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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Nov 28. 2023

낯선 이로부터 글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글에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글에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첫 문장부터 너무 강렬해 내 눈을 의심했다. 이어진 문장에서도 댓글 작성자의 분노와 짜증이 글자 하나하나에서 선명하게 읽혔다.


"해당 광고의 광고주는 기획안을 선택하고 컨펌만 하셨어요. 그런데 쓰신 글을 보면 광고주가 전부 기획한 것처럼 나와 있어요. 광고 제작 과정을 전혀 모르시는군요. 이 모든 것을 기획한 것은 저희입니다. 제작비에 맞춰 출연진을 직접 만나 섭외하고, 세세한 디테일과 아이디어를 밤새며 고민하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곧 광고대행사의 다른 직원의 댓글이 달렸다.


"저는 해당 캠페인의 기획자입니다. 부족한 예산에 할당된 인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주말을 포기하며 만든 캠페인 아이디어를 광고주가 마치 스스로 기획하고 제작한 것처럼 쓰셨네요. 글을 먼저 삭제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광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셔서 아쉽습니다."


당황스러웠다. 우선 나는 단 한 번도 나 스스로를 광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 그런데 참신한 광고를 칭찬하는 글에 기획자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광고대행사가 흥분하는 것에 놀랐다. 물론 나 역시도 한때 광고주였기에 광고주의 입장에 더 감정이입이 되어 글을 썼을 수 있다. 광고주로서 광고대행사의 신박하지만 선례가 없는 기획안을 승인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큰 모험일 수 있다.


 경험에 빗대어 본다면 앞서 근무했던 외국계에서는 절대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기획이 국내 정서와 잘 맞고 최근 트렌드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유럽 본사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은 뻔하다.


"한국만 다른 전략을 취할 순 없습니다. 앞서 공유한 브랜드 가이드라인에 맞추고 글로벌 캠페인의 방향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세요."


예산만 배정해 준다고 없던 시장이 형성되고 제품이 팔리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외국계 브랜드 담당자로서 그러한 고충이 컸는데 신선한 것을 넘어서 신박하다는 생각이 든 광고를 보자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은 어쩌면 당연했다.


'도대체 이 기획안을 어떻게 경영진으로부터 승인받았지?'


경이로움과 부러움에 썼던 글은 광고대행사 직원들의 댓글로 한순간 엉터리 글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종종 감정적으로 주장을 펴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감정이란 때로 매우 확고하고 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을 설득하여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상대방은 무의미하거나 난해하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남들도 내가 아는 것을 알고,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이 믿는 것을 믿고, 나와 똑같이 세상을 바라보리라고 짐작하곤 한다. 우리 뇌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착각에 빠지기 쉽다. 감정을 토해내면 상대방이 행간의 뜻을 알아듣고 행동의 필요성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광고대행사가 이토록 광고주보다 더 주목받고 싶은 욕구는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크게 네 가지로 보인다.


1. 평판 구축: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에이전시의 신뢰도를 높이고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다.


2. 신규 고객 유치: 성공 사례는 검증된 결과를 원하는 잠재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된다.


3. 구성원 동기 부여: 인정을 받으면 팀의 사기가 진작되고 고품질의 결과물을 계속 생산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4. 포트폴리오 구축: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공은 강력한 포트폴리오에 기여하여 에이전시가 영향력 있는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광고대행사의 욕구에는 고객 만족 혹은 공동의 목표 달성은 누락되었다. 궁극적으로 광고대행사는 작업에 대한 공을 독식함으로써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자신을 차별화하여 현재 및 잠재 고객 모두에게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고자 한다. 물론 모든 광고대행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광고주의 능력 및 기여도를 언급하면서까지 인정에 집착하는 광고대행사에 한해서다.


이번 일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장 큰 잘못은 어쩌면 나에게 있다. 광고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조회수가 급증할 때, 광고 대행사 직원들이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음으로써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일종의 자기 치료로써 인정을 갈망하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인정에 대한 결핍은 뇌의 보상 시스템에 의해 강화되는 정서적 및 인지적 과정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획과 제작은 대부분 광고 대행사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 대한 인정과 칭찬은 광고주가 독점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적잖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간 누적된 불만이 그만 내 글을 보고 폭발한 듯했다.



하지만 물품에 대해 계약하고 이에 대한 협의가 이뤄진 금액을 지불하였다면 그 결과물의 소유권은 계약하고 지급을 완료한 사람에게 이전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웬만한 업계 관계자 혹은 전문가라면 광고 기획과 제작은 전문 기획사에서 한다고 당연히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언급이 없는 글들을 이렇게 추적해서 분노의 댓글을 남기고 삭제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저렇게 글을 남겨서 조금이라도 화가 삭힌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다.


나는 댓글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광고주였다.


그는 자신과 계약한 광고대행사가 자신에 대해 기여하는 바 없이 그저 취사선택만 한 광고주라고 말하는 것을 알까?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 역시도 브랜드를 운영하며 글로벌 광고대행사와 계약하고 광고를 제작하였지만, 모든 것을 내가 기획하고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광고에서 전달하였으면 하는 메시지와 드러났으면 하는 제품의 특성을 문서로 전달하고 부연 설명을 해드렸을 뿐이다. 이후 광고대행사가 전달한 기획안을 경영진 혹은 본사가 납득하도록 하는 것은 순전히 광고주이자 담당자인 내 몫이지만 말이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라도 그저 과감한 시도에 불과하다.



반대로 광고가 생각보다 반응이 없으면 광고대행사를 탓할 수 있을까?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계약을 맺고 광고안에 대해 합의하면, 광고 제작은 되돌릴 수 없다. 광고의 성과와 관계없이 광고주는 계약에 명시된 잔금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성과에 따른 추가 비용을 별도로 약정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앞서 말한 내가 극찬했던 광고는 이후 과도한 광고비 사용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제작비의 수십 배 가까이 되는 비용을 유료 광고 집행비로 지출하면서 높은 광고 조회수가 바이럴이 아닌 유료 광고로 인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분 것이다.


그전까지는 자신들의 작품이라고 매체 인터뷰에 집착하던 광고대행사는 이제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성공하면 나의 공, 실패하면 너의 책임’이라는 공식에 충실한 듯했다. 철저히 본인들의 헌신과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말했는데 더 이상 말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은 다양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다. 몇몇 기업들은 내가 작성한 글이 발행된 후 외부 투자 유치나 인재 영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성공이 오롯이 내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진흙 속 숨겨진 진주를 발견하는 것처럼, 내 일은 단지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창업가의 고뇌와 진정성을 글에 잘 담아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다면 나에겐 그걸로 충분하다.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닌 스토리의 주인공인 창업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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