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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Dec 07. 2023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도 독서모임에 오시나요?"

세련되지 못하다고 해도 괜찮아요.

다이소 매장 안 계산대 앞이었다. 내 차례였지만 좀처럼 확신이 들지 않아 차례를 양보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정말 오시나요?"


 그에게서 답변이 왔다.


"네, 오늘 참석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인생에서 오늘은 그에게는 결혼식만큼이나 의미가 큰 날이다. 그런데 그런 날 저녁에 독서모임을 오겠다니.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나도 혼란스러웠다.



이 사건의 발단은 한 달 전이었다. 첫 번째 독서모임을 하며 부지런히 준비한 질문들을 다 보니 예정된 종료 시을 넘겨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자리를 정리하고 지하철 막차를 향해 급히 뛰는 데 같은 방향으로 뛰는 모임 참석자가 있었다. 마침 방향도 같아 귀가를 같이하게 되었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그에게 물었다.


"내일은 일정이 어떻게 돼요?"


특유의 맑고 밝은 눈을 반짝이며 그가 말했다.


"내일은 부대 복귀합니다."


"직업 군인이시구나."

"아니요. 아직 현역이고 현재 휴가 중입니다."


그렇다. 그는 만기 전역을 한 달 앞두고 휴가를 나와 독서모임에 나왔던 거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독서모임에 할애한다는 것을 들으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매우 감사했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경력을 소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다음 달 독서모임은 오실 수 있어요?"


"네, 마침 그날이 전역일이어서 올 수 있어요."


내 귀를 의심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그날, 독서모임에 참석하겠다는 그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의심스러웠다. 한 달이 흘러 독서모임 날이 다가오자, 그가 정말로 올 것인지 문자로 확인해 보았다. 곧 그가 답변했다.


"네, 이미 출발해서 가고 있어요."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풍선과 파티 스트리머를 들고 계산대로 달려갔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움이 커 안국역 근처의 베이커리에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과점은 조각 케이크만 팔았다. 조각이 아닌 완전한 케이크를 원하면 적어도 3일 전에는 주문해야 한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 매장도 있었다. 4번째 방문한 베이커리에서야 겨우 원하는 완전한 케이크를 구할 수 있었다.


독서모임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풍선을 부르기 시작했다. 풍선을 부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8번째 풍선을 부는 도중에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시간은 무정하게도 흘러갔고, 모임이 끝나기까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프로포즈를 앞둔 새신랑마냥 조급한 마음으로 파티 스트리머를 벽에 붙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고 어색했지만, 그의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혼자서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다른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서둘러 와달라고 연락했다. 먼저 도착한 멤버들과 함께 풍선을 부르고 파티 스트리머를 벽에 걸었다. 벽에는 빔프로젝터로 그의 사회복귀를 축하하는 문구를 비추었다. 서프라이즈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때쯤, 문 앞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오늘 같은 날에도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를 발견한 순간, 열심히 준비하던 나와 멤버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은 끝내야 했다. 어색하게도 그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니, 풍선과 파티 스트리머로 장식된 독서모임 장소에서 그의 전역을 축하할 수 있었다.


그가 일찍 도착한 탓에 완벽한 서프라이즈 파티는 무산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케이크는 숨길 수 있었다. 케이크를 꺼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놀래주고 싶은 마음으로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 위에는 그의 사회복귀 첫날을 축하하는 촛불이 하나 박혀 있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그는 이제 두 번 세 번째 만나는 독서모임에서 이런 축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그를 알게 된 것이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렇게 독서모임에 열정을 갖고 참석하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른 멤버들이 내가 그 친구만 유독 아끼고 편애한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날에도 독서모임을 참석하겠다고 한 그에게, 이 정도의 준비와 노력은 아깝지 않았다. 그에게 조금은 특별한 전역일이 되었으면 한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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