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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Feb 27. 2023

미국 벤처캐피탈을 퇴사하고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美벤처캐피탈을 경험한 벤처캐피탈리스트 박재성의 이야기

한 심사역을 인터뷰하기 위해 마루180을 방문했다. 이분은 해외 명문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투자은행과 미국 벤처캐피탈을 거쳐 국내 벤처캐피탈로 이직한 보기 드문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보통 국내에서 근무하다가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글로벌로 진출하는 경우는 종종 접했지만, 이처럼 기류를 거스르는 결정을 한 그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런데 정작 심사역을 실제로 만나니 마음이 불편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건 그의 지난 이력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180을 가볍게 넘기는 키에 준수한 외모 거기에 예의가 바르기까지 해서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게임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기캐릭터를 실제로 접하니 다시 한번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마음 한편에 이런 분도 어딘가 허술하거나 미숙한 부분이 있으리란 확신으로 준비한 질문들을 인정사정없이 쏟아냈다.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해외 투자은행, 벤처캐피탈을 거쳐 현재 캡스톤파트너스에서 심사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재성입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고 국내에서는 캡스톤파트너스가 첫 직장이에요. 미국 벤처캐피탈에서 근무 당시 주로 글로벌기업들과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였어요. 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시너지 기회를 찾아 양사를 설득해야 하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주로 다루었어요. 현재 캡스톤파트너스에서 스타트업의 성장과 투자의 회수에 중점을 두는 재무적 투자를 진행하며 초기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어요.


캡스톤파트너스 박재성 팀장


Q. 세계적인 명문대로 꼽히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LA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 유학이 끝나자 귀국했어요. 그 후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대전에 있는 TCIS라고 하는 외국인학교에에 다녔어요.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은 주위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두살 위 누나가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에 재학 중이었어요. 노스웨스턴 대학교가 경제학과 마케팅 쪽에서 명성이 높은 것도 컸지만 시카고와 가까워 누나와 가까이 있으면 적응하는 데 도움이 크게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 캠퍼스 역시 번잡한 도심에서 이삼십분 정도 떨어져 있어서 도시 생활도 즐기면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죠.


ⓒNorthwestern University


Q. 대학 시절, 오랜 역사와 함께 가장 큰 비즈니스 프래터니티로 알려진 Alpha Kappa Psi에서 활동했는데 이곳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였나요?

단순한 친목활동이 아닌 학업과 비즈니스 네트워킹에 중점을 둔 커뮤니티에요. 나중에 취업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컸어요. 다른 프래터니티와 마찬가지로 사교모임이 많지만 비즈니스 프래터니티라는 차별화되는 명목이 있었어요. 프래터니티 소속 친구들은 졸업을 2~3년 앞둔 시점에서 취업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할 정도로 성실하였어요. 컨설턴트를 꿈꾸는 친구들은 케이스 스터디를 주로 하였고 투자은행을 고려하는 친구들은 기업 가치 산정과 엑셀을 다루며 실무에 익숙해지려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였어요.


ⓒALPHA KAPPA PSI


저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였는데 그사이 병역의무가 없는 외국인 친구들은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있었어요. 제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이 친구들은 인턴십과 면접을 거쳐 취업하였거나 이미 합격 후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인턴십과 진로 관련 상담을 요청하였는데 모두 흔쾌히 응해주었죠. 또한, 현업에 종사하는 프래터니티 출신 선배들이 모교를 방문하여 자신의 지난 취업 준비 과정과 입사 후 경험한 직장생활에 대해 설명해주었어요.


Q. 졸업 후, 미국에서 자산 부문에서 2번째로 큰 지주 회사이자 미국 최대 지점 수를 자랑하는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근무하였는데 어떤 업무를 담당하였나요?

뱅크 오브 아메리카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며 신규 증권의 발행을 통해 장기자금을 조달하는 자금의 수요자와 자금의 공급자인 기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주로 하였어요. 자세하게는 채권 발행, 주식 발행, 투자 자문, 인수&합병(M&A) 자문 등 다양한 업무를 하였어요.


ⓒBank of America


주위의 많은 분이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고 말하면 국내 직장과는 상당히 상반된 분위기와 문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어요.


"미국에서 근무하면 정말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경험할 수 있나요?"


물론, 미국의 문화가 워낙 자유분방하고 솔직하고 때로는 거침없이 표현하지만 제가 경험한 투자은행은 달랐어요. 굉장히 수직적이었어요. 저의 직급이 Analyst였고 그 위에 대리급으로 Associate가 있어요. 그리고 그 위로 Vice President, Director, Managing Director가 순차적으로 있어요. 실제로 업무에 있어서는 사실 군대만큼이나 굉장히 수직적이에요. Managing Director가 Director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다시 VP와 Associate에게 하달되는 방식이죠.



그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 워라밸이에요. 대부분 근무 시간만 준수하면 저녁 있는 삶이 보장될 거로 생각하는데 적어도 제가 경험한 투자은행은 달랐어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불규칙했어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24시간 대기했던 적도 있어요. 그때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에 치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실감했죠. 덕분에 짧은 기간 내 많은 것을 배운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어요.


Q. 안정적인 직장을 퇴사하고 벤처캐피탈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로 이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뱅크 오브 아메리카라는 투자은행 근무 시 거래했던 기업들의 시가 총액은 10조부터 100조를 가볍게 넘는 글로벌 기업들이 주를 이뤘어요. 오랜 역사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들의 의사결정과 전략 수립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제가 눈높이를 맞추고 회사의 성장에 조금 더 깊게 개입하는데 한계가 명확했어요.


그래서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초기 스타트업들과 밀접하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투자은행에서 담당했던 투자업무는 지속하고 싶었죠. 마침내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업을 발견했어요. 바로 벤처캐피탈이었죠.



투자은행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동료들은 주로 사모펀드로 많이 진출했는데 저는 초기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목격하고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초기 스타트업이 10명의 인원에서 50명으로 성장하는 데 창업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궁금했고 다시 200명 이상의 규모로 성장할 때 어떠한 업무환경과 기업문화가 필요한지 알고 싶었어요.


Q.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는 어떤 기업인가요?

미국에는 워낙 다양한 글로벌기업이 있는데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발생하는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커요. 하지만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전무하거나 생소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는 고객사의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업무를 위임받아 스타트업 투자와 협업을 전략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업이에요.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


많은 벤처캐피탈 중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를 선택한 이유는 저의 지난 투자은행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인 벤처캐피탈은 2~3년 차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심사역들을 채용할 때 투자은행보다는 컨설팅 배경을 조금 더 선호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구글,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에서 근무하며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는 지원자들을 적합한 영입 대상으로 생각하죠.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는 고객사가 대부분 조 단위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기업이어서 이러한 대규모 기업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할 수 있는 지원자를 원했어요. 마침 투자은행에서 대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저와 회사의 니즈가 서로 잘 맞아떨어졌죠.


Q.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의 스타트업 투자 심사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에 전략적 투자를 의뢰하는 고객사와 6개월 정도 밀착 컨설팅을 통해 고객사의 비전과 사업 방향성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을 거처요. 그 후 어떠한 분야의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논의하고 투자 전략을 도출하죠.


고객사(기업)와 공감대가 형성되면 합작법인(Joint Venture)을 설립하고 펀드를 조성하여 본격적으로 전략적 투자 대상을 찾아 나서요. 합작법인 설립 이후에는 매월 1~2회 정도 정기적인 미팅을 진행하며 점차 투자 대상의 윤곽을 잡아가요. 고객사와 스타트업 간 본격적인 협업 진행은 투자 집행 전에 하기도 하고 투자 완료 후에 하기도 해요.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의 고객사 중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기업이 즐비해요. 세계적인 음향기기 전문 브랜드 Shure와 운동기구 제조사 Life Fitness가 그중 일부에요.


ⓒSHURE, LIFE FITNESS


Q. 투자를 검토한 해외 스타트업 중 인상 깊었던 기업은 없었나요?

2020년 CES에 방문했을 때 무척 흥미로운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투자로 연결되지 못한 곳이 있어요. 2020년 CES 방문 시 발굴하게 된 스타트업이에요. 무척 흥미로운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트업을 발견하였어요. 이스라엘에 위치한 노트래픽(NoTraffic)이라는 테크기업이었어요. 차들이 지나가는 교차로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실제 교통 체증을 실시간 분석이 가능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또한, 교통상황에 따라 신호등의 주기를 바꿔주는 기술까지 개발하였어요.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가 되면 교차로의 신호주기를 차량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과 차량이 적은 새벽 시간에 따라 다르게 운영할 수 있어요.


ⓒNoTraffic


오랜 기간 개선없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기존 교통 신호체계를 혁신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확신했어요. 물론 단순히 스타트업의 기술력이 우수하다고 해서 바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에 의뢰한 고객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사업모델인지 면밀히 검토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논의 과정을 거치죠.


당시 저희의 고객사 중 소방차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기업 피어스(Pierce)가 있었어요.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불이 났을 때 사건 현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 혹은 소방차가 불이 나는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였어요. 아무래도 화재 현장은 초기에 불을 진압하는 것이 핵심인데 그러려면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어야 하죠.


ⓒPierce


그런 측면에서 NoTraffic이라는 스타트업이 피어스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지능형 교통 신호 체계를 도입하면 소방차의 화재현장 출동시간을 효과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가설이 매력적이었죠. 덕분에 피어스에서도 관심을 갖고 검토했어요. 하지만 당시 기술 자체가 초기여서 실제로 도입된 사례가 없어서 아쉽게도 투자는 유보되었어요.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테스트(Proof of Concept)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노트래픽의 지능형 교통 신호 체계가 검증되어 실제로 도입된다면 유연한 교통 신호 체계를 통해 교통체증이 크게 개선될 거예요. 그럼 유보되었던 투자도 다시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어요.


Q. TechNexus Venture Collaborative에서 퇴사하고 국내로 돌아온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 후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영어로 의사소통은 물론 미국 직장에서 근무하며 언어적 장벽은 없었지만 제가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이 더 친밀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부모님과 누나도 국내에 거주하고 있어서 국내에서 근무한다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어요.


또한, 해외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한국이 글로벌 창업 생태계 순위에서 꾸준히 상승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죠. 글로벌 창업생태계 평가기관인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 미국)은 전 세계 100개국 280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22)’에서 서울은 전 세계 280개 도시 중 글로벌 Top 10 도시로 선정되었어요. 이는 작년 16위에서 6단계 상승한 결과였어요. 이처럼 잠재력이 큰 시장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 조직 문화도 적응하고 네트워크도 쌓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예전에는 유학을 다녀오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만으로 변별력이 있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이력과 어학 능력이 유효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Q. 국내 벤처캐피탈 시장과 미국 벤처캐피탈 시장은 어떻게 다른가요?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바로 ‘규모’에요. 이용자 수와 각종 사용지표가 같고 기술력도 거의 차이가 없다면 미국이 인구를 포함한 시장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기에 기업가치 역시 높게 평가받아요. 예로, 초기 스타트업 투자유치를 하는데 국내에서 100억을 기업가치로 평가받는다면 미국에서는 최소 500억은 거뜬히 받는 것 같아요. 캡스톤파트너스 합류 후 국내 스타트업을 만나면 만날수록 정말 보유한 기술력과 사업모델에 비해 국내의 제한적인 시장 크기로 인한 디스카운트를 받는 것은 다소 아쉬워요.


두 번째는 창업가들이 벤처캐피탈이라는 자본조달 방식을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미국에서는 스타트업들의 시리즈 구분이 어느 정도 명확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흔히 PMF(Product Market Fit)라고 하는 제품 시장 적합성을 찾기 전을 시드 단계로 보고 이후에는 매출 규모 혹은 사업 성과의 주요 마일스톤에 따라 시리즈 A, B, C 등 알파벳순으로 제법 명확히 구분해요. 각 라운드에 따른 기업 가치와 필요한 투자금을 예측하고 이에 따른 지분 희석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면밀하게 검토하는 거죠. 미국에서는 이걸 Capitalization Table Management라고 칭하곤 합니다.



반면 국내는 투자유치를 대출과 함께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수단 중에 하나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종종 검토하다 보면 이제 시리즈B 정도 되는데 창업자의 지분이 상당히 희석된 경우가 있어요. 이전의 투자유치 기록을 확인하면 시드 투자와 시리즈A 사이에 브릿지 투자를 유치하고 시리즈A와 시리즈B 사이에 다시 브릿지 투자를 강행하며 창업자의 지분은 희석되고 많은 투자자가 이미 주주명단에 포함된 경우가 많아요. 물론 각각의 일장일단이 있기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 지 단정을 지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벤처캐피탈의 입장에서는 체계적으로 투자유치를 진행하는 스타트업이 안정적이고 꼼꼼하게 경영관리를 할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요.


Q. 호황을 누렸던 스타트업 시장에도 경기침체로 투자 한파가 한창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젠가 경기침체가 곧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여파가 이렇게 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지금의 경제 한파는 제가 2016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 겪는 거시경제 위기에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촉발된 미국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나라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당시 저는 한창 대학교에서 학업에 매달릴 때여서 크게 체감하지 못했어요. 벤처캐피탈은 펀드레이징이 쉽지 않고 스타트업은 투자유치가 이전만큼 수월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 경험해보니 현실은 훨씬 혹독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이미 지난 몇 년간 걷잡을 수 없이 과열되었던 스타트업 투자 열기가 식으며 적정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업계 이해관계자들이 한층 성숙해지고 스타트업이 자생력을 갖춘다면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Q. 캡스톤파트너스에서 투자한 스타트업은 어떤 곳인가요?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요. 전국 스몰비즈니스와 공방을 운영하는 로컬 작가분들과 취미를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작가와 수강생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솜씨당컴퍼니에 투자를 하였어요. 솜씨당의 B2B 기업 클래스 프로그램에 지난해 누적 541개 기업에서 총 6만 7,45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어요. 주요 B2B 고객사는 삼성화재, LS, 롯데케미칼, 하나은행, LG 디스플레이 등 무척 다양해요.


ⓒ솜씨당컴퍼니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운영하는 루센트블록에도 투자를 하였어요. 소유는 건물을 주식처럼 쪼개어 누구든지 소액으로도 사고팔 수 있게 하며, 건물의 지분을 보유한 모두에게 건물주와 같이 월 임대료를 배당하는 서비스예요.


ⓒ루센트블록


이외 AI 기술 기반의 발 측정·신발 사이즈 추천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내 발에 맞는 완벽한 신발 사이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펄핏의 후속투자를 담당하고 있어요. 펄핏 사이즈 솔루션은 온라인 신발 쇼핑몰 사뿐, 데카트론, 슈마커, 언더아머, 프로스펙스 등 국내외 유명 신발 브랜드들에서 사용 중이에요. 최근 6개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펄핏 사이즈 솔루션을 사용한 고객이 미사용 고객보다 반품률이 55% 낮았고, 재구매율은 2배 이상 높다고 해요.


ⓒ펄핏


투자한 스타트업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아마 엔코드일거에요. 국내 최초 패션 프리오더 플랫폼 '디코드'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프리오더 판매 방식을 사용하여 공급자에게는 재고 최소화, 구매자에게는 가장 빠른 신상품 제공 및 가격 측면의의 혜택을 제공하죠.


ⓒ엔코드


Q. 자신이 가지고 있는 투자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투자를 진행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숙제는 필수라고 생각해요. 투자라는 것은 사실 '포모(FOMO)'증후군(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뜻하는 'Fear of Missing Out'의 앞 글자를 딴 증상)이 발현되기 쉬운 환경이에요. 예로, 테슬라가 석 달 만에 60%가 오르면 당장 흐름에 편승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을 느끼다가 결국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무지성 투자를 하게 되죠.



벤처캐피탈은 부익부 빈익빈이 뚜렷하게 나타나요. 특정 스타트업에 투자를 원하는 벤처캐피탈이 쏠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스타트업에 투자할 기회가 생기면 저 역시도 선입견을 갖게 되죠. 더욱 신중하게 검토하고 실사를 해야 하는데 그사이 다른 벤처캐피탈에 투자 기회를 뺏길까 봐 조바심이 생기죠. 저는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심사역으로서 본분에 충실히 하고자 해요. 그래서 창업자를 직접 만나보고 사무실도 방문하며 충분한 대화를 나눠요. 경쟁사 검토부터 각종 지표 확인은 물론 산업에 대한 독립적인 리서치도 진행하는 것이 투자를 검토하고 결정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매번 저 스스로 상기시키고 있어요.


두 번째는 투자금이 제 돈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하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펀드를 통해 조성된 자금을 큰 고민 없이 지르기도 해요. 그런데 전 투자금을 제 돈이라고 생각하고 투자 결정에 더욱 신중해지고자 노력해요. 그러면 종종 투자를 망설이게 되는 건들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보면 당시 무리하게 투자를 집행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Q. 앞으로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 혹은 분야가 있나요?

HR Tech, B2B SaaS, Productivity, 그리고 No code/Low code 시장에 관심이 많아요. 결국 회사는 사람이고 삶은 끝없는 타인과 교제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직장을 다니고 때로는 이직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결국 사람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요. 취업을 준비하고 이직을 고민할 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채용 정보와 이직 과정에서 비효율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테크 기업이 아직은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다고 봐요.



한국은 이례적으로  B2C가 지난 10년, 15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기 굉장히 좋은 마켓이었죠. 왜냐하면 일단 인구 삼분의 일이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있고 한국인의 특성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많아 바이럴이 일어나기 좋은 여건이어서 폭발적인 수요 혹은 쏠림현상이 일어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정책이 변경되며 이전처럼 타겟 마케팅을 통해 광고를 집행하는 구조가 유효하지 않게 되었어요. 현재 대중들의 일반적인 니즈에 반응하고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는 B2C 플랫폼 서비스들의 시장은 충분히 성숙해졌다고 봐요.


하지만 그에 비해 B2B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는 아직 시장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것 같아요. 여태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한국 대기업이나 빅테크들이 SaaS라는 제품이 각 기업의 여건과 시스템에 유연하게 맞춤형으로 제공되기 어려운 기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저는 이러한 인식조차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곧 변할 것이라고 믿어요. 어느새 잔디나 슬랙 같은 B2B SaaS 툴이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결국, 업무 효율성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만 있다면 시장은 언제든지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말하죠.



이외에도 No code / Low code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요. 코로나 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각종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났어요.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개발자들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였죠. 개발자 인력난의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이 코딩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코딩만으로 개발할 수 있는 노코드(no-code)·로코드(low-code)에요. 숙련된 개발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개발 영역의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노코드·로코드를 찾는 수요는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노코드·로코드로 개발된 업무용 앱이 2024년에는 전체의 65%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해요. 이런 기류는 필연적이기에 관련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들을 주시하고 있어요.


Q. 캡스톤파트너스에서 투자유치를 희망하는 예비 및 초기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은 최대한 자주 연락하는 게 좋다는 거예요. 저희 같은 벤처캐피탈은 창업가를 데모데이 행사에서 뵙기도 하고 아니면 저희가 먼저 콜드콜로 미팅 요청을 드기도 해요.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이 연결될 수 있는데 사실 워낙 다양한 기업들과 사업들을 검토하다 보니 호기심 혹은 관심이 있는 스타트업이 있더라도 일에 치여서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창업가의 입장에서는 묵묵부답인 벤처캐피탈이 원망스러울 수 있어요.



첫 미팅 후 지속적인 연락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지만 스타트업이 사업의 발전과 달성한 마일스톤을 꾸준히 공유해주시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이후에 투자자와 피투자자의 연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투자유치가 필요하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벤처캐피탈에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벤처캐피탈에서 전문투자자를 꿈꾸는 분들에게 커리어 관련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벤처캐피탈 업계에 오랜 기간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경험에 빗대어 의견을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작가님과 제가 링크드인을 통해서 만난 것처럼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현업에 있는 분들에게 연락해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단순히 한 명 두 명 만나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최대한 다양한 분들을 만나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원급부터 팀장급 그리고 이사직을 수행하는 분들 입장이 다들 다르기에 각자의 업에 대한 이해와 시각이 다를 거예요. 다양한 시각을 충분히 수집하고 분석해서 본인의 성향과 비전에 부합하는지 충분히 고민해보셨으면 해요.


ⓒ캡스톤파트너스


물론 직접 부딪혀보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안이에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벤처캐피탈을 경험할 기회가 있다면 지원해보시길 추천해요. 업계와 업무를 경험하고 그 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들로부터 책에서 접하지 못한 업계 현실을 파악하고 실무자만이 제시할 수 있는 팁들을 최대한 습득하시는 기회로 삼는다면 현장감이 충만한 벤처캐피탈 전문투자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Q. 박재성 팀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앞으로도 투자를 꾸준히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아직은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력이 아니기에 투자자로서 조금 더 정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다음 투자라운드에서 투자받는데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M&A 혹은 IPO까지 진행하거나 펀드를 청산하는 경험을 꼭 해보고 싶어요. 그래야 투자자로서 전체적인 라이프 사이클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투자자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것도 좋지만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나중에 창업을 직접 해보는 것에도 열려 있어요. 그렇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탈에서 창업자들과 밀접하게 일하며 그들의 성장을 돕고 저 역시도 함께 성숙해졌으면 해요. 그런 측면에서 벤처캐피탈이란 곳이 제가 앞으로 미래를 개척하는데 가장 좋은 스승이자 성장터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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