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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un 05. 2023

지하철에서 한국어 웹툰을 보는 외국인 여성에게 물었다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강남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지인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기대가 컸지만, 한편으론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잠시라도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억척스럽게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될 가까운 곳에 빈자리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았는데 옆에서 테블릿PC를 켜고 무엇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좁고 불편한 환경에서 저렇게 열성적으로 타이핑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순간 궁금해졌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외국인이었다.


‘아마도 한국에 출장 온 거겠지?’


그렇게 짐작하고 호기심을 억제했는데 그녀의 태블릿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웹툰이었다. 심지어 한국어로 된 웹툰이었다. 외국인이 한글로 가득한 웹툰을 보는 것을 보니 K 콘텐츠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단순히 웹툰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말풍선 하나하나에 무슨 메모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웹툰일까? 왜 저렇게 메모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웹툰에 몰입한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같이 가다가 내리려는 역이 가까워지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말을 걸기로 했다. 영어로 할까 한국어로 할까 고민이 되었다. 영어로 하면 서양인이라고 해서 영어를 잘할 거라는 선입견일 수도 있고, 한국어로 하면 그녀가 당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걸로 고민하다니. 나이가 들며 생긴 배려심인 걸까? 아니면 그저 소극적으로 변한 걸까?'


한국어 웹툰을 보고 있으니 한국어가 어느 정도 능숙하다고 가정하고 한국어로 천천히 물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잠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웹툰 보시는 것을 봤는데 한국 웹툰에 관심 있으신가요?"


혹시나 했는데 한국어로 답변하였다.


"아, 저는 번역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산 지는 7년 되었어요."


"실례지만 어떤 언어로 번역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프랑스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왔어요."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웹툰이 번역 버전도 있을 텐데 굳이 외국인이 한국어로 된 웹툰을 볼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여세를 몰아 추가 질문을 던졌다.


“웹툰 번역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데 왜 말풍선마다 메모하시는 건가요?”


“제가 직접 번역하는 게 아니라 번역 작업을 배치하고 검수하는 일을 해요.”


그녀는 친절하게도 태블릿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말풍선마다 알파벳이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호기심에서 해방해 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말풍선 옆에 적힌 알파벳이나 숫자는 무슨 뜻인가요?”


“아, 저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표시해요. 여기 보면 의성어는 알파벳으로, 의태어는 숫자로 적어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웹툰을 다시 보니 정말 그렇게 구분되어 있었다. 이렇게 특별한 코드를 부여하면 나중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추적하고 협업하는 사람끼리 소통하는 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 질문을 하려던 찰나 지하철 안내방송이 울렸다.


"다음 내리실 역은 선릉역입니다."


내가 내리려던 역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싶었다. 그녀에게 명함을 주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글 쓰는 일을 하는데, 인터뷰 글도 써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번역가로 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 역시 어린 시절 외국에서 이방인으로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그녀가 경험하는 한국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인터뷰를 통해 글로 써 내려가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였거나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도 좋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투박한 이야기도 소중하다고 믿는다. 언젠가 그녀가 명함에 적힌 이메일이나 전화번호로 연락을 주길 기대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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