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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Nov 03. 2023

"수요일 저녁 독서모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 뛰어난 스토리텔러이다.

“왜 저예요?”


자칫 무례한 질문일 수 있지만, 난 꼭 그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우연히 인후님이 기고 중이신 글을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막힘없이 한 번에 읽히는 글에 빠져서 업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요청 사안이었다. 단순히 글 쓰기 요청이나 서평을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오프라인에서 3시간 40분 동안 진행되는 독서모임의 모임장을 내게 제안한 것이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사실 이전까지 이러한 모임은 여유 있는 특정 계층의 사교모임이라는 인식에 일부 공감했던 나이기에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런 인식에 변화가 생긴 건 올해 초 온라인에서 모집한 독서모임에 참가하고부터였다. 당시 모임장은 운영 방안을 트레바리에서 착안하였다고 했다.


이전에 참여한 다른 독서모임보다 짜임새 있는 운영 방식 덕분에 독서모임이 운영된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고유한 생각 회로를 장착한 사람들과 그렇게 한 주제에 대해 열성적으로 토론하는 자리가 너무 흥미로웠다. 덕분에 귀가하는 길의 밤은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이 가로등을 대신할 정도로 어둡고 추웠지만 말이다.


그런 경험 덕분에 독서모임장 제안은 관심이 갔다. 또한, 자신이 입사 후 첫 섭외 제안이라며 용산까지 찾아와 식은땀을 흘리며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담당자를 보니 더욱 마음이 움직였다. 고민 끝에 나는 매월 넷째 주 수요일에 독서모임을 하기로 하였다. 담당자는 내게 크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재차 말했다. 하지만 모집 요강에 올라간 내 얼굴을 보니 없던 부담도 생길 것 같았다.


ⓒ트레바리


첫 독서모임을 준비하면서, 참여자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를 느끼고 기대를 충족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스토리텔링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줄이는 기회가 되길 원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준비한 발제문을 오랜 경험이 있는 파트너가 보더니 물었다.


"선생님, 발제문을 확인했는데 주어진 시간 내에 모두 마치기에는 무리인 것 같은데 우선순위를 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게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독서모임이 진행되는 3시간 40분 동안 긴장감과 높은 참여도를 유지하고 싶었다. 부족한 준비로 일찍 마무리하여 억지로 질문과 답변을 끌어내야 하는 상황은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과 부담으로 뒤덮인 몇 주를 보내니 어느새 약속의 수요일이 다가왔다. 독서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대부분이 이미 착석하고 있었다. 시작하기 3분 전 내 가슴이 미세하게나마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느낌표와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 독서모임에 오신 분들이 돌아가는 길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그럼에도 내가 기획한 독서모임이 불편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분들이 있으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어느새 시작을 10초 남겨두게 되었다. 아직 많은 질문에 나 스스로 답을 찾지 못했고 그로 인한 불안은 더욱 고조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저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안녕하세요. 조인후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독서모임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스토리텔링'이며, 책에 대한 토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짧은 인트로 이후, 우리는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자기 소개는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색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각자 자신을 종이에 적거나 키워드로 적어놓고, 오른쪽에 앉아있는 다른 참여자가 마치 오랜 지인처럼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정보의 파편들로 스토리를 완성하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아직은 서로가 잘 모르니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었다. 참여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다소 생뚱맞은 제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한 분이 말했다.


"그거 재밌겠네요."


한 사람의 긍정적인 반응은 그룹 전체를 움직이기 충분했다. 이를 통해 스토리텔링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을 소개하는 것도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길 바랐다.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내가 시작을 끊었다.


"옆에 계신 분은 오늘 독서모임 진행을 도와주기 위해 참석해 주신 이해완 님입니다. 이곳에서 6년 가까이 근무하고 계시고 20대 때부터 10년 정도 독서모임에 참여하였고 운영한 경험도 있습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로, 풀코스를 세 번 완주했고, 다음 주에 네 번째 풀코스에 도전 예정입니다. 보시기에 안경을 쓰고 매우 점잖은 인상이지만 셔츠 안에는 체력단련으로 인한 무시무시한 복근을 숨기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물론 마지막 문장은 그가 건넨 자기소개서에 없었지만 이처럼 상상력을 덧붙여도 좋으니 조금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옆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자기소개를 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튜브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하는 분, 회사 생활을 하며 개인 브랜드를 준비하는 직장인, 외국계에서 IT솔루션 영업을 하는 회사원, 대학교를 휴학하고 마케팅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대학생,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좋아하는 직장인, 우먼 웰니스 브랜드를 알리고자 부산에서 서울로 사업장을 옮긴 창업가, 요리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여 그래놀라 브랜드를 론칭한 사업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콘텐츠 에디터, 평소 바이크를 즐겨 타는 디자이너 등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신만의 뚜렷한 삶의 궤도를 갖고 계신 분들이었다.


다양한 분들과 대화한다는 것은 분명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시각을 마주할 기회이다.



독서모임의 후반부에는 멤버들이 직접 해보며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체감할 수 있도록 준비한 활동들을 진행했다.


흥미로운 스토리에는 명확한 구조가 있는데 주로 스토리의 흐름과 요소를 정한다. 참여하는 멤버들에게 최근 겪었던 일 중 하나를 아래의 스토리의 구조에 따라 재구성해 보기를 제안드렸다.



나는 최근에 발행한 글을 위의 구조에 맞게 재구성을 해보았다.


옛날에... 인도에 대형슈퍼마켓체인이 있었다.

그리고... 매일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어렵게 되자 손님이 끊겨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마켓 앞에 트럭이 멈추더니 장정들이 내리더니 트럭에 실린 짐을 상점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점에 있는 기존 제품들은 모두 교체가 되었고 상점의 간판까지 모두 바뀌었다.

마침내... 이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일의 배후가 밝혀졌는데 바로 호시탐탐 이 슈퍼마켓을 노렸던 경쟁사였다. 수백 개의 체인을 가진 이 슈퍼마켓을 인수하는 데 기존 투자자인 아마존이 훼방을 놓자 이 기업은 이 슈퍼마켓이 위치한 수백 개의 매장의 임대인이 되어 임대료가 밀리자, 계약조항에 따라 매장을 압류한 것이다.

그날 이후... 아마존은 인도의 슈퍼마켓 경쟁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스토리의 뼈대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해보며 픽사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은 캐릭터였다. 스토리에서 캐릭터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우측에 앉은 사람을 자신 기획하는 스토리 속 캐릭터라고 가정하고 고유한 특징을 부여하며 유일무이한 캐릭터를 만들어 보았다. 옆 사람을 모태로 한 캐릭터를 소개할 때마다 때로는 놀라고 다시 웃으며 서로의 상상력과 디테일한 기획력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스토리텔링은 복잡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타고난 스토리텔러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다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반복이 필요하다. 모임을 종료하기 전 각자 모임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다.


수요일 저녁 독서모임,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모임 중간에 스토리텔링 관련 액티비티를 해보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해 볼 것을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모임이 3시간 40분 동안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더 놀랐어요."


예정보다 길어진 독서모임이 자정 가까이 끝나 비록 지하철 막차는 놓쳤지만, 그 어느 때보다 벅찬 가슴으로 집으로 향하였다.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고 새로운 시각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매우 흥미진진한 일임이 분명하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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