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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Dec 22. 2023

소멸위기의 소도시에 기업들이 모였다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찾고, 새로운 혁신을 만드는 것.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인구 감소에 시달리는 곳이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관광객들이 몰리지만, 그 짧은 기간이 지나면 현지인들도 일자리를 찾아 본토로 떠난다. 자연재해와 일자리 부족이 인구 감소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시칠리아, ⓒCASE1EURO


이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지방 자치 단체는 ‘1유로 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집을 1유로에 판매하는 것이다. 구매자는 3년 안에 집을 수리하고 실거주하거나 세컨드 하우스나 상업적 용도로 등록해야 한다. 1유로 이외에도 부동산 중개 수수료, 취득세, 소득세, 수리 비용 등이 추가로 발생한다.


정착하는데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고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구매하는 대부분은 마을에 잘 적응한다. 정착민들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통해 원주민들과 어우러지는 법을 배우고, 원주민들도 새로운 삶을 찾아온 사람들을 환영한다.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발견된다. 놀랍게도, 이를 주도하는 것은 지자체가 아니다.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이다. 이 액셀러레이터에 근무하는 지인의 초대로 ‘2023 BETTER里: Sustainable Stay in 영주’라는 프로젝트의 설명회에 참석했다.


‘2023 BETTER里: Sustainable Stay in 영주’, ⓒ비즈니스스토리텔러 조인후


블루포인트는 극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성장을 돕는 액셀러레이터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구감소 지역인 영주시에 스타트업들의 실증 사업을 통해 생활 인구를 유치하고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관광공사와 블루포인트의 공동사업으로 진행된다.


지역의 인구감소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이지만, 효과적인 대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블루포인트는 이 문제를 스타트업들의 창의력과 혁신력을 활용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들을 선발하여 영주시에서 6주 동안 실증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기업당 최대 3천만원의 실증 사업비를 제공하며, 블루포인트는 각 기업의 필요에 맞는 네트워크와 지역 자원을 연결하고 실증 사업의 운영을 총괄하였다.


인구 변화는 지방 소멸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이며,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앞으로도 더 가속화될 것이다. 스타트업들이 혼자서 이 문제에 접근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블루포인트는 이 문제를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롭게 풀어보고자 스타트업들과 지자체, 기업 등의 협력체계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단순히 관광 증진이 아닌 지역의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지역의 특색을 활용한 테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들이 함께 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보다 편하게 장기간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머무르면서 쌓은 긍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지역만의 특성이 필요하고, 이를 산업으로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2023 BETTER里: Sustainable Stay in 영주’, ⓒ비즈니스스토리텔러 조인후


그래서 지역을 선정하고 적절한 테마를 잡는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 후보 지역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검토한 결과, 경북 영주가 실증 사업 지역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경북 영주는 인구 10만 정도 되는 도시이다. 월평균 방문자는 70만명 되고 연평균의 관광객 수는 약 200만 명 정도 된다. 바로 옆에 있는 안동의 경우에는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아직 영주가 덜 알려졌다고 볼 수 있다.


영주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청량리에서 KTX로 1시간 40분, 차로는 2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영주라는 지역의 테마를 관광자원화하여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생활 인구를 확대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사실 영주에는 부석사, 소백산 등 매력적인 곳들이 많다. 또한, 한우, 사과, 인삼 등 활용할 수 있는 특산품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해당 프로젝트가 크기 위해선 대기업과의 협업도 중요한데 영주에는 SK와 KT&G 등의 대기업들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영주에는 숙박 인프라가 부족하다. 관광지로서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숙박과 교통 인프라가 불편하여 왔던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가서 머물게 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전국 2387개 호텔·콘도 중 영주에 위치한 시설은 관광호텔 2개뿐이다. 팬션이나 에어비앤비 등의 숙소도 적고, 즐길 콘텐츠도 부족하다. 부석사나 소수서원 등의 관광지를 돌아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도 미흡하다. 이에 블루포인트는 영주의 다양한 장점을 고려하여 테마를 ‘지속가능한 스테이’로 정하였다.


‘2023 BETTER里: Sustainable Stay in 영주’, ⓒ비즈니스스토리텔러 조인후


이 테마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숙박 경험과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숙박 인프라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머무는 경험을 전체적으로 기획하였다. 영주의 기존 자원과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들이 구현되고 실행되면서 지역이 더욱 활기차게 변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90여개 기업이 지원하였고, 분야별로 8개 기업이 최종 선발되었다. 이들 기업은 숙소, 교통, 관광자원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주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숙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은 블랭크, 리브애니웨어, 클리, 스페이스웨이비이다. 블랭크는 영주시와 협력하여 유휴 주택을 '일주일 살기’가 가능한 숙소로 개조하고, 숙박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방치된 빈집을 단순히 수리하는 것이 아닌 지역의 특색을 최대한 살려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고민한다. 예로, 한 집은 마당에 우사와 축사 등 잔여물이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전면 철거하고 그 공간을 캠핑 사이트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주택의 가치를 높였다. 


‘2023 BETTER里: Sustainable Stay in 영주’, ⓒ비즈니스스토리텔러 조인후


블랭크의 문승규 대표는 "처음에는 빈집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유휴하우스가 완성된 모습을 보고는 지역에서 무상으로 공간을 빌려준다는 제안 등 다양한 제안이 들어온다"며 연고가 없던 지역에서도 의외의 좋은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는 수도권 지역에서 일주일 살기를 원하는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12월 말까지 예약이 조기 마감되었다.


리브애니웨어는 현지인의 숙소를 플랫폼으로 연결시키고, 숙소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리브애니웨어는 영주 내 서비스 숙소를 1곳에서 30곳으로 늘렸으며,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통해 숙소를 홍보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들이 영주 사과를 이용해 사과 주스를 직접 만들어 보고 산책도 하며 도심이 아닌 영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사치를 흠뻑 경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023 BETTER里: Sustainable Stay in 영주’, ⓒ비즈니스스토리텔러 조인후


클리는 세컨하우스(별장)을 4~5가구가 공동소유하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영주와 수도권과의 거리로 인해 영주에 세컨하우스를 마련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지역에 세컨하우스를 소유한 분들을 보면 지역이나 자연 조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는 분이 생각보다 적다. 영주 역시 KTX를 이용 시 2시간 이내 당도할 수 있는 지역이어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클리는 9월부터 8가구를 모아 세컨하우스 구매를 검토하고 있으며, 추후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스페이스웨이비는 친환경 모듈형 호텔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공장에서 생산한 모듈형 공간을 운반해서 설치하는 방식으로 공사 기간이 짧다 보니 공사 과정에서 일으키는 소음은 물론 환경오염의 위험도 적다. 영주호오토캠핑장에 2개의 모듈러 호텔을 설치하고, 숙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페이스웨이비’의 홍윤택 대표는 "1박에 20만원 내외임에도 주말 예약이 빠르게 마감됐다. 가성비보다 좋은 퀄리티에 대한 니즈를 발견했다."라며 다른 지역에서도 사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영주호 캠핑장에 설치된 스페이스웨이비 ‘웨이비룸’, ⓒ블루포인트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으로는 로이쿠가 있다. 로이쿠는 앱을 통해 하루 동안 자유로운 이동을 도와주는 관광택시 플랫폼이다. 로이쿠는 영주 내 15개의 관광택시에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9월부터 300여명이 넘는 관광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기업은 백패커스플래닛, 알앤원, 리플레이스이다. 백패커스플래닛은 프라이빗한 캠핑 경험을 제공하고자 분교, 폐역 등 영주 내 다양한 공간을 발굴하고 '영주권'이란 이름의 허가권을 판매하고 있다. 알앤원은 영남알프스와 같은 '영주 알프스' 코스를 개발해 젊은 등산인구를 영주로 유입했다. 문경 화수원으로 유명한 리플레이스는 '영주 할머니집'을 콘셉트로 선비세상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촌캉스 스테이 확대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역소멸은 스타트업과 기술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의 전통적인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트업의 비전과 기술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것이 블루포인트의 주 업무이므로, 이와 관련 없는 분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블루포인트는 이러한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혼란을 극복하고, 문제 해결에 전념하고 있다. 블루포인트는 분명 테크 액셀러레이터이다. 그런데 왜 지역 소멸, 인구 감소에 이렇게나 진심인 이유에 대해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 이미영 팀장님은 이렇게 답했다.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찾고, 새로운 혁신을 만드는 것. 이것은 ‘스타트업의 핵심’입니다”


창업혁신팀 이미영 팀장, ⓒ블루포인트


블루포인트는 공공이 만들어 놓은 정책적 인프라에 일반 관광객이나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혁신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결합하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기업의 비전과 커리어의 정의도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시대의 변화와 수요에 적응하지 못하면 점점 그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블루포인트는 단순히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다 좋고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줄 기업에 투자하고, 그 가능성이 펼쳐지는 미래를 기대하며 기꺼이 마중물이 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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