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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pr 08. 2023

합리적인 소비는 없다. 수용 가능한 가격만 있을 뿐.

헤르만 지몬의 '프라이싱'

헤르만 지몬의 ‘프라이싱’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사람의 뇌는 정말 fragile하다는 것이다. 매일 수많은 물건을 사는 우리는 소비자로서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지고 행동한다. 하지만 선택의 이면에는 무의식을 통제하는 ‘뇌의 작용’이 있고, 뇌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소비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프라이싱 전략’이 존재한다.


소비자는 그 어느 때보다 사기를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면 신용카드의 보급이 이러한 사태를 촉진하였는지 모른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해 현금을 사용할 때보다 지출이 늘었다. 카드로 계산하면 현금에 비해 훨씬 더 작은 음수의 효용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불황’이지만 결국은 ‘호황’일 될 것이라 믿으면서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소비를 하며 물건을 사들였다. 결국, 포드, GM, 크라이슬러 같은 전통 있는 기업들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왜 불필요한 소비를 멈출 수 없나?”


‘설득의 심리학’에서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우리가 선택하거나 어떤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그것을 계속 견지해야 한다는 개인적 혹은 인간관계상의 압박감을 받게 된다.”


오늘날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풀타임 직업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 구매의 유혹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으며, 방대한 선택의 범위 앞에서 대단히 고심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소비자가 비록 부유하다고는 하나 더 많은 고민은 불가피하며 예측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가격 정책을 세울 때 더욱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이전과 달리 채널 별 모든 가격이 쉽게 찾아내 비교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명확한 최적가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기업이 놓인 산업의 성장성, 산업 내 경쟁기업, 경쟁기업에 대한 정보와 이해, 그리고 경쟁기업의 실제 행동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최적가격은 끊임없이 변동될 수밖에 없다.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가치’라고 말한다. 정확하게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이다. 고객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가격이 곧 고객이 상품과 서비스를 보고 지각한 가치이다. 하지만 ‘지각’은 기능적인 감각이기에 고객의 주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지불용의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근본적인 동인은 바로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다.


가격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인 시장청산가격이 언제나 존재한다. 가격은 제품의 회소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희소성이 높은 제품은 공급 대비 수요가 높기에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 높은 가격은 생산을 부추겨 공급을 늘린다. 하지만 시간차가 발생하는데. 이를 ‘붐 앤드 버스트 주기 Boom and Bust cycle’ 혹은 ‘호그 주기’라고 부른다. 호그는 돼지를 말한다. 돼지 공급량이 부족하면 돼지 가격이 오른다. 그래서 농부들은 다음 시즌에 더 많은 돼지를 기르게 된다. 늘어난 공급량이 몇 개월 후 시장에 유입되면 가격은 떨어진다. 때문에 농부들은 다음 시즌에 더 적은 돼지를 키우게 된다. 이 순환주기는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경제가 언제나 뚜렷하게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시장은 수요와 공급 외에도 영향을 주는 외부 요소가 많다. 국내 한우시장을 보자.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우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그 결과, 농가에서는 경쟁적으로 사육 규모를 늘리며 공급을 늘려왔다. 최근, 고물가·고금리에 가처분소득이 줄며 소비가 줄자 한우 소비는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자연스레 한우 가격은 하락하며 새로운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아직 높기만 하다. 전국한우협회는 복잡한 유통과정이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결정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한우 유통 과정은 보통 ‘생산자-우시장-공판장(도축장)-중간도매상-도매상-유통업체-소비자’로 6~8단계를 거치게 된다. 한우 가격은 30% 이상 하락했지만, 유통과정에서 도축비·인건비·물류비가 20% 이상 상승하면서 매대 위 가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결정력이다. 가격결정력은 공급자가 자신이 바라는 가격을 쟁취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들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가격결정력만을 확보했다. ‘글로벌 가격결정 연구’에 따르면 CEO가 가격결정의 토대를 직접 닦는 기업은 같은 업무를 부하 직원에게 위임하는 경우보다 35% 높은 가격결정력을 보였다. 가격결정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는 기업 역시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24% 높은 가격결정력을 가지고 있었다. 더 나은 가격결정력을 확보하기 위해 CEO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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