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님이 사무실을 얻었다
화요일이 휴일이어서 주말과 징검다리 휴일을 활용해 가족들과 멀리 다녀올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런데 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가족에게 말했다.
"이번 주 여행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
아내가 말했다.
"얘들 방학인데 혼자 빠질 생각하지 마."
흥분한 아내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지난번에 우리 집 근처까지 찾아오셔서 차 마시고 식사했던 분이 내일 사무실에서 혼자 가구 조립한대."
아내가 더욱 흥분하며 말했다.
"당신이 무슨 가구 배송 조립 서비스야? 경기도 시민이 서울까지 왜 가?"
더 이상 논리적으로 접근했다가는 설득이 길어질 것 같아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전에 이케아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었나?"
"갑자기 왜?"
"가구 조립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면 나 하던 일 전부 그만두고 이케아 지원할지 몰라."
평소 나의 엉뚱한 상상력과 비현실적인 실행력을 잘 아는 아내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답했다.
"그래도 저녁은 집에서 먹어."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동공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그 모습이 거슬렸는지 아내가 한 마디 던졌다.
"오버하지마."
순간 나도 요란을 떠는 것 같아 주저하다가 혹시 모르니 조용히 챙겨 용산 사무실로 향했다. 협소한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하고 대표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건물 계단에서 타닥타닥 발소리가 났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반갑게 맞아주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의 4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아주 넓지 않았지만, 소규모로 근무하기에 아늑했다.
"제가 뭐부터 하면 될까요? 혹시 몰라 집에서 전동 공구도 가져왔어요!"
무엇을 조립하던 전동공구는 꼭 활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귀가하면 아내가 가져간 전동 공구는 사용했는지 제일 먼저 물어볼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대표님은 책상 조립을 부탁하셨다. 이미 이케아 책상을 조립한 경험이 있었기에 흔쾌히 응했다. 서둘러 포장을 풀고 바로 조립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부품 중 정체불명의 브라켓 등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나사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경험과 본능에 충실하여 조립하려던 나는 동작을 멈추고 제품 설명서를 두 손으로 공손히 펼쳐보며 안내에 따라 부품 결합을 시작하였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책상다리와 상판을 연결하는 나사를 조이는 것이었다. 나사가 돌출형이 아닌 매립형이어서 시각이 아닌 오직 촉각에 의지하여 조립해야 했다. 나사가 헛돌 때마다 혼자 씩씩대며 대표님이 듣지 못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케아 가구 조립은 노동이 아니라 과학이었어."
이미 배송된 국산 책상의 조립 방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오직 내 모든 감각을 이 책상의 구조에 맞추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릴 적 뉴코아백화점에서 주최한 레고 조립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기억을 되살려 소근육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렇게 첫 책상을 조립하니 곧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으로 중국집을 예상했는데 대표님의 약혼자가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도시락 안에는 유부초밥, 떡볶이, 군만두가 있었다. 실패할 수 없는 필승의 조합이었다. 식사하며 그분들의 연애사를 들었는데 아직 연애 중인 풋풋한 커플의 이야기를 들으니, 집에 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아, 맞다. 전동공구 써야지.'
식사를 마치고 책상 조립에 집중하였다. 점점 손끝 감각이 올라온 나는 조립 속도를 올렸다. 눈은 거들 뿐 오로지 촉각에 의지하여 나사를 조여갔다. 확실히 나사가 매립형이어서 완성하니 깔끔하고 더 단단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7개 책상을 조립하고 회의실에 들어갈 책상 배송을 기다리는데 도저히 올 기미가 안 보였는지 대표님이 말했다.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정리할 테니 집에 들어가서 쉬세요."
"오늘 회의실 책상 배송 안 되는 거 확실하죠? 혼자 조립하면 힘들 수 있으니 편하게 말씀 주세요."
웬만해선 내가 쉽게 고집을 꺾지 않을 것 같았는지 대표님은 가구업체에 전화하여 배송을 확인하였다.
"네, 방금 업체와 통화했는데 배송이 며칠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오늘은 이만 철수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또 일손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사무실을 나오는데 대표님이 배웅을 나왔다. 집에 돌아가며 취소한 여행은 아쉽지만 이렇게 와서 조금이나마 돕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이 혼자 책상 7개를 혼자 조립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레고 애호가인 내가 도왔으니 해가 지기 전에 조립이 끝난 것 같다며 나 자신을 칭찬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하루가 지루했는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아내가 애틋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전동공구 사용했어?"
"그럼, 덕분에 해 지기 전에 귀가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