하지 않은 저의 모습을 보면서 꽤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과연 행복한 걸까?’
제 나이 29살, 그렇게 두 번째 사춘기를 맞으며 고민이 시작되었죠. 그러던 중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어요.
“철수야,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이 있는데 같이 창업해볼래?”
ⓒ(주)뱅크샐러드
제안을 한 사람은 대학교 선배이자 친구였던 ‘뱅크샐러드’ 김태훈 대표였어요. 사실 김태훈 대표는 졸업 후 바로 창업을 했고, 저는 취업을 택했죠.
“창업?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대학 때 공모전에도 같이 참여하고 무척 신뢰하는 친구였지만 막상 창업에 뛰어들자니 확신할 수 없었어요. 대신 현대제철에 근무하면서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틈틈이 친구 일을 도와주곤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뱅크샐러드(레이니스트팀) 서강대 창업경진대회 대상 수상
Q. 스타트업을 나와 직접 창업을 하였는데 당시 어떠한 상황이었나요?
뱅크샐러드에서 기획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제가 직접 창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점차 커졌어요. 뱅크샐러드의 성장과 함께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직접 창업을 통해 팀을 구성하고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과정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었어요. 당시 모바일 앱 창업이 상당히 많은 주목을 받던 시기여서 다양한 교육 관련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운영했어요. 법학적성시험(LEET), 한국능력검정시험 등 다양한 앱을 개발하였죠.
실제로 창업경진대회에 나가서 수상도 했고요. 나중에 벤처캐피탈 심사역이 되고 나선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팀에 투자하기도 했어요.(웃음)
Global Innovator Festa 2015 아이디어톤 수상
Q. 창업 후 한화인베스트먼트로 옮겼는데 어떠한 일이 있었나요?
사실 여러 교육 앱을 만들고 런칭했지만 속칭 '대박'을 터트리진 못했어요. 그러면서 창업했던 스타트업을 정리하고 쉬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같이 창업했던 친구가 찾아왔어요.
“너 그다음 계획은 있어?”
당시 저는 다른 아이템으로 재창업을 할지, 아니면 다른 스타트업에 합류할지 고민 중이었어요. 제가 뚜렷한 행선지를 답하지 못하자 그 친구가 말했어요.
“너 혹시 벤처캐피탈에서 일해보는 것은 어때?”
그 친구는 저보다 일찍 벤처캐피탈에 입문하였는데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어요. 그래서 저에게 벤처캐피탈을 추천하더라고요. 사실 그때 처음으로 벤처캐피탈의 존재도 알게 됬어요. 이전에는 창업자의 자본금으로만 사업을 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실제로 창업하면서 제가 직장생활을 하며 모았던 돈을 전부 다 썼어요.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 과정 졸업식
고민하던 중 벤처캐피털협회에서 신규인력 양성 과정 1기를 출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벤처 시장이 커지면서 투자심사역들의 수요 또한 늘어나니 벤처캐피탈협회에서 중소기업청 지원을 받아 벤처캐피탈 육성 교육을 진행했어요.
교육 과정에 선발되어 석 달 동안 교육받았는데 예상보다 너무 흥미로웠어요. 교육 과정 막바지엔 인턴 프로그램이 있는데 저는 한화인베스트먼트(現 한화투자증권)에서 인턴 기회를 얻었죠. 이후 정직원으로 전환이 되어 본격적으로 심사역으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친구 덕분에 제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죠. 그 친구는 지금도 벤처캐피탈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프리미어 파트너스에서 플랫폼, IT, 소프트웨어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김호경 수석팀장이에요.
Q. 벤처캐피탈 Pathfinder H에서 스타트업 투자조합 핵심 운영인력으로 활동하였는데 이곳에서 경험은 어땠나요?
한화인베스트먼트가 한화투자증권으로 합병되는 과정에서 이직 기회가 생겨 고민했어요. Pathfinder H 대표님이 예전 한화인베스트먼트 출신이기도 하셨고, 한화인베스트먼트 선배들의 추천 덕분에 경력이 짧은 저였지만 단독으로 투자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주신다고 하셔서 합류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한화인베스트먼트에선 주니어 심사역으로 보조 역할을 주로 했었다면, Pathfinder H에선 심사역으로 단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Pathfinder H
합류하고 보니 실제로 인은식 대표님이 심사역들의 원활한 투자활동을 위한 환경을 잘 조성해 주셔서 유연하고 속도감 있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저 또한 억눌려 있던 투자 욕구를 풀 수 있었고, 심사역으로서 양질의 경험도 축적할 수 있어서 무척 만족도가 높았어요.
Q. Pathfinder H에서 NH벤처투자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두 곳을 비교한다면 무엇이 비슷하고 다를까요?
NH벤처투자는 농협금융지주의 자회사이다보니 농업의 혁신을 위한 투자, 범농협 연계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 등 NH벤처투자만의 철학과 색깔이 있어요. 특히 농민들과 농업의 발전을 위해 농수산식품 분야에 일어나는 사회적·문화적 변화를 선도하는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죠.
물론 농식품분야 뿐만 아니라 AI/빅데이터, 블록체인, 핀테크, ESG, 프롭테크, 헬스 인슈어테크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어요. 결국, 혁신을 추구하는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본질은 여느 벤처캐피탈과 다를 게 없죠.
Q. 자신이 가지고 있는 투자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가 벤처캐피탈에서 근무하며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생각보다 이 업계가 보수적이라는 거예요.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돼요. 외부로부터 자금을 출자받아서 운용하기 때문에 출자자들의 자산을 보호해야 하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벤처캐피탈이라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은 기존의 다른 투자 영역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혁신이 있는 곳에 조금 더 관심을 두고 투자를 집행하려고 노력해요.
저의 투자 기준은 크게 세 가지예요.
첫 번째가 바로 시장의 규모와 성장성입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제가 창업하며 직접 몸소 체험하여서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것 같아요. 사업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시장이 작으면 성장에 제한이 있습니다. 파급효과도 작고요.
두 번째는 사업모델입니다.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결국은 “팔려야” 합니다. 즉, 소비자로부터 구매 의욕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 핵심기술 보유 여부, 차별성, 진입장벽 등이 함께 검토됩니다.
마지막으로 창업가를 봐요. 시장 규모가 크고 사업모델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결국 이걸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어려운 판단영역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이 일천하기도 하고, 짧은 시간 내에 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렇게 삼박자가 다 충족된다면 투자를 하는 편입니다.
Q. 투자했던 스타트업들 중 가장 가파른 성장을 보였던 곳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판단하기에 저는 약간 활자중독 증상이 있는 거 같아요. 평소에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힘들 정도로 끊임없이 뭔가를 계속 보는 편이예요. 그래서 드라마, 영화, 웹툰 등 웬만한 콘텐츠는 대부분 다 봐요. 그러다 보니 콘텐츠 사업에 관심이 컸어요.
어느 날 제가 관심있던 기업이 후속 투자유치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하여 연락처를 확보해서 연락을 드렸어요.
"대표님, 이전에 투자할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 투자라운드에는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러시면 제가 곧 미국 본사로 돌아가는데 출국 전 잠시 시간을 내겠습니다."
덕분에 대표님의 출국 당일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할 수 있었어요. 대표님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다행히도 투자를 받아주셨어요. 그때가 2020년 1월이에요. 이 기업이 바로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일년 후 약 6천억 원에 인수한 타파스미디어예요.
ⓒ타파스미디어
투자하고 한 달 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사태가 심각해졌어요. 이로 인해 언택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연히 컨텐츠 기업들이 급성장을 했고, 타파스미디어도 그 중 하나였어요. 투자 후 1년동안 정말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Q. 투자했던 스타트업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어떤 곳인가요?
Pathfinder H에서 6차 산업화 농식품 펀드로 투자하였던 농업회사법인 우듬지팜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2011년 설립된 우듬지팜은 충청남도 부여에서 3만 평의 대지 중 2만 6,000평의 스마트팜 시설을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이에요.
토마토 재배 스마트팜, ⓒ우듬지팜
우듬지팜은 1차 식품인 토마토를 재배·생산·가공·유통·서비스하는 6차산업의 선두주자로도 유명하죠. 부여군의 특산물인 토마토에 자체 가공 기술을 더해 설탕보다 200~300배 단 스테비아 토마토를 생산하고 있어요. 스테비아는 인체에 무해한 천연 감미료와 같아요. 우듬지팜 농장의 특징은 작물 재배의 모든 조건을 제어해 균일하고 우수한 토마토를 생산하는 스마트팜 시설이라는 점이에요. 온·습도뿐 아니라 산소, 이산화탄소, 양액 등의 농도까지 모두 조절해 최적의 토마토 재배 조건을 갖췄죠.
지난해 475억 매출과 80억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건실한 기업이지만 제가 투자할 당시만 해도 적자 상태였고 비용 이슈로 스마트팜 구축이 중단된 상태였어요. 함께 검토했던 다수의 기관 투자자들이 1차 산업이란 이유로 투자를 망설였지만 저는 당시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서 결성한 6차 산업화 펀드의 목적에 부합하는 회사라 판단했고, 우듬지팜에서 만든 토망고의 상품성을 높게 판단했어요. 토망고는 망고처럼 단 토마토란 의미예요. 일단 한번 맛을 보면 재구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결국 회사는 투자 후 급성장 중이고 현재 계획대로라면 올해 하반기, 혹은 내년 상반기 코스닥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Q. 벤처캐피탈에서 전문투자자를 꿈꾸는 분들에게 커리어 관련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이런 부분의 조언은 매우 조심스러워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각의 경로로 벤처캐피탈에 입문하므로 정답이라고 부를만한 조언이 없기 때문이죠. 당장 저만 해도 애초에 벤터캐피탈리스트가 되겠다고 생각도 못 했었고요.
벤처캐피탈들이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고 공개채용 혹은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지 않기에 내부 추천이 가장 일반적인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친구를 통해 벤처캐피탈이란 업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이외 네트워크는 사실 전무해요.
그런 제가 벤처캐피탈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벤처캐피탈협회에서 운영하는 신규인력 양성과정 수료의 역할이 컸다고 봐요. 아무래도 심사역을 채용하는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도 협회의 정식 교육과정을 마친 지원자들을 조금 더 신뢰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Q. 김철수 팀장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가 벤처캐피탈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결심한 게 있어요.
‘투자 경력 5년 후에 망한 기업이 더 많으면 이 업계를 떠나자.’
이유는 단순했어요. 투자를 업으로 하는 심사역이 투자했는데 망한 기업이 많으면 재능이 없는 거니까요.
다행이 5년이 된 시점에 점검해보니 투자한 스타트업 중 폐업한 스타트업은 극소수이고 생각보다 잘 성장한 회사들이 많아서 5년 더 연장하기로 했어요. 덕분에 블라인드 펀드도 결성하여 대표펀드매니저도 하게 되었고요.
삼천리인베스트먼트 김철수 상무, ⓒ작가 조인후
이제 3년 후면 10년 차인데 그때도 스스로의 역량에 대해 재점검을 할 생각이에요. 이제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요. 시장환경이 바뀐 게 피부로 느껴져요. 고금리 시대에서도 좋은 성과를 이어간다면 시장환경과 무관하게 나름의 성과를 내는 벤처캐피탈리스트라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벤처캐피탈리스트란 일을 지속하게 된다면 앞으로도 제가 기대하고 바라는 미래를 실현해줄 창업가에게 베팅하고 싶어요.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스타트업들의 지지자이자 파트너로서 저의 소임을 다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