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평범한 소년의 비범한 미국 적응기 #2

by 조인후

추운 겨울이 정점에 있던 20세기 마지막 1월이었다. 우리 가족은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16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을 버티고 JFK 공항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제주도 보이스카우트 여행이 유일한 비행기 탑승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내 처음으로 해외에 나간다는 생각에 모든 걱정이 묻히고 오히려 설레었다.


마침내 비행기가 미국 영토 내 활주로에 착륙하였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기내 짐을 챙겨 게이트로 걸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백인, 흑인 등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정말 미국에 도착했다는 게 실감되었다.



'아마도 저 사람들은 가족 이민이 아닌 여행을 가거나 여행에서 복귀하는 길이겠지?'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입국심사대에 도착했다. 지난 몇 년간 다닌 영어 학원이 빛을 발할 순간이 다다랐다.


"What is the purpose of your visit to the United States?"


예상한 대로 입국 목적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사전에 준비한 대답을 했다.


"Family. Family visit."


사실 우리는 가족 방문이 아니라 이민을 위해 왔다. 하지만 원활한 입국 심사를 위해 가족 방문이라고 말하라고 공항 출구에서 우리를 맞아줄 먼 친척들이 귀띔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약속의 땅, 미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입국심사대를 지나고 문을 열자, 밝은 채광이 내리쬐는 넓은 공항 내부가 보였다. 인천공항이 개장하기 전 유일한 국제공항이었던 김포공항에서 출발했던 우리에게 JFK공항이 보여준 웅장함은 울림이 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느 중년 남성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멀고 먼 친척이었다. 뉴저지주에서 작은 교회를 세운 그분은 우리의 미국 정착 가이드이자 앞으로 다닐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었다.



어색하고 건조한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그분들의 차에 올라탔다. 우리가 거주할 미국 집에는 아직 가구와 집기가 없어서 우선 임시거처인 그분의 집으로 향했다.


그분의 집은 뉴저지 북부에 있었다. 뉴욕과 뉴저지의 경계에는 허드슨강이 있었는데 폭은 1.4km로 한강보다 좁지만 강 길이는 500km로 한강과 비슷하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까지의 길이가 497km이다. 2009년 1월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갑자기 날아든 새떼와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엔진 2개가 동시에 나가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허드슨강을 건너려면 조지 워싱턴 다리나 강 아래 링컨터널을 이용해야 했다. 그분들은 장엄한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싶으셨는지 어두운 링컨터널 대신 조지 워싱턴 다리를 택했다. 모든 광경이 신기하고 멋있었지만, 나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



며칠 후 필요한 집기를 간단히 준비하고 우리는 드디어 미국에서 첫 월세 계약을 한 집에 입주했다. 나무로 지은 하얀색의 판자로 겹겹이 쌓은 듯한 이층 집이었다. 일층은 집주인 가족이 거주했고, 우리는 이층에 살게 되었다. 집주인은 스파르탄의 불같은 성질을 물려받은 그리스계 백인 부부였다. 현관을 열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가장 놀란 것은 바닥이 전부 카페트라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미국에서는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다는 것을. 거실은 약간 특이한 구조였는데 거울을 양옆으로 밀면 또 다른 공간이 나왔다. 부모님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나와 누이에게 문이 있는 방을 하나씩 주시고, 두 분은 방도 아닌 그 애매한 공간을 사용하셨다.



그런데 집 주소도 외우기 전에 황당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누나와 내가 다닐 학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조금 떨어진 옆 동네에 있다는 것이었다. 옆 동네에 집을 구하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얻었다고 했다. 대신 목사님의 집 주소로 학교에 등록하면 친척들과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왜 가까운 학교에 보내지 않았냐고 부모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가까운 학교는 치안이 좋지 않고, 친척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했다. 당시 어렸던 나와 누이는 이게 위법 행위인지 몰랐다. 학교에서 집주소를 확인할 때면 친척의 집주소를 적어야만 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냥 가까운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등교를 앞두고 일요일에 목사님이 이끄는 예배에 참석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목사님이어서 예배 참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처음 맞는 일요일에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졸음과 싸우는데 첫 예배 때 그분은 내 인생에 오래 기억될 선물 아닌 선물을 남겨주었다. 예배가 끝나자 목사님이 나를 불렀다.


“미국에 왔으니 영어 이름이 필요하지 않겠니?”


그리고 성경책을 덮으며 성경의 겉표지를 보여주셨다. 성경을 의미하는 ‘바이블(Bible)’ 외 또 다른 단어가 있었다.


“이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인데, 너의 영어 이름은 제임스(James)로 하자. 어때?”

“아.. 네.”


그렇게 내 영어 이름이 정해졌다.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는 제임스는 007 영화의 제임스 본드가 전부였다. 사실 영어이름을 갖는다면 원하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차 적응을 끝내가던 시점에서 원체 소극적이고 낯을 가렸던 나는 내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그때는 제임스라는 영어 이름이 내 삶에 그토록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월요일에 미국인들이 즐비한 학교에 등교 할 생각에 긴장감이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였다.


늦은 저녁 혼자 조용히 같은 말을 되내며 잠에 들었다.


"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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