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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an 26. 2023

“업계 일등 안 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

국내 벤처캐피탈의 산증인 이수희의 이야기

한해의 마지막 월요일 저녁, 영동시장에 위치한 어느 식당이었다. 내 앞에는 나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단순히 경영서에 나올법한 이론과 개인의 의견이 아닌 실제 사례와 경험을 토대로 대답하는 분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분야의 역사에 대하여 생생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흔히 '산증인'이라고 한다. 


국내 벤처캐피탈에만 20년 넘게 종사하며 산업의 성장에 기여하고 변화를 목격하였으니 이 분야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인자함이 가득한 선한 외모와 일정한 데시벨을 유지하는 차분한 목소리 뒤에는 상대방에게 통렬한 깨달음을 극명하게 전달하는 통찰이 존재했다.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합리적 벤처캐피털리스트 이수희입니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어요. 2000년 5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KB인베스트먼트(주)와 (주)센트럴투자파트너스에서 벤처투자, 펀드운영, 업무감사, 준법감시 및 경영을 맡았어요.


이후 중소기업 경영 전략 컨설팅 업체 희원에프엔씨 대표, 건설 현장을 타깃으로 한 빅데이터 솔루션 전문 스타트업 ‘컨워스’ 공동창업자를 거쳐 2021년 유한책임회사(LLC)형 벤처캐피탈 케이그라운드벤처스에서 파트너로 합류하였죠.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긍정적인 기대감이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생존에도 유리하다고 해요. 그런 면에서 저 역시도 자유와 도전을 좋아하는 낙관주의자예요.



Q. 유년 시절 주위 지인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는 말을 듣곤 했어요. SF소설이나 동화책 읽는 게 취미였고 특별히 운동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학교에서 반장, 회장도 해 봤고, 글도 잘 쓰는 편이었어요. 요즘 저는 수년 전부터 SNS 활동을 Facebook으로 하면서, 평소 생각과 느낀 점들을 시조 형식의 삼행시를 쓰고 있어요. 주위에서 그 이유를 많이 물어봐요.


“삼행시는 간결해요. 글자를 덜어내고, 지우고, 응축하죠. 세 줄로 압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며 영감과 지혜를 구하고 있어요.”



학창 시절로부터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동창들을 만나면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해요.


"수희야, 넌 어떻게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한결같기 때문에 친구들이 저를 기억해주고 보면 반가워하는 거로 생각해요. 누군가는 산처럼 늘 제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물처럼 계속 흘러 바다까지 가는 사람도 있어요. 무수한 세월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낸 고목(古木)처럼 저도 저를 지켰기에 주위에 그늘도 제공하고 평안도 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Q.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 후 법조인 혹은 법학자가 아닌 취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에서 상법을 전공하고 박사과정 중 1996년 3월에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해군사관학교에서 법학교관으로 사관생도들을 3년간 가르쳤고 1999년 6월말에 제대했어요. 복학 후 2000년 2월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어요. 법조인 혹은 법학교수가 되는 코스를 밟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당시 보고 느낀 것 때문에 고민이 컸어요. 법대 선배 중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저는 나라를 구하려면 법률보다는 경제와 경영이 더 시급하다고 느꼈죠. 사실, 저는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고, 고교 시절엔 문과를 간 다음 경영대학에 가서 기업경영자가 되려고 했어요.



그런 시기에, IMF구제금융 시절의 대한민국 경제와 2000년 뉴밀레니엄을 맞이하던 글로벌 시대의 개막을, 그리고, 구세대 기업들의 쇠퇴와 신세대 벤처기업들의 등장, 인터넷혁명의 시작과 닷컴버블을 목격했어요.

저는 중소기업들의 창업과 발전을 통해 국가 경제와 세계질서가 재편되리라 전망했고,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싶었어요.


Q. 프론티어인베스트먼트에서는 어떤 일을 담당하셨나요?

약 1년 7개월 근무했던 프론티어인베스트먼트는 옛날 주택은행 계열 창업투자회사였어요. 처음엔 법무팀장으로 입사했고, 이후 법무팀, 회계팀, 재무팀, 전산팀을 아우르는 경영지원팀의 팀장이 되었어요.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회사법 지식은 벤처캐피털에서 투자업무를 다루는 데 상당히 유용했고, 상경 및 이공계열 출신 젊은 직원들이나 스타트업 임원들에게 유상증자, 무상증자, 상장, 주주총회, 이사회, M&A 등을 설명해 줄 때 요긴하게 쓰였죠.


ⓒKBS


㈜프론티어인베스트먼트는 이후 국민은행 계열의 국민창업투자㈜(현재의 KB인베스트먼트)에 2002년1월초 합병되었고, 2002년 6월말엔 국민기술금융㈜와도 합병하였습니다. 그 당시 두 차례 합병작업 실무도 제가 맡았어요. 당시 인원이 과다하다며 은행측은 구조조정을 요구하였죠. 제가 통합 창투사의 기획팀장이었는데 구조조정 실무도 담당하게 되었죠. 제 나이 만33살 때였고, 그 당시 한국은 IMF 막 졸업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시절이었어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채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 모여 대한민국을 응원할 때, 저는 회사조직 검토와 인원구조조정이라는 숙제를 해야 했지요. 사실 구조조정작업을 하면서 심적 부담이 무척 컸어요. 저도 회사 그만두고 IT기업을 창업할까 하고 고민할 정도였어요.


커리어에 대한 회의감이 들 무렵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하셨는데요. 동원창업투자(현 한국투자파트너스)와 교보증권 사장을 지낸 조승현 대표이사님은, 정말 모범적인 분이셨어요. “생각하는 국민창투, 사랑하는 국민창투”를 만들어가자는 그분의 의지와 가르침이 생각나요. 그 당시 회사광고 디자인 초안을 제가 만들었어요. 그 분 덕에 다시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고 회사에 남아 오랜 기간 일할 수 있었죠.



Q. KB인베스트먼트(전 국민창업투자)에서 근무는 어땠나요?

저는 KB인베스트먼트에서 14년 넘게 근무했어요. 기획팀장, 감사실장, 리스크관리팀장, 준법감시인 등 역할을 약 8년 가까이 수행하였고, 이어서 약 7년은 벤처투자본부에서 투자심사 업무를 하였죠. 정규 업무뿐 아니라, 회사 경영혁신을 위한 기획업무, 전산시스템 구축, 업무 프로세스 고도화, 매뉴얼 마련 등 여러 TFT에 단골로 참여했고, 덕분에 창투사 업무 전반에 관해 두루 알 수 있었죠. 그리고, 여러 벤처조합의 기획, 결성, 사후관리, 청산 등 업무도 관여하였어요.


ⓒKB인베스트먼트


어느 날은 경영진이 저를 부르더니 말씀하셨죠.


“당신만큼 회사와 이 업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회사의 방향을 잡아 주는 등대지기 역할을 해주시오.”


그렇게 2003년 1월 벤처캐피탈 업계 첫번째 준법감시인으로 임명되어 약 6년 반 정도 맡았어요. 투자본부장 결재 후 사장님이나 부사장님께 올라갈 결재 문서는 반드시 준법감시인의 확인이 필요했어요. 승진도 승진이지만 커리어 초기에 상당한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었죠. 저는 사업설명회, 투자 및 회수 심의, 계약체결, 조합결성 및 분배 계획에 관한 모든 안건에 관하여 매일매일 준법감시인으로서 꼼꼼히 체크하였고, 심사역과 심사 및 사후관리상 의견을 수시로 나누면서 조언자 역할을 했어요. 그 덕분에 일년내내 쉴 틈이 없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제반산업과 기업들에 관하여 동료 심사역들로부터 배우면서 폭넓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Q. 법무팀장, 준법감시인 등 법률 관련된 업무를 하시다가 심사역으로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상황적 변화가 계기였어요. 2008년에 국민은행 그룹이 KB금융지주 체제로 바뀌었어요. 대규모 PEF도 결성하고 외국 벤처캐피탈와의 투자협력, 외국기업에의 투자 등이 늘어났어요. 한편 그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기업들이 다소 힘든 시기를 겪었고, 포트폴리오기업들 중 회생절차에 돌입하거나 상장 폐지되는 기업도 있어서, 벤처캐피탈도 타격이 컸어요. 그 후, 모회사(KB금융지주)의 요구에 따라 투자 절차상 리스크 평가를 강화하고 정기적인 사후관리가 강화되었어요. 이에 저는 경력직 변호사를 채용하여 후임 준법감시인으로 삼아 KB인베스트먼트의 역량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행히 당시 경영진이 받아주셨죠.


또한, KB인베스트먼트가 ‘신중한 벤처투자’의 모범회사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호황기에 방만하게 따라 들어간 투자는 경기사이클이 반전되었을 때 회수를 장담할 수 없어요. 그것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닷컴버블붕괴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그 예에요. 지나친 낙관과 방심이 낳는 경영적 실패죠. 준법감시인 및 감사실장으로서 제3자적 입장에서 볼 때는 위험하다고 말리는 투자안건을 다른 심사역들이 굳이 밀어붙였다가 나중에 투자업체가 몰락하고 펀드운용성과도 추락하며 회사임직원 모두가 겪었던 충격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어요. 제가 직접 벤처투자부서로 들어가서 좀 더 나은 투자를 해 보이고 싶었죠.


Q. 당시 포트폴리오가 꽤 화려한데 그중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블루홀(지금의 크래프톤)는 어떻게 투자를 진행하게 되었나요?

블루홀 건은 정말 좋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의 기획위원회 멤버로 수년간 친분을 가져온 프리미어파트너스의 김성은 이사로부터 소개를 받은 건이었죠. 원래는 그분 소개로 게임기업 ㈜지노게임즈에 투자를 했었는데, 지노게임즈는 블루홀(현 크래프톤)에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M&A되었고, 그래서 KB인베스트먼트는 자연스럽게 지노게임즈 투자자에서 블루홀 투자자로 바뀌게 되었어요.

지노게임즈 투자할 때, 저는 게임의 흥행 가능성보다도 경영진 면담 시 “이 사람들은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았어요. 회사를 이끌던 박원희 사장의 열정과 김창한 부사장의 기술력이 예사롭지 않았거든요. 그 후 블루홀 계열사로 된 지노게임즈 김창한 부사장은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개발했고, 다들 아시다시피 엄청난 게임 흥행 실적을 기록했죠. 밸브 코퍼레이션에서 운영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발매 플랫폼인 스팀에서 소개된 배틀그라운드 게임이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는데 거의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크래프톤을 성장시킨 영웅이 된 김창한 부사장은 이후 크래프톤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어요.


덕분에 2017년 봄부터 그해 여름까지 벤처캐피탈의 가장 큰 화두는 블루홀이었죠. 당시 벤처캐피탈 업계에선 블루홀에 투자한 벤처캐피탈과 투자하지 못한 벤처캐피탈로 구분될 정도였으니깐요. 투자자로서 확신을 갖고 투자한 기업이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에요.


Q. 2016년에 센트럴투자파트너스 대표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당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투자 및 경영관리, 조합운영 실무, 준법감시 등 여러 분야에 두루 경험을 쌓았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기획위원회 멤버로 종전 11년을 활동하면서 다른 유명 벤처캐피탈 및 협회측으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어요.


ⓒ센트럴투자파트너스


센트럴투자파트너스는 제가 상상했던 K-Culture의 미래를 실현하는 데 잘 기여할 수 있는 회사라고 믿었죠. 그래서 CEO로 와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고 KB인베스트먼트를 떠나 센트럴투자파트너스 대표를 맡게 되었어요. 2016년에 센트럴투자파트너스 대주주와 면접을 진행할 때, 투자 방향 관련 질문을 받고 컨텐츠에 투자하자고 답한적이 있어요.


“벤처캐피탈을 경영한다면 어떤 투자를 왜 하고 싶으세요?”


“앞으로 10년 이내에 한국 영화와 음악 그리고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을 날이 온다고 봐요. 빌보드 차트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작품들을 보게 될 거라고 확신해요. 저는 콘텐츠 산업에 투자하여 이러한 미래를 앞당기고 싶습니다.”


Q. 센트럴투자파트너스에서 운용사 경영을 총괄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투자 건은 어디였나요?

센트럴투자파트너스는 컨텐츠와 소비재 관련 투자를 많이 하던 회사였는데, 그중에서도 ‘오지큐(OGQ)’가 훗날 코스닥에 상장되면 큰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와 함께 펀드 운용을 하던 박영찬 대표펀드매니저와 함께 신철호 대표이사를 만났어요. 사업취지와 시장전망에 공감하여 그날 바로 투자 의향을 밝히고, 2017년 10월에 15억원을 투자했었죠. 그 후로, 오지큐는 2021년에 다수 벤처캐피탈로부터 670억원 규모 투자유치를 했고, 2022년 3월에도 코스닥 상장법인 티사이언티픽으로부터 360억원의 투자유치를 한 결과, 오지큐의 기업가치는 2,800억원 규모로 늘어났어요.


ⓒOGQ


센트럴투자파트너스의 포트폴리오도 아주 다양했는데, 특히 ‘크래프톤(옛 블루홀)’은 제가 KB에서도 투자했던 포트폴리오기업지만, 센트럴에 와 보니 여기서도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제가 CEO로 취임한 후 심사역들을 도와 투자하도록 돕고 회수관리를 한 기업 중에는 ‘크래프톤, 외에도 ‘래몽래인’, ‘오지큐’, ‘아이엔지스토리’, ‘아프리카프릭스’, ‘이노피아테크’, ‘팟빵’, ‘이즈미디어’, ‘에코마이스터’ 등이 있습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투자 관련하여서는 ‘리틀포레스트’, ‘박열’, ‘변산’, ‘도어락’, ‘목격자’, ‘허스토리’, ‘창궐’,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등이 있었고, 농식품 기업으로는 ‘비엔케어’가 있습니다.


Q.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한 이력이 있으신데 창업하는 과정에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은 데 당시 어땠나요?

제가 센트럴투자파트너스를 떠난 후 스타트업 창업을 돕는 컨설팅 기업을 설립했어요. 그러면서, 2020년에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허준 교수에게 제가 사업 방향과 설립 절차를 상담해 주었고, ㈜컨워스를 설립할 때 감사로 참여했어요.

ⓒ컨워스


㈜컨워스는 스마트 건설 및 인프라 자산 관리 데이터플랫폼을 디지털트윈 방식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에요. 설립 당시 내다보았던 전망은 현재도 유효하고 대기업들과 협력하면서 현장에서 구체화하는 중이죠. 설립 이후 제가 감사로 있으면서, 허준 대표를 도와서 외부 투자유치, 인사, 스톡옵션 등 여러 측면에서 조언해 오고 있어요. 신생기업의 초기현안들에 관하여 내부자 입장에서 대응해 본 뜻깊은 경험입니다.

 

Q. 케이그라운드벤처스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2021년 3월이었어요. 판교 쪽에서 Deep Tech 투자를 중점적으로 하는 벤처캐피탈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어요. 케이그라운드벤처스의 조남훈 대표파트너님 역시 벤처캐피탈에 종사하다 보니 종종 업 관련 얘기를 나눴어요. 법률적 자문이나 계약검토 관련하여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투자관에 대해서도 깊게 대화를 나눴죠.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제안을 주셨어요.


“이수희 대표님, 이럴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논현동에 오셔서 저랑 함께 일하시죠.”


직접 제안해주신 것도 감사했고 케이그라운드벤처스가 어떻게 투자하는지 궁금해서 논현동으로 찾아갔어요. 그리고 케이그라운드벤처스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시는데 평소 제가 관심 갖고 좋게 보던 분야에 마침 케이그라운드벤처스가 집중하고 있었어요. 잘 관리하면 충분히 열매라는 과실로 이어질 수 있는 꽃봉오리들이 다수 보였죠. 그래서 저도 힘을 보태기로 결심하고 합류하였어요.


ⓒ케이그라운드


Q. 케이그라운드벤처스는 다른 벤처캐피탈과 어떻게 다른가요?

케이그라운드벤처스의 경영철학은 “우리나라 원천기술의 사업화를 통한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돕는 투자회사가 되자는 것이에요. 연구개발기술인력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원천기술이라는 사업적 성과로 이어지고 기업밸류 상승과 IPO/M&A등을 통해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는 성공사례들이 만들어지도록 돕는 투자를 하고자 해요.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 스타일의 투자가 가능한데, 한 가지는 통상적인 지분인수형 투자이고, 다른 한 가지는 특허에 관한 투자죠. 향후로는 후자, 즉 특허 등록 후 기술이전 방식(매매 또는 라이선스 계약)으로 수입창출을 하는 것이 점점 더 큰 수익모델로 주목받게 될 거예요. 그런데, 이를 위한 역량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곳은 연구개발특구라고 할 수 있죠. 전국에 여러 강소특구들이 있지만 서울 홍릉의 강소특구는 그중에서도 모범으로 꼽히고 있어요. 그 이유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려대, 경희대 등이 여기 포함되어 연구능력, 특허수준, 사업화 가능성 및 창업의지가 우수하기 때문이에요.


케이그라운드벤처스는 홍릉펀드를 운용 중이며, 이 지역 기술 관련 투자를 여러 건 실행함은 물론, 창업생태계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방의 강소특구 쪽 투자도 늘려갈 계획이에요.


ⓒ케이그라운드


Q. 자신이 가지고 있는 투자 가치관 혹은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가 가진 투자판단의 기준은 “첫째, 사업아이템은 인간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인가, 둘째, 비즈니스모델은 수익자 비용부담의 원칙에 맞게 설계되었는가” 여부입니다.


종전의 생활보다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수고를 덜어주거나 생산을 도와주는 쓸모 있는 도구에 해당하는 제품과 서비스라야 투자가치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소비자가 수익자가 되어 대가를 지불하는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어야만 그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고 믿어요.



Q. 앞으로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 혹은 분야가 있나요?

저는 로봇, 의료기기, 인공지능 분야와 해당 스타트업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장차 병원의 기구와 시설이 더욱 고도화되고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로봇과 인공지능을 통해 대체될 것이라고 봐요. 또한 병원이라는 공간뿐 아니라, 평상시에 집이나 자동차 공간에서도 개인의 건강관리와 질병예후진단 및 조기대응과 치료를 돕는 각종 헬스케어 전기·전자기구와 SW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큰 시장을 만들어갈 것이에요. 점차 출산율은 하락하고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면서 '초고령사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IT 강국이고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잘 보급된 우리나라가 이 방향으로 세계최강 모범국가가 될 것으로 믿어요.


케이그라운드벤처스의 투자기업 중에는 엔도로보틱스, 브레인유, 메디케어텍, 티아이, 크리모 등 의료기기 및 디지털테라피 관련한 기업들이 있는데, 장차 크게 될 기업들로 잠재력이 커요. 청년 인구감소와 노령화 사회 및 남북통일까지 전망하면 의료서비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해질 것은 분명해요. 이 문제는 의료기기와 IT 시스템의 발전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벤처캐피탈에 20년 가까이 활동하며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2000년 입사 이래 벤처캐피탈 업무상 가장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은 KB인베스트먼트에서 경영실적과 관련하여 일부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을 권하며 구조조정을 하던 시절이에요. 모든 투자심사역의 투자가 모두 성공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실적이 저조한 시기가 있게 마련인데, 여러 사람 간에 단기적 실적 비교를 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투자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합쳐 베테랑을 키워야 할 대형창투사인 KB가 그런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데 대해 실망하였죠.



벤처불황기로 인식되는 2022년도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증권사들도 주식시장위축 때문에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을 정도입니다만, 벤처캐피탈도 이번 겨울엔 심사역들의 실적 비교를 하고 인사평가를 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2008년~2009년을 겪고 그 이후 수년간의 호황 성장세를 겪어 본 바로는 이 시절 또한 금방 지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벤처캐피탈의 주주와 경영진이 투자심사역들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물론 심사역들 입장에서도 단기적 성과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 직장에서 좀 더 오래 경험을 쌓고 실적을 만들어가기를 권해요.


Q. 벤처캐피탈에 20년 가까이 활동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보람의 순간이라면, 센트럴투자파트너스 대표이사가 되었던 때를 첫손에 꼽아요. 프론티어인베스트먼트 시절 포함 KB인베스트먼트에서 약 16년을 일한 후 다른 벤처캐피탈의 CEO 지위에 올랐고, 투자와 경영관리의 권한과 책임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Q. 벤처캐피탈에서 전문투자자를 꿈꾸는 분들에게 커리어 관련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예전에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Facebook에 장문의 글을 썼던 적이 있어요. 많은 분이 공감하며 댓글을 남겨주셔서 당시 화제가 되었는데 벤처캐피탈 업계 후배들에게는 그때 썼던 글을 기반으로 평소 조언을 해줘요. 핵심 키워드를 요약해 보면 이러합니다.


1.  -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진보된 미래를 꿈꾸며, 나 하나보다는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어야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자격이 있다.

2.  - 본인이 돈이 많든지, 다른 사람이 돈을 맡길 만큼 신뢰를 얻든지, 둘 중 하나는 가져야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될 수 있다.

3.  -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 경험과 언행을 통하여 멋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4.  - 벤처캐피털리스트는 타인과 협업할 수 있는 업무능력을 가져야 한다.

5. - '대박'은 남다른 '깡'을 발휘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6.  - 찬성과 반대, 어떤 입장에 서든지 간에 모두가 상대방을 위하는 진심과 정에서 출발하여 표현되게 하는 것이 회사조직을 위해 필수적이다.

7.  -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개별 기업의 흥망성쇠를 넘어 산업의 성장과 문화의 트렌드 변화를 느끼면서 긴 호흡으로 장기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므로 건강관리가 중요하다.

8.  - 벤처투자에서 투자실적보다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회수실적인데, 사실 그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 한 뒤에 하늘이 내려주시는 복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종래 해 온 분야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직장에서 좀더 확장된 투자업무를 할 계획이에요. 기술사업화와 특허 관련 전문 벤처캐피탈로 자리매김하면서, 투자와 회수 실적측면에서도 성공사례들을 많이 만들어 갈 거예요. 서울과 부산의 사무소 외에 대전과 울산 등 각처에 지점급 사무소를 증설하고, 현지의 유능한 인력들을 선발하고 채용하며 전국적 규모의 벤처캐피탈로 키워가면서, 전국에 산재한 여러 산업 분야 강소기업들과 소통하고 함께 발전하고자 해요.


그다음 하고 싶은 일로는, 벤처비즈니스와 투자철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쓰는 거죠.


어떤 기업은 성공의 길을 갔는데 어떤 기업들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에 관해서, 누군가는 시장과 운을, 또 누군가는 팀을 탓해요. 사실 실패의 핑계는 너무나도 많죠. 성공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상이니, 그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결국 성공에 미달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가 성공일까요? 얼마만큼 올라가야 성공일까요? 저는 이렇게 조언해요.


“일등 안 해도 된다. 동종업계에서 십등 안에만 들어라.”


어려워 보이더라도 사업의 길에 우리와 우리 후배들이 계속 도전하여야 하는 것이고, 그들의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경험과 통찰을 갖고서 충심 어린 조언을 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언젠가 국내 벤처캐피탈의 성장에 기여하고 목격한 경험을 한권의 책으로 정리해볼 계획이에요.


끝으로 한 말씀 보태자면 딸아이가 유치원 졸업 때 받아 온 손톱 크기의 달팽이 한 마리를 7년 동안 키워봤어요. 손바닥보다 더 커진 달팽이를 키우면서, 고객으로부터 받은 출자금도 성실한 투자를 통해 수배부터 수십 배까지 키워보리라 거듭 다짐을 했죠.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의 결실을 볼 때까지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해요. 저는 그런 성실함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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