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후 Dec 08. 2023

"10년 전 공동창업한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어요."

이미 일어난 상황이'상수'라면 우리의 마음가짐은 '변수'이다.

마케팅 관련 종사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비록 불편한 진실이지만 구조조정을 담당한 내 경험과 소회를 공유했다. 그랬더니 어느 한분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올해 초에 권고사직을 당했어요."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묵직한 주먹이 날아온 듯 했다. 한편으론, 세션에 참여하신 분이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눠주셔서 감사했다.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힘드셨어요?"


"너무 창피하고 분해요."

"무엇이 창피하고 분한가요?"

"10년 전 뜻이 맞는 창업자와 공동창업한 기업인데 제가 이렇게 회사를 나오게 될 줄 몰랐어요."



"창피하고 분한 것을 논외로 하고도 지금이 더 불행한가요?"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지금이 더 나아요. 그런데 지난 세월이 아쉽고 그런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 분해요."


그의 답변 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즉각적인 답변을 드려서 감정을 토해내는 자리가 되기보다 그가 조금 더 상황을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잠시 대화의 여백을 가졌다. 조금 후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게 왜 화가 날 일이죠?"

"네?"


공감을 기대했던 그는 내 질문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헌신했는데도 불구하고 OO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는 동료들의 속내를 지금 알게 되었잖아요."


쉴틈을 주지 않고 팩트 융단폭격을 이어갔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OO님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없는 동료들과 또 다른 10년 혹은 20년을 앞으로 함께 할 수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불행한 게 아닐까요?"



뭔가 둔탁한 물건으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의 그가 말했다.


"아, 그렇게 생각하진 못했네요."


이왕 시작된 팩트폭격은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회사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이렇게 일찍 OO님이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오히려 그때보다 재정적으로 시간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내가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순간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정말 그렇네요."


삶에서 많은 일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다. 그중 대다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이미 일어난 상황이 바뀔 수 없는 '상수'라면 우리의 마음가짐은 '변수'다. '세상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결코 헛되지 않다.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게 할 수는 없다.



삶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계속해서 흘러간다. 때로는 길을 잃거나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또 다른 문이 열리고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현실을 용기 있게 바라보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도 독서모임에 오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