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미국 IDEA 디자인 어워드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디자인계에서는 매우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상이 있다. 1955년에 독일에서 시작되어 6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이다. 그중 최우수상인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the Best)’은 각 부문 최우수 제품에 수여하는 상으로 글로벌 기업들도 수상을 목표로 할 정도로 그 위상과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이곳 레드닷 어워드에서 소리소문없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수상한 기업이 있다. 바로 엔리음이다.
레드닷 어워드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수상한 엔리음 , 출처: 엔리음
'2023 레드닷 어워드'는 독보적인 디자인 역량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자동차 분야에서 페라리가 '푸로산게'와 '비전 그란 투리스모'로, 가전에서는 애플의 ‘애플와치 울트라’, ‘맥 스튜디오’로 최고상인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수상하였다. 수십명의 팀을 대동한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엔리음은 오디오 디자인 분야에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페라리와 애플과 같은 세계 최고의 디자인 제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페라리의 ‘비전 그란 투리스모’(좌), 애플의 ‘맥 스튜디오’(우), 출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엔리음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개발, 제조하는 기업이다. 소형 휴대용 헤드폰 앰프부터 플래그쉽 앰프까지 일명 오디오파일(Audiophile)이라 불리는 국내외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 수상은 엔리음의 하이엔드 오디오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역량 또한 업계의 정점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수상한 엔리음의 AMP-54R은 무엇이 특별할까? 이 제품은 엔리음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완벽한 미니멀리즘’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슬림한 본체가 떠 있는 구조의 이 앰프의 본체는 얇은 부품과 회로들로 채워져 있고 높이가 큰 캐피시터는 앰프의 하단부에 우아한 형태로 돌출돼 있다. 하단부의 트랜스포머를 내장한 하우징은 견고하고 안정적인 플랫폼으로 활용된다. 이 앰프는 엔리음이 지난 수년간 축적한 기술력의 응집물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레드닷 어워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수상작 AMP-54R, 출처: 엔리음
이러한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채수인 대표의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애착과 집념이 컸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산업 공학을 전공한 그는 내부 설계부터 엔지니어링 그리고 디자인까지 일관성이 있어야 매력적인 제품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히 외관상 미래에서 온 듯한 말끔한 디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품의 목적에 부합하고 기능에 최적화된 디자인이야말로 제품의 순도를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단순한 전자 제품이 아닌 악기에 가깝다. 단순히 녹음된 음향을 재생하는 기기가 아닌 음악의 영혼과 감성을 전달하여 청취자를 레코딩의 시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각, 시각, 촉각 등 총체적인 감각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AMP-54R을 보면 이용자 경험에 대한 고민이 깊게 배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슬림한 디자인으로 최상의 성능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기술 발전 덕분에 앰프의 물리적 크기를 이전 앰프의 거의 절반 이하로 축소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방열판의 크기와 효율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에 맞는 최적의 방식으로 내부 회로를 신중하게 설계하고 그에 걸맞은 우아한 디자인으로 완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능과 디자인에 대한 엔리음의 집착이 이번 디자인 어워드 수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엔리음 대표 채수인, 출처: 엔리음
디자인은 오디오의 청취 경험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채수인 대표는 오디오가 귀로 들리는 것과 동시에 눈으로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원이 꺼져 있을 때도 디자인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프리미엄이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은 지양했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핵심만 간결하고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이 그의 지향점이었다. 이런 디자인은 결국 청취자의 기대를 높이고, 청취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